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평창패럴림픽 현장은 뜨거웠다.
이날 오전 평창 알펜시아바이애슬론센터에서 '불굴의 철인' 신의현이 노르딕 스키 사상 첫 메달을 목에 걸었다. 바이애슬론 7.5에서 아쉽게 메달을 놓친 신의현의 투혼은 눈부셨다. 스키를 시작한지 불과 2년 7개월만의 기적, 인간 승리의 현장이었다.
이날 오후 강릉아이스하키센터 체코전에선 장애인아이스하키대표팀이 드라마를 썼다. 1-1로 팽팽하던 3피리어드 '빙판 메시' 정승환이 결승골을 꽂아넣더니 종료 39초를 남기고 동점골을 허용했다. 2-2, 서든데스 방식으로 진행되는 연장전, 불과 13초만에 정승환의 결승골이 터졌다. 지옥과 천당을 오간 3분여의 시간은 뜨거웠다. 보고도 믿지 못할 명장면에, 5000여 안방 관중들의 함성이 링크를 뒤덮었다. 주장 한민수도, 극장골의 주인공 정승환도 눈물을 쏟았다. 강릉 링크는 극장이었다. 영화 '우리는 썰매를 탄다'의 진한 감동이 눈앞에 실화로 펼쳐졌다. 선수들에게도 관중들에게도 인생 최고의 경기였다. 썰매를 탄 선수들이 "대~한민국" 박자에 맞춰 스틱을 두드렸다. 응원을 아끼지 않은 안방 관중들을 향해 '반다비' 인형을 던져주며 감사를 표했다. 이 모든 감동의 순간을 영부인 김정숙 여사도 직관했다. '캡틴' 한민수의 아내와 나란히 앉아서 경기를 지켜봤다. '우리는 썰매를 탄다' 시사회에서 패럴림픽의 팬, 장애인아이스하키의 팬이 된 김 여사가 약속을 지켰다.
그러나 이 감동적인 패럴림픽 현장을 대다수 국민들은 보지 못했다. 평창패럴림픽의 역사적인 첫 메달, 노르딕스키 사상 첫 메달도 보지 못했다. 말로만 듣던 '로켓맨' 정승환의 가공할 스피드와 기적같은 극장골도, 짜릿했던 눈물의 세리머니도 보지 못했다. 패럴림픽은 여전히 '그들만의 리그'였다. 12일 취재진을 만난 아이스하키팀 주장 한민수는 "국민과 많은 장애인에게 용기를 드릴 수 있는 경기였는데 경기장에 오신 관중들에게만 그 감동을 드리게 돼 마음이 쓰리다"며 아쉬워 했다.
평창올림픽의 수많은 종목, 수많은 경기를 목도한 취재진에게도 이날 신의현의 메달은 필설로 다 못할 감동이었다. 아이스하키는 반전의 반전을 거듭하며 가슴 뛰는 재미를 선사했다. 시쳇말로 '핵꿀잼(매우 재미있음을 뜻하는 온라인 은어)' 패럴림픽, 각본 없는 드라마를 구전동화처럼 전해야 한다니 아쉽고 또 아깝다.
문재인 대통령이 12일 청와대 수석 보좌관 회의를 통해 이 문제를 거론했다. "우리 방송의 패럴림픽 경기 중계가 외국보다 부족한 실정"이라며 "국내 방송사들이 패럴림픽 중계를 늘릴 수 있는 방안을 살펴봐달라고 했다. "장애인 크로스컨트리 스키 동메달을 딴 신의현 선수가 호소한 것처러 국민이 패럴림픽 경기를 더 많이 볼 수 있도록 중계시간을 더 편성해줄수 없는 것인지 살펴달라"고 했다. "30년 전 서울패럴림픽을 계기로 우리 사회의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크게 바뀐 것처럼 이번 평창패럴림픽이 다시 우리 사회 인식을 크게 높여주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스포츠조선 보도(3월7일자) 이후 각 방송사의 편성은 조금씩 추가 조정됐다. 당초 KBS 1-2의 총 25시간 편성이 41시간으로 늘었다. SBS는 32시간, MBC는 17시간55분에서 바이애슬론 남녀 경기를 생중계(13일 오전 9시45분~11시50분)를 추가하며 20시간으로 늘어났다. 여전히 미국 NBC의 94시간, 일본 NHK의 62시간, 영국 채널 4의 100시간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 모두가 곤히 잠든 새벽 1~2시 패럴림픽 하이라이트 편성은 아쉽다.
현재 KBS는 모바일과 인터넷 '마이K'로 실시간 중계를 하고 있다. 국제패럴림픽위원회(IPC) 유튜브 채널도 실시간 중계를 진행한다. 그러나 OBS가 송출하는 방송을 그대로 내보내는 방식이라 중계도 해설도 없다. 장애인 스포츠 중계는 전문가의 코멘트가 반드시 필요하다. 종목, 장비에 대한 소개, 선수들의 장애유형이나 등급에 대한 이해도 필요하다.
패럴림픽 티켓을 관공서, 지자체, 시도 체육회 등 각기관에서 단체 구입한 후 현장에 오지 않아 생기는 '노쇼' 문제도 심각하다. 경기장 관중석은 비어 있는데, 정작 패럴림픽을 보러온 실관중들은 현장 티켓부스에서 발을 돌리는 어이없는 상황이 날마다 속출한다. 티켓을 소유한 이는 오지를 않고, 보고 싶은 이는 티켓을 구할 수 없는 상황, 모두가 손을 놓고 있다. 이제 폐회식이 열리는 18일까지 닷새가 남았다. 그저 남은 닷새가 잘 지나가면 그뿐일까.
런던올림픽은 패럴림픽, 장애인스포츠에 대한 뜨거운 관심과 정책의 변화를 레거시로 남겼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올림픽과 패럴림픽이 함께 열리는 전통이 확립됐다. '동시 패럴림픽'은 30년전 서울이 남긴 유산이다. 평창패럴림픽을 계기로 '비장애인 올림픽'의 중계처럼 '장애인들의 올림픽' 중계도 당연하다는 인식이 자리잡았으면 좋겠다.
국민의 감각은 정책보다 늘 한발 앞서간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패럴림픽 방송중계를 요구하는 청원이 50건 넘게 쏟아졌다. 방송사들이 편성을 크게 바꾸는 일이 당장 어려울지 모른다. 시장경제의 논리도 뒤따른다. 그럼에도 신의현의 동메달, 아이스하키 체코전이 생중계됐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떨칠 수 없다. 장애인, 비장애인 전종목을 통틀어 혼자 보기엔 너무나 아름다운 '인생경기'였다. 방송사들은 돈 이상의 가치를 국민들에게 선물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 '19년차 캡틴' 한민수의 말대로, 가슴이 쓰리다. 강릉=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
※패럴림픽 실시간 중계를 보기 원하는 이들을 위한 IPC 유튜브 채널 계정을 공유한다. https://www.youtube.com/user/ParalympicSportT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