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dium App

Experience a richer experience on our mobile app!

선수가 왕? 옵션은 사라지고 계약금은 커지고

by

지난 2004년말 삼성은 현대 출신의 FA 심정수와 박진만을 총 99억원에 영입하며 세상을 놀라게 했다. 당시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액수였기 때문에, 선수 시장을 어지럽힌다는 비난이 쏟아지기도 했다. 그러나 두 선수의 계약 내용에는 양측이 합의해 마련한 '안전 장치'가 있었다. 옵션 조항이다. 엄격한 의미에서는 '퍼포먼스 보너스(performance bonus)' 조항이라고 해야 맞다. 성적에 따라 추가적으로 보너스를 준다는 의미.

그런데 두 선수 모두 옵션 조항에는 마이너스 옵션도 포함돼 있었다. 심정수의 경우 4년간 최대 60억원의 규모였다. 계약금 20억원에 연봉은 연간 7억5000만원, 여기에 플러스 옵션과 마이너스 옵션이 각각 연간 2억5000만원이 설정됐다. 즉 일정한 성적을 채우면 연간 2억5000만원의 보너스를 받지만, 기준 성적에 미달할 경우 반대로 2억5000만원을 내놓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4년 동안 플러스 옵션을 모두 채우면 최대 60억원을 받지만, 4년 내내 마이너스 옵션의 적용을 받으면 총액이 40억원으로 뚝 떨어지게 돼 있었다. 2008년말 은퇴 당시 심정수는 4년 동안 실제로 받은 돈은 50억원 정도라고 했다. 즉 마이너스 옵션 때문에 연봉을 내놓은 적도 있었다는 것이다.

옵션, 즉 퍼포먼스 보너스 조항은 구단 입장에서는 연봉의 과다지출을 막을 수 있고, 선수 입장에서는 동기부여가 될 수 있는 장치다. 이러한 옵션은 FA 계약에서 필수 조항으로 여겨져 왔다. 그런데 이번 스토브리그에서는 옵션 조항이 눈에 띄지 않는다. 구단들의 발표 내용을 보면 옵션 조항을 포함시킨 선수는 많지 않다.

한화는 김태균과 4년 총액 84억원에 재계약했는데, 계약금이 20억원이며 연봉은 16억원이다. 성적에 따른 옵션 조항은 찾아볼 수가 없다. 84억원 이외의 별도 조항이 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구단 발표 내용에는 옵션 조항은 없다. 즉 김태균은 4년 동안 어떤 성적을 내더라도 84억원을 고스란히 받는다는 이야기다. 일본에서 돌아와 지난 4년간 연봉 15억원씩, 총 60억원을 벌어들인 김태균은 향후 4년 동안에는 84억원을 손에 넣는다.

kt로 옮긴 유한준도 마찬가지다. 4년 60억원 가운데 계약금이 무려 36억원이며, 연봉은 매년 6억원이다. 계약금 규모가 총 연봉보다 많은 특이한 케이스다. 그런데 KBO가 등록하는 연봉 자료에 계약금은 합산되지 않는다. 유한준의 연봉은 2016~2019년까지 매년 6억원으로 기록된다. 계약금까지 합치면 평균연봉은 15억원이지만, KBO는 구단이 보내온 계약서상의 연봉만 공식 기록으로 간주한다. 말이 안되는 이야기지만 지금까지 34년 동안 그렇게 해왔다.

롯데 잔류를 선택한 송승준도 마찬가지다. 계약금 24억원, 연봉 4억원 등 총액 40억원에 도장을 찍었다. 옵션 조항은 물론 없고, 계약금이 연봉 총액보다 많다. 롯데로 유니폼을 바꿔 입은 윤길현은 계약금 18억원에 연봉은 4년간 5억원, 총액 38억원을 받는다. 역시 옵션은 없다. 삼성 이승엽도 2년간 총액 36억원 가운데 옵션 조항은 없다. LG 이동현(3년 30억원), SK 박정권(4년 30억원)도 성적에 따른 옵션은 포함되지 않았다.

그나마 KIA 이범호는 '3+1년' 계약을 하며 '진정한 의미'의 옵션 조항을 설정했다. 즉 첫 3년 동안의 성적에 따라 4년째 계약을 보장한다는 것인데, 옵션 조항을 충족할 경우 총 36억원을 받는다. kt 김상현(3+1년, 17억원)과 SK 채병용(2+1년, 10억5000만원)도 이런 방식으로 계약을 했다. 넥센 이택근(4년 35억원), LG 정상호(4년 32억원)처럼 옵션 금액을 붙인 선수도 있지만, 그 규모는 2억~5억원 수준이다.

시장 가격이 높은 선수, 즉 '대어'일수록 이런 옵션 조항은 배제되고 계약금이 커지는 경향이 있다. 팀간 경쟁이 벌어지기 때문에 성적에 대한 부담없이 보장된 돈을 받고 뛰고 싶다는 선수들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물론 구단이 발표한 계약 내용에 따른 것일 뿐, 실제 구단과 선수간에 어떤 이야기를 주고 받았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노재형 기자 jhno@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