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회계기준 강화를 앞두고 지난해 보험사들이 후순위채권 발행 등을 통해 자본을 확충한 규모가 4배 넘게 증가했고, 올해는 지난해보다 더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3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13개 생명·손해보험사들은 지난해 3조5100억원 규모의 후순위채권과 신종자본증권(영구채권)을 발행했다. 발행 규모는 2016년 6650억원(후순위채 5210억원, 신종자본증권 1440억원)의 약 5.3배에 달했다. 이보다 1년 전인 2015년에는 후순위채 2630억원이 전부였다. 신종자본증권 발행은 없었다. 후순위채와 영구채는 일정 규모까지 자본으로 인정된다.
이처럼 발행이 급증한 것은 자본·회계기준 강화 때문이다. 보험사들은 2021년 '국제회계기준(IFRS) 17'이 도입되면 보험부채(보험금)를 원가가 아닌 시가로 평가해야 한다. 이에 따른 리스크를 반영한 새로운 보험금 지급여력제도(K-ICS)도 시행된다. IFRS 17과 K-ICS는 보험부채를 과거보다 늘리는 만큼 자본도 확충해야 한다. 정확한 자본 확충 규모는 미정이지만, 일부 보험사의 경우 생사를 가를 정도라는 예상도 나온다.
이같은 우려가 확산하면서 대형사와 중·소형사를 가리지 않고 보험사들이 앞다퉈 자본 확충에 나서고 있다. 고금리 저축성보험을 많이 팔았던 생명보험사 위주였던 것에 손해보험사들도 가세하는 분위기다.
지난해 한화생명과 교보생명이 각각 5000억원과 5500억원의 신종자본증권을 발행했고, 농협생명은 후순위채로 5000억원을 조달했다. 흥국생명은 신종자본증권 5850억원에 후순위채 150억원을 더한 6000억원을 발행했다. 손보업계에서도 현대해상이 5000억원, DB손해보험이 4990억원의 후순위채로 자본을 확충했다.
올해는 이미 8개 생·손보사가 후순위채·신종자본증권 발행을 마쳤거나 발행할 계획이다. 발행액은 지난해보다 규모가 더 큰 최대 4조원에 이를 전망이다. 지난 4월 메리츠화재가 후순위채 1000억원을 발행했고, 한화생명은 지난해 5000억원에 이어 올해 4월에 신종자본증권 1조700억원을 또 찍었다. KDB생명은 지난달 2140억원의 신종자본증권을 발행했고, 후순위채도 연내 발행할 계획이다. 신한생명은 이달 중 최대 2000억원의 후순위채를 발행한다. 롯데손해보험도 지난해 11월 900억원에 이어 이번달에 600억원의 후순위채로 자본을 더 끌어모은다. 교보생명이 7월 중 최대 1조700억원, 현대해상이 3분기 중 최대 7490억원, 동양생명이 하반기 중 5350억원의 신종자본증권을 발행할 계획이다.
문제는 후순위채든 신종자본증권이든 어디까지나 이자를 주고 돈을 빌려오는 '빚'이라는 점이다. 이럴 바에야 은행에서 돈을 빌려 자본을 확충할 수 있도록 허용해야 한다는 얘기까지 나올 정도다. 실제로 KDB생명이 올해 발행한 신종자본증권은 금리가 7.14%에 달하는 등 일부 보험사의 경우 자산운용 수익률을 웃도는 조달비용을 지불한 점이 지적되기도 했다.
금융당국은 법적으로 허용된 한도에서 발행되는 후순위채와 신종자본증권을 막을 수 없다는 입장이지만, 이 같은 채무 방식의 자본 확충에 앞서 이익 잉여금을 배당으로 돌리지 않고 쌓는 내부유보, 대주주 등의 유상증자 등 '현금 투입'이 바람직하다는 설명이다. 특히 후순위채·신종자본증권만으로 IFRS 17과 K-ICS 도입을 대비하는 데 역부족일 수 있다는 것이 금융당국의 우려다.김소형기자 compact@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