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 6월 22일, 단신의 공격수가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렸다.
이날 아르헨티나와 잉글랜드가 1986년 멕시코월드컵 8강에서 맞붙었다. 아르헨티나가 1-0으로 앞서있던 후반 10분. 경기가 열렸던 에스타디오 아스테카에 운집한 11만5000명의 관중이 경악했다.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졌다. 디에고 마라도나가 아르헨티나 진영 하프라인 부근에서 공을 잡은 뒤 그대로 잉글랜드 골문까지 내달렸다. 5~6명의 잉글랜드 수비가 그를 저지하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가속이 붙은 마라도나, 마치 폭주 기관차처럼 돌진했다. 골키퍼까지 따돌린 마라도나는 여유있게 잉글랜드 골망을 갈랐다. 이 골은 3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축구 사상 최고의 골로 평가되고 있다.
2017년 5월 23일 전주월드컵경기장에 '마라도나의 재림'이 펼쳐졌다. 주인공은 이승우(19·바르셀로나 후베닐A)였다.
이승우는 아르헨티나와의 U-20 월드컵 조별리그 A조 2차전 0-0으로 맞서던 전반 18분 후방에서 넘어온 패스를 잡지 않고 속도를 붙여 질주했다. 3명의 수비수가 이승우에게 달려들었지만 소용없었다. 약 40m를 질풍처럼 달려 페널티박스 안까지 진격했다. 골키퍼가 급하게 튀어나왔다. 이승우는 당황하지 않았다. 마치 이미 예측이라도 했다는 듯이 여유있게 왼발로 찍어 차 넣었다.
마라도나의 전설적인 골이 정확히 31년만에 재연됐다. '미친 골'을 터뜨린 이승우. 그것도 '마라도나의 후예'이자 U-20 월드컵 최다 우승(6회)에 빛나는 아르헨티나를 상대로였다.
세리머니도 인상적이었다. 특유의 여유만만한 표정으로 구름 관중 앞에서 자신을 찬양(?)하는 분위기를 느긋하게 즐겼다. 자신에게 쏠린 수 많은 시선 속에 이승우는 춤을 췄다. 그 리듬에 맞춰 경기장 내엔 붉은 물결이 파도 쳤다. 19세 소년이 수 만명의 몸과 마음을 지배한 순간. '무아지경'이었다.
'난 놈'은 '난 놈'이다. 이승우는 대회 개막전을 앞두고 자신의 옆 머리네 'V'와 'SW(Six Wins in a row·6연승)'을 새겼다. 필승의지를 자신만의 스타일로 표출한 것. 혹자는 말했다. '너무 설레발 치는 것 아냐?'
아니었다. 이승우는 실력으로 입증했다. 개인 능력으로 판을 뒤흔들었다. 그의 활약을 보면 이런 표현이 딱 떠오른다. "축구는 혼자 하는 게 아니라 11명이 하는 팀 스포츠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축구의 개념을 벗어난 최초의 선수를 보고 있다." 이는 1986년 월드컵 아르헨티나-잉글랜드 경기를 중계했던 빅터 휴고 모랄레스가 남긴 코멘트다. 아르헨티나 출신 해설자가 남긴 명코멘트의 새로운 주인공은 바로 이승우였다.
2013년 1월 '18세 이하 선수는 해외에서 뛸 수 없다'는 FIFA규정에 따라 소속팀 바르셀로나 공식경기에 뛰지 못했던 이승우. 돌아오는 데만 꼬박 3년이 걸렸다. 2016년 1월 돌아온 녹색 그라운드. 공백은 없었다. 특유의 '깡'으로 버티고 또 버텼다. 자신을 향한 온갖 비판과 의심을 잠재웠다.
거꾸로 전 세계 축구팬들을 '황홀경'에 빠뜨리고 있다. 그는 기니전에 이어 아르헨티나전까지 골을 터뜨리며 2경기 2골을 기록중이다. 이런 기세라면 대회 득점왕도 차지할 수 있다. 러시아월드컵 예선을 치르고 있는 A대표팀 콜업까지 노려볼 만한 놀랄만한 페이스다.
전주=임정택 기자 lim1st@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