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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좌담]홍석만X한민수X김미정,장애인선수 '은퇴 그후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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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선수들은 운동을 그만두면 정말 막막하다. 갈 곳이 없다. 장애인 선수 복지를 위한 체육인지원센터를 만들어주셔서 정말 감사하다."

홍석만 국제패럴림픽위원회(IPC) 선수위원은 대한장애인체육회(이하 대장체) 체육인지원센터의 설립 취지에 적극 공감했다. 2008년 베이징패럴림픽 육상 400m 금메달리스트, 광저우장애인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 홍 위원은 대한민국 장애인체육의 레전드다. 자신의 세대가 겪은 시행착오를 후배들은 겪지 않기를 소망했다.

봄볕이 유난히 따사롭던 5월 하순, 서울 방이동 올림픽공원 근처 한 카페에 홍 위원과 대한민국 대표 패럴림피언들이 함께 했다. 평창패럴림픽 동메달을 마지막으로 은퇴를 선언한 장애인아이스하키대표팀 '캡틴' 한민수와 패럴림픽 골볼 국가대표 선수-코치 출신의 행정가 김미정 대한장애인골볼협회 사무국장, 이현옥 대장체 체육인지원 센터장이 둘러앉아 '선수 은퇴 그후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은퇴 후 기초수급자로 돌아가는 장애인 선수들

홍 위원은 선수 시절부터 치열하게 은퇴 이후를 준비한 자신의 경험담을 소개했다. "선수 시절 일찍 공부를 시작했다. 시행착오를 줄이고 싶었다. 한국체대에서 특수체육을 공부했다. 광저우아시안게임을 준비하던 2010년 석사과정을 시작했다. 2013년 박사과정에 들어가 2016년 졸업했다"고 했다. "사실 학위를 하면서 선수 생활을 하는 것은 쉽지 않다. 운동시간 외에 이동시간, 노는 시간도 줄이고 집중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은퇴 이후 비장애인 선수 출신들과의 경쟁은 결코 녹록지 않다. "장애인-비장애인 선수들은 은퇴의 출발점부터 다르다. 은퇴 시점도 10~15년 차이가 난다. 비장애인 선수들은 30대 초반, 장애인 선수들은 30대 후반, 40대 중반에 은퇴해 이들과 경쟁하는 현실은 힘들다." 대부분의 선수들이 경제적인 어려움에도 직면한다. "장애인 실업팀은 거의 없다. 결혼할 무렵 비장애인 올림피언들은 대부분 재정적으로 준비가 돼 있지만 장애인 선수들은 그렇지 않다. 운동을 그만두면 경제적 여유가 없다. 기초생활수급자로 돌아간다."

시각장애인인 김미정 국장은 유형별 장애의 특수성을 이야기했다. "시각장애인의 경우 직업적 한계가 있다. 운동 종목도 한정돼 있다. 길게 할 수 없고, 혼자 할 수 없는 부분이 많다"고 전언했다. "지체장애인에 비해 정보 접근성도 상당히 떨어진다. 그럼에도 다른 장애유형들과 경쟁을 해야 한다. '마이너 중에 마이너'라고 보면 된다"고 했다. "현재 성공을 이룬 장애인 선수 출신들은 시스템이나 제도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개인의 역량과 운이 많이 작용했다.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골볼 선수 출신으로 스키를 병행했던 그녀는 치열하게 살았다. "평범한 선택을 하고 싶지 않았다. 안마를 하면서도 '나는 다른 삶을 살 거야' 생각했다. 중요한 순간, 용기를 준 멘토들이 있었고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다보니 여기까지 왔다." 패럴림픽 직후 은퇴를 선언한 한민수는 "요즘 정말 하고 싶은 게 많다"며 눈을 빛냈다. "장애인아이스하키팀 지도자가 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지도자 2급 자격증을 보유하고 있다. 북미의 선진 하키를 배워오고 싶어서 미국 단기유학을 계획중이다. 영어공부부터 해야 한다"고 했다. 한민수는 일주일에 2번, 2시간씩 1대1 영어 과외를 받고 있다. "장애인아이스하키 실업팀이 생긴다면 감독으로 가고 싶다. 홍 위원의 뒤를 이어 IPC위원에도 도전하고 싶다. 장애인아이스하키 강습회를 통해 장애인, 비장애인들이 함께 즐길 수 있는 교육도 해보고 싶다. 이런 일들을 체육인 지원센터와 함께할 수 있다면 좋겠다"고 했다.

