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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리뷰]"엄마처럼 안살아"…'란제리소녀' 보나, 서러움이 폭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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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 김영록 기자]"저는요, 엄마처럼 이렇게 안살 거에요!"

'란제리소녀시대' 평생 핍박받아온 소녀의 새된 절규가 보는 이의 가슴을 울렸다. 악독한 일진도, 악바리 소녀도 태생적 차별 앞에서 그저 눈물을 흘릴 뿐이다.

18일 방송된 KBS2 '란제리소녀시대' 3회의 중심축을 이룬 것은 이정희(보나)와 손진(여회현), 박혜주(채서진) 등 주요 인물들의 엇갈린 러브라인이었지만, 그보다 더욱 생생한 것은 정희와 일진 소녀 심애숙(도희)의 대립관계였다. 정희는 앞서 애숙에 의해 강에 빠졌고, 동문의 구조를 받아 가까스로 살아났다.

정희의 어머니(김선영)는 평소 아버지(권해효)에게 눌려살지만, 알고보면 딸이 자신처럼 살지 않길 바라는 애틋한 마음을 지니고 있다. 이 같은 마음은 담임 오만상(인교진)에게 찾아가 고압적인 자세로 애숙의 퇴학을 요구하고, 입으로는 병원비가 아깝다면서도 도가니탕을 끓여주는 모습에서 드러난다.

반면 아버지는 어머니보다 더 비뚤어진 표현방식을 선보였다. 그는 아들 이봉수(조병규)에게 병적인 남아선호사상을 지닌데다 지독한 자린고비다. 그는 "뭘 잘했다고 도가니를 끓여먹이냐"며 아내를 꾸중하면서도, 수저를 들고 밥을 먹을 태세를 취했다. 말 본새에 비해 속내까지 황량하진 않았던 것.

하지만 '죽다 살아온' 정희는 가뜩이나 자신에게 관심 없는 아버지의 이 같은 핀잔에 서러움이 폭발했다. 정희는 "진짜 너무하신다. 딸이 죽든말든 발걸음도 안해놓고 도가니탕 갖고 치사하다. 봉수였음 안 그랬을 거잖아요"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자존심 상한 아버지가 "4대 독자 귀한 봉수랑 남의 제사상 차릴 너랑 같냐"며 늘 하던대로 대꾸했을 때, 정희는 짓눌려 살아온 자신의 평생을 담아 폭발시켰다.

"봉수였음 난리난리 앰뷸런스 불러다 서울에 있는 병원 데려갔을 거잖아요! 남의 집 제사상 안 차릴 건데요. 저는요, 엄마처럼 이래 안살 거구요. 억수로 잘 나가는 여자 되가, 우리집 제사상 차려줄 남자랑 결혼할 건데요!"

엄마의 한까지 더한 피맺힌 절규였다. 딸을 윽박지르던 어머니 또한 "물에 빠져 죽다 살아난 아이를 왜 죽인다 하냐"며 태도가 급변하고, 식모(박하나)도 "정희 때리지 마시라"며 보기 드물게 소리를 지른다. "너희 엄마가 뭘"이라며 삿대질을 하는 아버지도 찔끔한 기색이다.

때문에 다음순간 정희 아버지는 오만상-교련(김재화)와 함께 찾아온 애숙에게 퇴학시키지 않는 조건으로 정희에게 무릎을 꿇고 빌 것을 요구한다. 딸에 대한 미안함과 상처받은 자신의 권위를 동시에 만족시키는 행동이다. 그는 "그렇겐 못하겠다"며 박차고 일어서는 애숙에게 대포집을 운영하는 그녀의 어머니 생계와 뒷소문까지 들먹이며 비열한 협박을 얹었다. 결국 애숙은 "너무하다"는 모두의 아우성 속에서 정희 앞에 무릎을 꿇고 "미안합니다. 정희야, 내가 잘못했다"라고 사과했다.

성동일이 '개딸'들과 폭언을 주고받던 '응답하라' 시리즈의 시대적 배경은 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후반에 걸쳐있다. '란제리소녀시대'의 배경은 70년대 후반 유신 말기의 한국이다. 꿈많은 여고생 정희로선 덕선이 살던 그 시기보다 더욱 살기 버거운 때다.

"아버지, 나한테 미안한 걸 이렇게 풀면 안되지"라고 외치다 뛰쳐나가는 정희의 모습 뒤로 흐른 음악은 사이먼 앤 가펑클의 '사운드 오브 사일런스'다. 그 첫 마디 가사는 "안녕, 어둠이여. 내 오랜 친구여(Hello darkness, my old friend)다.

이날 정희의 짝사랑은 더더욱 꼬여 헝클어졌다. 이날 손진은 혜주에게 고백하려다 정희에게 목격당한 뒤 애써 변명하기 바빴다. 이에 실망한 혜주는 손진의 고백을 거절, 손진을 두고 이정희, 약사 주영춘(이종현)을 두고 애숙과 각각 삼각관계를 이뤘다. 동문은 이정희에게 돌직구 고백을 던진데 이어, 손진에게 "정희 맘고생시키지 마라"며 두 차례나 도전했지만 주먹에 업어치기에 당해 힘없이 쓰러졌다. 정희는 손진이 혜주에게 구애하다 실패하는 모습을 목격, 동문과 함께 외사랑의 서러움에 목놓아 울고 말았다.

lunarfly@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