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O리그 몇몇 구단이 팀을 떠난 외국인 선수에게 다시 손을 내밀고 있다. 지금껏 '재취업'은 외인들이 팀을 옮겨 새 둥지를 틀 때나 통용되는 말이었지만, 이제는 은퇴 후 KBO리그에 복귀하는 외인들이 늘면서 새로운 트렌드를 논하며 사용해도 될 듯 하다. 넥센 히어로즈가 대표적이다. 히어로즈는 외국인 투수 브랜든 나이트(40)에게 육성군 투수총괄코치 직책을 안겼다고 3일 밝혔다. 구단은 내년부터 2군 시스템에 획기적인 변화를 주는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는데, 나이트가 2군과 3군, 재활군, 육성군의 투수들을 모두 책임지게 된다. 이에 앞서 LG 트윈스는 잭 한나한(35)을 타격 인스트럭터로 초빙해 젊은 선수들을 지도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2주간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구단은 "젊음 선수들이 기술적인 측면뿐아니라, 정신적으로도 많은 걸 배웠다"고 자평했다.
▶왜 나이트인가
미국 출신 나이트는 2009년 삼성 유니폼을 입고 KBO리그에 데뷔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한국과의 예선전에 선발 등판해 이름을 알렸고, 국내 야구 데뷔 첫 해 11경기에서 6승2패, 3.56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 히어로즈로 이적한 해는 2011년이다. 삼성 시절 무릎 부상에 시달려 구위가 떨어졌지만, 넥센에서는 밴헤켄이 오기 전까지 에이스 노릇을 하며 2012년 16승(4패), 2013년 12승(10패)을 기록했다. 특히 우타자 몸쪽으로 싱커를 완벽하게 뿌리며 2012년 리그 최다 이닝(208⅔이닝) 투수이자 가장 강력한 외국인 투수로 이름을 날렸다.
그런 그에게 히어로즈가 코치직을 제의한 건 기량뿐 아니라 훈련 태도, 겸손한 모습 등 인성에 반했기 때문이다. 그는 외국인 선수 신분에도 후배들을 살뜰히 챙겼고 팀워크를 강조했다. 또 한국의 매운 음식을 즐겨 먹으면서 문화에도 완벽히 적응했다. 한 번은 훈련을 마친 뒤 영자 신문을 보는 나이트에게 이유를 물은 적이 있었는데, "한국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알기 위해서"라는 답변이 돌아온 적이 있다. 그는 2012년 대선 출마를 선언한 안철수 의원까지 알고 있었다.
'신사' 나이트의 인성과 관련된 유명한 일화는 또 있다. 지난해 마흔이 다가오면서 스피드와 구위가 예전 같지 않던 그는 5월 중순 방출됐다. 그런데 방출 통보를 받고 선수들과 인사할 시간이 없자 이틀 뒤 부산 원정 경기까지 내려와 마지막 식사를 하며 일일이 악수를 나눴다. 구단 프런트와 코칭스태프, 선수들이 야구가 아닌 인생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을 하게 된 순간이다. 아마 이 때부터 히어로즈는 나이트를 꼭 코치로 재영입하겠다고 마음 먹었을 것이다. 이런 마인드를 갖춘 코치는 말처럼 구하기 쉽지 않다.
▶나이트는 무엇을 가르칠 수 있는가.
다만 외국인 코치는 한계가 있다. 한화 이글스가 이번에 일본인 코치와 재계약하지 않은 건 쉽게 허물어지지 않는 언어 장벽 때문이다. 히어로즈가 이를 모를 리 없다. 그러나 이 같은 약점보다 나이트 가진 장점이 많다고 판단했다. 나이트는 한국 무대 4년차부터 오히려 성적이 좋아졌고, 투수를 오래 할 수 있는 '노하우'를 알고 있다.
나이트는 삼성 시절만 해도 포심 패스트볼과 슬라이더를 주로 던진 정통파 투수였다. 힘이 넘쳤고 체력에도 자신이 있었다. 그러다가 무릎 부상을 당한 뒤 투구 패턴을 완전히 바꿨다. 2011년 2월 팀 동료 손승락에게 싱커 그립을 배우면서 남들이 은퇴하는 나이에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 그는 2012시즌 도중 "절실했다. 변화가 필요했다"며 "나에게 부족한 면이 무엇인지부터 파악했다. 직구를 포기하고 그렇게 도전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결국 히어로즈 어린 투수들은 '도전'이라는 단어에 포커스를 맞춰 나이트에게 가르침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그 동안 염경엽 감독의 체계적인 관리로 한현희, 조상우 등을 리그 정상급 투수로 키워낸 히어로즈이지만, 여전히 선발진을 구성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 와중에 육성군 선수들에게 나이트는 좋은 코치이자 훌륭한 교본이 될 수 있다.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해 줄 말이 많은 지도자가 나이트다.
한 야구인은 "나이트와 비슷한 인성을 가진 외인 중 한 명이 더스틴 니퍼트(두산)다. 두산도 나중에 코치직을 제의할 생각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좋은 관계를 형성했던 외국인 선수에게 코치나 스카우트 역할을 맡기는 게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매김하는 모양새다. 이는 좋은 코치들이 부족한 작금의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함태수 기자 hamts7@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