이들은 체육인 지원센터의 설립을 반기며 다양한 의견을 제시했다. 시각장애인인 김 국장은 "체육인지원센터가 왜 이제야 생겼나 싶다. 진심으로 반갑다. 소외되는 유형이 없도록 세심한 운영을 당부드린다"고 말했다. "장애인은 유형별 인식이 중요하다. 직업 선택과 교육의 기회에서 소외되지 않도록 당부드린다. 직업군을 선택할 때 비장애인이 20개라면 장애인 10개, 여성장애인은 5개, 중증-시각-청각 장애인은 1~2개"라면서 유형별로 특화된 영어교육의 필요성도 주창했다. "비장애인들과 장애인들은 영어교육의 시작부터 다르다. 장애유형과 등급, 각자의 필요에 맞는 맞춤형 영어교육 프로그램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내놨다.

한민수는 "마흔여덟에 은퇴하고, 딸 둘 가정의 가장이다. 하고 싶은 걸 다하고 싶지만 먹고 사는 게 먼저다. 그나마 나는 행복한 선수다. 많은 선수들에게 뭘 먹고 살아갈까는 가장 큰 고민이다. 직업 선택에 필요한 상담과 교육이 절실하다"고 했다. 홍 위원은 "체육인 지원센터가 생긴 것은 정말 긍정적이다. 대장체가 좋은 결정을 내렸다"고 평가한 후 "많은 선수들이 자신의 운동과 연관된 공부를 하고 싶어한다. 체육을 전공한 선수들은 지도자, 트레이너 등 경력을 이어가고 싶은데 어떻게 이어갈지 길을 모른다. 진로, 학교, 교수, 전문가를 매칭해주는 것 역시 센터가 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평창패럴림픽의 유산, 장애인체육인의 인권과 복지를 위해

이현옥 체육인지원센터장은 "내 기억 속 홍석만은 '멋있는 장애인 선수'의 이미지를 처음 만들어준 롤모델이다. 김미정 국장은 여성 장애인체육인 출신 행정가로서 성공적 이력을 쌓아가고 있다. 평창에서 '캡틴' 한민수는 도전을 멈추지 않는 강하고 매력적인 장애인 선수의 상징이 됐다. 이들이 잘돼야 한다. 은퇴 후 후배들의 길이 돼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센터장은 "1988년 서울패럴림픽 이후 장애인체육이 비약적으로 성장했듯 2018년 평창패럴림픽 후 장애인체육이 제2의 도약을 이룰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인권'과 '복지'야말로 우리가 할 일이다. 분명 의미있는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평창 직후인 지금은 놓쳐선 안될 골든타임이다. 이들을 통해 방안에 틀어박힌 어린 장애인들이 한사람이라도 더 세상 밖으로 나왔으면 한다. 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돼야 한다. 우리 센터는 그 길을 물심양면 지원하고 싶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패럴림픽 영웅들에게 후배들을 향한 진솔한 충고를 당부했다. 8월 미국 지도자 연수를 앞둔 한민수는 "서른 살 넘어 운동을 시작하고 마흔여덟에 은퇴하면서 걱정이 많다. 패럴림피언의 사명감과 책임감, 근성으로 열심히 도전하고 있다"며 웃었다. "공부도 늦게 시작하니 확실히 힘들다. 후배들에게 미리 준비해라. 틈틈이 영어라도 공부하라는 말을 해주고 싶다. 어느 날 기회가 왔는데 준비가 돼 있지 않아 기회를 잡지 못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며 경험에서 나온 절절한 조언을 전했다.

김 사무국장은 후배들을 향해 '장애를 받아들이고 즐길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운동할 때 나는 즐기지 못했다. 잘해야 한다는 중압감이 너무 컸다. 최선을 다하되 승패에 너무 좌절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때그때 상황을 즐기면서 재미있게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장애는 장애다. 장애는 불편한 것이 맞다. 장애를 체념하고, 그냥 즐겨라. 모든 걸 다 즐기고 아픔까지 즐기라는 말을 해주고 싶다"고 했다.

홍 위원은 강한 근성과 폭넓은 경험을 주문했다. "젊은 현역선수들은 대부분 패럴림픽 메달이 목표다. 그만큼 피나는 노력을 해야 한다. 무엇을 하든 이 길밖에 없다. 이걸 못하면 끝장이라는 간절함으로, 대충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조언했다. "그 다음에 조금 더 넓은 시각을 가지고 더 다양한 걸 경험하고 많은 걸 느꼈으면 좋겠다. 답답할 때는 언제든 찾아와 물어보라. 함께 나눌 준비가 돼 있다"며 미소지었다.

올림픽공원=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