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호(29)의 포스팅 최고 응찰액 1285만 달러(약 147억원)가 놀라운 점은 '스몰 마켓' 미네소타 트윈스가 써 내서만은 아니다. 미네소타가 박병호를 지명 타자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테리 라이언 단장은 10일 "박병호는 야구 인생의 전성기에 있다. 일본리그와 비슷한 한국에서 엄청난 성적을 남겨 메이저리그에서도 성공적으로 정착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어 "1루나 3루에 나설 수 있지만 지명 타자가 더 어울린다. 팀 사정상 1루는 조 마우어, 3루는 트레버 플루프가 맡는 게 이상적"이라고 밝혔다. 마우어는 미네소타 프랜차이즈 스타로서 2018년까지 매해 2300만 달러의 연봉을 받는다. 박병호와 동갑내기인 플루프는 올 시즌 타율이 2할4푼4리로 낮지만 22홈런 86타점으로 장타력을 갖고 있다. 수비도 당연히 박병호보다 낫다. 현지 언론은 라이언 단장의 말대로 "올해 지명 타자로 뛴 미겔 사노가 외야수로 전향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박병호가 지명 타자로 뛰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전망하고 있다.
지명타자는 아메리칸리그에만 있는 제도다. 1973년 도입됐고 KBO리그도 이 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지명타자들은 수비를 하지 않기 때문에 다른 야수들에 연봉도 적은 편이다. 미국의 야구 통계 웹사이트인 '베이스볼 프로스펙터스'에 따르면 지명 타자 중 매해 벌어들이는 돈이 가장 많은 선수는 빅터 마르티네즈(디트로이트). 지난해 4년 6800만 달러에 재계약하면서 2015~2018년 매해 평균 1700만 달러가 통장에 찍힌다. 그 뒤는 데이비드 오티스(보스턴)가 올해 연봉으로 받은 1600만 달러.
이는 다른 포지션과 비교했을 때 적은 액수다. 1루수(미구엘 카브레라·3100만 달러) 3루수(알렉스 로드리게스·2750만 달러) 2루수(로빈슨 카노·2400만 달러) 포수(조 마우어·2300만 달러) 등은 이 부문 1위 선수의 평균 연봉이 2000만 달러를 가볍게 넘는다. 외야수 쪽으로 눈을 돌려도 조시 헤밀턴, 지안카를로 스탠튼(이상 2500만 달러) 마이크 트라웃(2400만 달러) 등 '억' 소리 나는 선수가 수두룩하다. 데릭 지터가 2001년부터 2010년까지 평균 1890만 달러를 번 유격수 포지션만 지명 타자와 비슷한 수준. 그래도 기본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선수들에겐 큰 돈을 절대 쓰지 않는 포지션이 지명 타자다. 국내 야구 팬들에게 친숙하고 1루수와 지명타자를 오가는 텍사스의 미치 모어랜드도 올해 연봉이 295만 달러다.
하지만 미네소타는 박병호를 '지명 타자'로 생각하고 넥센에게 줄 이적료로만 1285만 달러를 적어냈다. 앞으로 선수에게 줄 연봉까지 생각하면 총 3500~5000만 달러를 써야할 지도 모른다. 그야말로 스몰 마켓이 보인 엄청나게 공격적인 행보. 박병호가 빅리그에서 무조건 성공한다는 확신이 없다면 불가능 한 일이다. '보스턴 헤럴드'의 스카우팅 리포트에서 박병호의 파워를 최상급인 80점으로 평가한 것처럼 미네소타 구단도 그의 신체 능력을 탈아시아급으로 보고 있다.
하나 더, 박병호가 갖고 있는 내구성이다. 박병호는 생애 첫 MVP에 오른 2012년부터 2014년까지 단 한 차례 결장 없이 타석에 들어섰다. 올해는 팀이 치른 144경기 중 140경기에 나서 타율 3할4푼3리에 53홈런 146타점을 기록했다. 즉 최근 4년 동안 홈런왕 타이틀을 독차지하며 결장한 경기는 단 4게임. 그것도 햄스트링이나 허리 등 선수들이 고질적으로 달고 다니는 부상이 아닌 손가락 통증이었다. 잔부상이 없어 언제든 풀타임 활약을 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리고 최근 몇 년간 간판스타 마우어가 몇 가지 부상으로 고전하는 모습을 가까이서 지켜본 미네소타 입장에서는 이런 박병호의 내구성이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함태수 기자 hamts7@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