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때보다 운동을 더 열심히 한다니까요."
'파이팅맨' 홍성흔(41)의 씩씩한 목소리에는 여전히 긍정의 기운이 넘쳤다. 특유의 성실함과 친화력이 홍성흔에게 '메이저리그 정식 코치'라는 멋진 명함을 선물하게 됐다.
메이저리그 샌디에이고 파드리스는 루키팀 인턴 코치 홍성흔에게 정식 코치 제안을 했다. 홍성흔도 이 제안을 받아들여 내년 시즌부터 본격적으로 '프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한다. 미국 애리조나주에서 조카뻘 되는 젊은 선수들과 땀을 흘리고 있는 홍성흔과 전화 연락이 닿았다.
-메이저리그 정식 코치라, 정말 축하한다.
▶나도 실감이 안난다. 지난해 은퇴하고, 3년을 보고 왔다. 정식 코치에 도전해 3년은 무조건 귀국하지 않고 부딪혀 보자는 마음이었다. 그런데 1년도 채 안돼 목표를 이뤄 기쁘다. 한국에서도 늘 열심히, 성실한 모습을 보였기에 야구선수로서 인정받을 수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이 곳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낯선 곳에서 초보 코치로 힘든 일이 많았을 것 같다.
▶먼저 날씨. 매일 섭씨 40도가 넘는다. 우리같은 루키팀 코치들은 하루에 펑고 수백개 치고, 배팅볼도 수백개 친다. 정말 뜨겁다 못해 탈 것 같다.(웃음) 처음엔 미국은 훈련도 많이 안할 줄 알았는데, 배팅볼 던지려면 힘이 있어야 한다며 코치들도 운동을 하더라. 선수 때보다 여기 와서 더 열심히 운동했다.
또 하나는 언어다. 처음에는 뭐라고들 하는 지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다. 무조건 "I got it(이거 내가 할 게)"만 외치고 다녔다. 몸으로 솔선수범 했다. 하루 일과가 끝나면 오후에 따로 영어 수업을 받았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미팅 때 선수들에게 할 얘기를 직접 번역기를 돌려 몇시간씩 준비해갔다. 내 노력에 동료 코치들과 선수들이 마음을 열어줬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니 나도 조금씩 말하고 듣고 하게 되더라.
-1년 생활을 해보니 한국과 가장 다른 건 무엇이었나.
▶다들 선입견이 있지 않나. 미국은 굉장히 자유롭게 운동할 것 같다고. 절대 아니다. 내가 17~18살 선수들이 대부분인 루키팀에 있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기본을 중요시 여긴다. 야구 실력은 둘째다. 기본 인성, 태도 교육이 우선이다. 이는 트리플A까지 다 똑같다고 한다. 그라운드에서 절대 걸어다니지 않는다. 인사는 기본이다. 개인 SNS에 관련된 교육까지도 철저하다. 야구도 야구지만, 이런 정신적인 부분을 선수들에게 잘 가르쳐줄 자신이 있었다.
훈련에서는 미국 선수들은 할 때 정말 무섭게 한다. 한국 선수들 훈련량이 많다고 하는 데 같은 시간 여기 선수들이 방망이는 더 많이 친다. 간절함의 차원이 다르다. 루키팀에서 빅리그에 가는 건 5%도 안된다고 한다. 다만, 미국 선수들은 정해진 일정이 끝나면 야구를 아예 내려놓는다. 이들 만이 문화다. 우리 선수들은 나머지 훈련, 공부도 많이 하지 않나. 근성과 집중력은 이들이 한국 선수들을 따라올 수 없다.
-목표를 이루기까지 고마운 사람들이 많을 것 같다.
▶가장 먼저, 나를 알아봐준 샌디에이고 구단에 고맙다. 그리고 박찬호형도 빼놓을 수 없다. 내가 이 곳에서 인턴 코치로 출발할 수 있게 정말 많은 도움을 주셨다. 찬호형이 '너는 미국에서도 정식 코치가 될 수 있는 자질을 갖췄다. 반짝할 생각으로 미국에 가는 것이라면 절대 가지마라. 꿈을 크게 가져라'라고 조언해줘 나도 포기하지 않았다. 또, 내가 타지에서 연수를 받을 수 있게 도와주신 두산 베어스에게도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우리 가족이다. 계속 떨어져있다 며칠 전 식구들이 미국에 들어왔다. 남편, 아빠가 없는 데도 잘 버텨준 가족들에게 너무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다.
-앞으로의 계획은.
▶일단, 올해까지 맡은 루키팀 임무를 잘 마쳐야 한다. 그리고 한국에 돌아가 영어 공부를 더 집중적으로 할 예정이다. 또, 1년 간 쌓아온 매뉴얼을 바탕으로 야구 공부도 더 할 생각이다. 지도자도 흐름을 놓치면 안된다는 것을 배웠다. 내년 어느 팀에서 코치 역할을 할 지는 아직 모른다. 구단은 나에게 일하고 싶은 곳을 고르라고 배려해줬지만, 나는 구단에 '내가 가장 필요한 곳으로 나를 보내달라'고 했다. 물론 메이저리그 팀은 고를 수 없었다.(웃음) 이제 시작이다. 먼 미래에 대해 얘기하기는 이르다. 하나하나, 차근차근 배워나가겠다. 지금의 상황 자체가 나는 그저 행복하다.
김 용 기자 awesome@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