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김표향 기자]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은 '현실'과 진짜라서 더 믿기 힘든 '사실'은 극의 소재로 종종 소환된다. 그 어떤 이야기도 실재했던 이야기만큼 개연성과 설득력이 강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최근 극장가에서도 실화와 실존인물을 다룬 영화들이 대세를 이룬다. 한국은 물론 할리우드까지 세계적인 추세다.
지난달 24일 개봉해 박스오피스 1위를 지키고 있는 영화 '귀향'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증언을 토대로 이야기의 뼈대를 세웠다. 중국 목단강 위안소에서 병에 걸린 위안부들이 구덩이에 던져져 불 태워지는 장면을 목격한 강일출 할머니의 사연이 영화에 고스란히 담겼다. 실화의 힘은 관객을 움직였다. 7만 5000여명이 제작비 절반인 12억 원을 모아줬고, 9일까지 275만 명이 극장을 찾았다. 온라인에서는 위안부 피해자 후원을 위한 소녀상 배지 구매 같은 적극적인 행동도 이어지고 있다.
'귀향'과 함께 작은 영화의 돌풍으로 주목받고 있는 '동주'는 시인 윤동주와 독립운동가 송몽규를 새롭게 조명한 작품이다. 이준익 감독은 '윤동주 평전'에 기반해 실화 70%와 허구 30%로 영화를 완성했다. 영화는 잘 알려지지 않았던 윤동주의 삶을 스크린에 구현하는 동시에 무명의 독립운동가 송몽규를 발굴하는 성과를 거뒀다.
두 영화가 실화와 실존인물을 다루고 있지만 100%의 사실이라고 볼 수는 없다. 창작물에는 창작자의 세계관이 투영되기 때문이다. '동주'는 위대한 민족시인이 아닌 어두운 시대를 살았던 청춘을 비췄고, '귀향'은 돌아온다는 뜻의 귀(歸)가 아닌 영혼을 뜻하는 귀(鬼) 자를 제목에 담아 끝내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한 위안부 피해자들의 원혼을 위로했다. 영화는 현재적 관점으로 본 사실의 재해석인 셈이다.
할리우드에서도 실화를 모티브로 한 영화들이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수십년에 걸린 가톨릭 사제들의 아동 성추문 사건을 파헤친 보스턴 글로브 기자들의 이야기를 그린 '스포트라이트'는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수상했다. 수상 직후 박스오피스 역주행으로 9일까지 24만 관객을 동원했다.
극장가에서 반향을 일으키고 있는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수상작 '룸'도 실화다. 7년 동안 작은 창고 방에 감금됐던 엄마와 아이가 세상으로 탈출하는 내용이다. 18세 소녀가 친부에 의해 24년간 지하 밀실에 갇힌 채 아이를 낳아 방안에서 키운 충격적인 실화를 각색해, 사건 자체가 아닌 인물의 생존과 모성에 초점을 맞췄다.
'스포트라이트'와 '룸'은 성 폭력 관련 내용을 직접적으로 묘사하지 않고도 피해자들의 고통을 생생하게 전달하는 탄탄한 구성과 세련된 연출력을 선보여 관객들의 호평을 받고 있다.
세계 최초로 여성으로 성전환을 한 인물로 알려진 1920년대 덴마크 화가 베게너의 실화는 영화 '대니쉬 걸'로 탄생했다. 미국 최대 홈쇼핑 채널의 여성 CEO 조이 망가노의 이야기 '조이'(10일 개봉)와 현 프란치스코 교황의 삶을 영화화한 '프란치스코'(10일 개봉), 음치 소프라노 플로렌스 포스터 젠킨스의 이야기 '마가렛 여사의 숨길 수 없는 비밀'(17일 개봉)도 주목해 볼 만한 실화 영화다.
그밖에도 아일랜드의 독립을 위해 투쟁하다 감옥에 갇힌 보비 샌즈가 66일간 단식 투쟁을 벌이는 과정을 담은 '헝거'(17일 개봉)와 2010년 광산 붕괴 사고로 매몰된 칠레 광부 33인의 기적 같은 생환기 '33'(4월 개봉) 등이 한국 관객과의 만남을 준비 중이다.
지난 7일과 8일 내한했던 휴 잭맨과 태런 에거튼의 영화 '독수리 에디'(4월 7일 개봉)는 1988년 캘거리 동계올림픽에 출전한 영국의 스키점프 선수 에디 에드워즈의 아름다운 도전정신을 유쾌하게 담은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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