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공은 둥글고, 어떤 이변도 일어날 수 있다.
하지만 상대도 상대 나름이다. 1970년대 초반 어깨를 나란히 하던 미얀마(당시 버마)가 아니다. 한국의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은 48위, 미얀마는 161위다. 무려 113계단이나 차이가 난다. 미얀마 축구를 폄하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쯤되면 차원이 다른 클래식을 증명해야 한다.
진용에도 큰 변화가 없다. 울리 슈틸리케 A대표팀 감독은 연속성과 내년을 위해 정예 멤버를 소집했다. 주장 기성용(스완지시티)을 비롯해 지난달 부상으로 엔트리에서 제외된 손흥민(토트넘) 이청용(크리스탈팰리스)이 재합류했다. 해외파가 15명, 국내파가 8명이다. 누가 출전해도 큰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결전의 날이다. 슈틸리케호가 12일 오후 8시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미얀마와 2018년 러시아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예선 G조 5차전을 치른다. 2015년 국내에서 벌어지는 마지막 A매치다. 극과 극의 만남이다. 한국은 G조에서 4전 전승(승점 12)으로 선두를 질주하고 있다. 반면 한 경기를 더 치른 미얀마는 1승1무3패(승점 4)로 5개팀 가운데 4위에 처져있다.
슈틸리케호는 6월 16일 러시아행의 첫 관문인 2차예선 1차전에서 미얀마와 격돌했다. 미얀마의 홈경기였지만 FIFA의 관중 폭동 징계로 개최권을 상실, 중립지역인 태국 방콕에서 맞닥뜨렸다. 한국은 이재성(전북)과 손흥민의 세트피스 연속골로 2대0으로 승리했다.
5개월이 흘렀고, 2차예선도 반환점을 돌았다. 분위기는 또 다르다. 안방에서 미얀마를 다시 만난다. 관전포인트는 하나다. 승리를 넘은 융단폭격이다. 미얀마는 지난달 한국에 0대1로 패한 쿠웨이트와의 원정경기에서 0대9로 대패했다.
태극전사들도 기분좋은 기억이 있다. 9월 3일 홈에서 열린 라오스전이었다. 전반 9분 이청용의 선제골로 골퍼레이드가 시작됐다. 손흥민이 해트트릭(3골), 올림픽대표팀으로 이동한 권창훈(수원)이 두 골, 석현준(비토리아FC)과 이재성이 한 골씩을 보태며 8대0으로 대승했다.
융단폭격의 관건은 역시 선제골이다. 라오스전처럼 일찌감치 문을 열어야 골소나기가 가능하다. 부상에서 회복한 손흥민은 "상대가 우리보다 약하지만 이런 경기가 더 어렵고 선제골이 중요하다"며 "언제 선제골이 나오느냐에 따라 대량 득점이 나온다. 매 순간 최선을 다해야 한다. 골을 넣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체력적으로 더 올라와야 하지만 경기 뛰는 데 문제는 없다. 쥐날 때까지 뛰어야 한다. 선발로 나가면 교체는 3장 뿐이다. 교체 카드를 아껴야 한다. 나라를 위해 뛰어야 하기에 열심히 하겠다"고 했다.
미얀마도 절대 열세를 인정하고 있다. 극단적인 밀집수비를 펼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은 그물망 수비를 뚫는 것이 과제다. 슈틸리케 감독은 대비책으로 세트피스에도 공을 들였다. 그는 "여느 경기와 똑같이 상대를 존중하고 최선을 다해 준비할 것"이라며 "우리 것만 잘 보여준다면 상대보다 더 많은 골을 넣을 수 있을 것이다. 준비한대로 플레이한다면 많은 찬스를 얻을 것이고, 프리킥과 코너킥 기회도 많을 것이다. 아무런 대책없이 공격에 나서기보다 여러 상황을 가정한 전술이 필요해 세트플레이 훈련에도 집중했다. 그라운드 환경이 좋지 못해 세트플레이에 집중한 면도 있다"고 설명했다. 중원 전술의 핵인 기성용은 "다득점과 승리가 매 경기 목표지만, 밀집수비를 상대할 때 가장 어려움을 느낀다. 선제골을 일찍 넣지 못한다면 심리적으로 어려운 상황이 될 수도 있다. 선제골이 빨리 들어간다면 좀 더 편안하게 경기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방심은 금물이지만 미얀마전은 역시 몇 골차 승부가 더 관심이다. 김성원 기자 newsme@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