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운찬 전 국무총리가 한국야구위원회(KBO) 신임 총재에 내정되자 각계에서 당부와 건의사항이 쏟아지고 있다. 29일에는 프로야구선수협회, 30일에는 일구회가 성명서를 발표했다.
선수협은 '불공적 규약과 낡은 관행 혁파를 기대한다'는 강력한 '요구' 사항을 담았다. 선수협은 프로야구 산업화 걸림돌을 불공정 야구규약과 낡은 관행이라고 봤다. 지금까지 KBO와 구단이 프로야구 여러 주체의 공동 이익보다는 구단 이기주의를 끊어내지 못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신임 총재가 불펜포수나 육성선수의 목소리까지 귀담아 들어야한다고 강조했다.
과연 더딘 프로야구 산업화가 KBO와 구단 만의 잘못일까. 선수들과 선수협의 인식 전환이 아쉽다는 얘기도 많다.
올해 840만 관중으로 역대 최다관중을 기록한 KBO리그지만 자성의 목소리가 넘쳐난다. 여러 사건사고로 프로야구 이미지가 실추됐고, 하늘 높은줄 모르고 치솟는 고액 FA는 구단 재정악화를 부채질했다. 대어급 FA에게 4년 80억원은 협상 시작점이 됐다. 88억원, 98억원 계약 직후 들려오는 뒷이야기. 축소발표, 숨겨진 옵션 규모가 놀랍기만 하다. 실제론 100억원을 훌쩍 넘었다는 소식도 들린다. 대외적인 발표액으로 팬들과 미디어의 눈을 가리지만 선수들끼리는 정보를 100% 공유한다. '누가 얼마를 받은 지 다 안다'며 다른 선수의 계약을 협상 카드로 내미는 선수(혹은 지금은 무자격자인 대리인들)가 넘쳐난다.
선수협은 프로야구 산업화 실패 책임을 KBO와 구단에 묻고 있지만, 지난 수십년간 프로야구 발전 열매는 선수들이 거의 독식했다. 프로야구 매출이 늘어나는 속도는 선수들의 연봉 증가를 따라잡지 못했다. 최상위 선수들은 천문학적 연봉을 받는다.
프로야구 구단은 전부 적자다. 벌이가 시원찮아도 모기업이 부족분을 메워주는 한국 프로야구의 독특한 구조 덕분이다. 선수들과 선수협은 그룹 홍보효과를 강조하지만 삼성같은 글로벌 기업이 야구단으로 그룹 이미지를 얼마나 향상시킬 수 있을까. 이미 과거의 홍보 수단은 효능성이 떨어진 지 오래다. 그룹 이미지 추락을 염려해 어떻게든 끌고 가고 있지만 언제까지 가란 법도 없다. 밑빠진 독에 물붓기를 누군가 중단한다면 한순간에 도미노처럼 연쇄 붕괴될 수 있다. 프로야구의 자생력이 중요한 이유다.
이미 수년전부터 상당수 팬들은 외국인 선수 보유제한 철폐, 확대를 주장하고 있다. 출전 인원은 그대로 두더라도 보유인원을 늘리면 선수난 해소에 큰 도움이 된다. 일본과 대만처럼 육성형 용병으로 비용을 줄이며 효과를 극대화하는 방안이 눈길을 끌고 있다.
일시적으로는 구단운영에 부담은 될 수 있다. 연봉이 10만달러, 20만달러에 불과한 선수라도 체류 등 부대비용은 발생한다. 하지만 팀내 경쟁이 활성화되면 재계약 협상이나 입단 협상에서 지금처럼 몇몇 A급 용병들에게 휘둘리지 않게 된다.
선수협은 외국인 선수 확대 얘기만 나오면 펄쩍 뛴다. 당장 타격받기 때문이다. 10개 구단으로의 확대 때문에 외국인 선수를 2명에서 3명(한명은 무조건 야수)으로 늘렸다며 '지금도 과하다'는 기조다. 아마야구 피폐화를 말하지만 번지수가 틀렸다. 이미 B급 선발투수가 4년간 40억원을 입에 올릴 정도로 현 프로야구 인력시장은 엉망진창이 됐다.
FA제도를 손보는 것도 KBO와 구단만 나서서 될 일이 아니다. FA 등급제의 경우 선수별 보상규모와 이적 가이드라인을 어떻게 정하느냐에 따라 제도 취지와 효과는 180도 달라질 수 있다. 선수협과 KBO(구단)가 접점을 찾아가고 있지만 선수협이 '분배'에 더 신경써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수년간 지속돼 온 프로야구 호황으로 유소년 클럽야구, 초중고 아마야구팀은 늘고 있다. 느리지만 저변확대도 지속되고 있다. 그럼에도 경기력은 답보상태다. 대표팀 국제경쟁력도 마찬가지다. 선수들도 열매만 챙길 것이 아니라 좀더 큰 그림을 그려야 한다. 야구계 한 관계자는 "초고액 FA 중 먹튀 발생 확률은 역대로 80% 이상이다. 지금은 A급 FA와 B급, C급간 간격을 줄이는 노력이 필요하다"며 "선수협이 분배에 더 신경을 써야 한다"고 말했다. 박재호 기자 jhpar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