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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랑가로스]'기적의 아이콘' 이덕희, 프랑스 오픈 패배에 굴복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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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드롤랑가로스(프랑스 파리)=이건 스포츠조선닷컴 기자]이덕희(133위·현대자동차·서울시청)에게 프랑스 오픈은 큰 산이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실패했다. 이덕희는 22일 오후(현지시각) 프랑스 파리 스타드롤랑가로스 16번 코트에서 열린 2017년 프랑스오픈 남자 단식 예선 1라운드 경기에서 스페인의 복병 히카르도 오예다 라라(228위)에게 0대2(2-6 3-6)으로 졌다.

쉽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래도 기대를 걸었기에 이번 패배는 더욱 아프다. 지난해 이덕희는 프랑스오픈에 처음으로 도전했다. 인도의 나케스 마이나니를 만나 풀세트 접전을 펼첬다. 결과는 1대2(6-1, 6-77<3>, 4-6) 패배였다. 그 때의 아쉬움 때문에 이번에는 더욱 야무지게 준비했다. 하지만 서브와 스트로크의 난조로 힘 한번 써보지 못하고 패배했다.

경기 후 이덕희를 만났다. 사촌형이자 코치인 우충효 코치가 인터뷰를 도와줬다. 우선 패인에 대해 물었다. 일정이 아쉬웠다. 이덕희는 프랑스오픈 직전 서울 오픈과 부산 오픈에 나섰다. 그리고 20일 파리에 들어왔다. 연이은 대회 출전으로 인한 피로와 장시간 비행 및 시차에 고전했다. 경기 후 만난 이덕희는 "물론 핑계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준비 시간이 짧아서 조금 아쉽다. 시간이 더 있었다하더라도 결과가 바뀌지는 않았겠지만, 조금 더 좋은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었는데 그러지 못해 아쉽다"고 말했다.

이덕희에게 프랑스오픈은 아픔이지만 피해갈 생각은 없다. 다시 도전하면 되기 때문이었다. 이덕희는 이제 시니어 2년차다. 아직 프랑스오픈에 도전할 시간이 많이 있다. 꾸준히 발전해나간다면 기적도 쓸 수 있다. 자신이 이제까지 걸어온 길이 바로 그 '기적의 길'이었다.

이덕희는 청각장애 3급이다. 양쪽 귀의 청력 손실이 각각 80dB 이상이다. 일반 대화음이 40~60dB이다. 이덕희에게는 들리지 않는 소리다. 보통 사람들이 소음으로 느끼는 소리만 들을 수 있다. 테니스 선수에게 소리를 듣는 것은 중요하다. 라켓과 볼의 타격음을 듣고 플레이에 반응하기 때문이다. 이덕희는 듣지 못하는 대신 본다. 집중력과 눈으로 청각 장애를 극복했다. 주니어 무대에서 좋은 성적을 냈다. 지난해 시니어 무대에 데뷔했다. 대만에서 열린 가오슝 챌린저에서는 결승까지 올랐다. 결승에서는 정현에게 졌다. 올 시즌 랭킹도 133위까지 끌어올렸다. 개인 최고 기록이다.

경험도 조금씩 쌓고 있다. 2년차에 접어들면서 챌린저쪽에 주력하고 있다. 지난 시즌에는 아시아쪽 퓨처스 대회를 많이 뛰었다. 챌린저를 뛰니 좋은 선수들을 많이 만났다. 이를 통해 '마음 가짐'을 배웠다. 이덕희는 "기술적인 부분도 있겠지만 그것보다는 마음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됐다. 강한 상대들을 만나다보니 그들을 상대로 살아남는 법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하게 되더라. 그러다보니 기술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발전하게 되더라"고 말했다.

꼭 맞붙어보고 싶은 선수가 있냐고 물었다. 이 대회 얼마전 정현이 바르셀로나 오픈에서 라파엘 나달과 맞붙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이를 염두에 둔 질문이었다. 이덕희는 "전부 다"라고 했다. 그는 "나보다 잘하는 상대, 특히 투어급 선수들과 다 맞붙어 보고 싶다"고 했다. 이유를 물었다. "투어급 선수들이 얼마나 잘하는지 직접 경험하고 싶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리고 꼭 한 명을 찍었다. 로저 페더러(스위스)였다. 이덕희는 "어릴 때부터 페더러를 좋아했다. 이제 페더러가 나이도 있고, 얼마 안 있으면 은퇴할 것 같다. 그가 은퇴하기 전에 꼭 만나서 한 경기를 치르고 싶다"고 했다.

올 시즌 남은 목표도 물었다. 이덕희는 거침없이 :"챌린저 우승"이라고 했다. "지난해 챌린저 결승까지 가본적이 있다. 거기서 졌다. 올해도 남은 기간 열심히 한다면 챌린저 우승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랭킹 100위권 안에도 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경기장 밖으로 나왔다. 건너편에서 프랑스오픈 결승전이 열릴 코트 필립페 샤틀리에가 있었다. 이덕희는 "언젠가 저곳에서 열리는 결승전에 나설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만약 그정도의 실력이 된다면 아무래도 호주오픈이나 US호픈이 될 가능성이 클 거다. 클레이코트(프랑스오픈)보다는 하드코트(호주오픈, US오픈)에서 내가 더 강하기 때문"이라고 웃으며 말했다.

인터뷰 말미 포즈를 취해달라고 했다. 프랑스 태생이자 최고의 여자 테니스 선수로 군림했던 수잔 렝글렌 동상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렝글렌은 성적 뿐만이 아니라 파격적인 유니폼을 입고 나와 테니스 역사에 새 장을 연 인물이다. 관습에 저항하고 기적을 몸소 보여줬다. 이덕희도 마찬가지다. 이미 청각 장애를 극복한 뒤 정상을 향해 한걸음씩 나아가고 있다. 렝글렌처럼 이덕희도 몸소 오랜 편견에 저항하고, 새 시대를 열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