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미완의 대기인 괴물 혼혈 선수가 여자농구 판도를 바꿀 수 있을까.
KEB하나은행의 새 혼혈 선수 첼시 리. 까만 피부에 키는 무려 1m90이나 된다. 덩치도 엄청나다. 외모는 외국인 선수이지만, 그는 팀의 에이스이자 외국인 스코어러 샤데 휴스턴과 동시에 코트를 누빌 수 있다. 특권이 아니다. 첼시 리는 혼혈 선수 자격으로 한국 무대에 발을 들였다. 부모는 한국인이 아니지만 할머니가 한국인이다. WKBL은 조부모가 한국인이어도 혼혈 선수로 인정한다. KEB하나은행이 정해진 규정 안에서 선수를 잘 골랐다고 할 수밖에.
입단부터 화제가 됐다. 일단 키와 덩치만으로도 상대에 확실한 위압감을 준다. 다른 팀들은 '동시에 외국인 선수 2명이 뛰는 것과 다름없다'며 경계를 드러냈다. 실제 첼시 리는 지난달 31일 열린 KDB생명과의 공식 개막전에서 13득점 10리바운드 더블더블을 기록하며 팀의 연장 승리에 공헌했다.
두 번째 경기인 KB스타즈와의 홈경기에서도 초반 엄청난 위력을 뽐냈다. 초반 2번의 슛 미스를 하며 분해하더니, 곧 제 컨디션을 찾았다. 일단 육중한 몸으로 자리 잡는 싸움에는 타고난 모습을 보였다. 힘과 높이를 기반으로 한 골밑 득점과 리바운드, 블록슛 능력도 괜찮아 보였다. 박종천 감독은 샤데 휴스턴과의 하이-로우 플레이 등으로 첼시리가 골밑에서 손쉽게 득점할 수 있는 패턴을 자주 이용했다. 첼시 리를 처음 상대하는 KB스타즈 선수들은 계속해서 손쉬운 골밑슛을 내줬다. 여기에 첼시 리가 상대 외국인 선수 수비를 해주자 에이스 휴스턴의 수비 부담이 줄었다. 휴스턴이 공격에만 집중할 수 있다는 것은 팀에 엄청난 이득이 된다. 그렇게 전반을 39-28로 앞선 KEB하나은행이었다.
물론, 허점도 많았다. 일단 기본 플레이가 조금은 엉성해보였다. 높이와 힘을 앞세운 골밑 플레이만 집중적으로 연습한 덜 길들여진 야생마 같은 느낌. 3쿼터 상대가 강력한 도움 수비와 압박 수비를 펼치자 실책성 플레이를 연발했다. 짜여지지 않은 상황에 대한 대처 능력이 부족해 보였다. KEB하나은행이 계속 실패하는 첼시 리 패턴 플레이를 고집하다 공격을 제대로 풀지 못하며 한순간에 깊은 수렁으로 빠졌다. 11점 리드를 지키지 못하고 3쿼터 중반 허무한 역전을 허용했다. 가장 손쉽게 득점을 성공시킬 수 있는 방법을 쓰는 건 좋지만, 그것도 공격 성공이 됐을 때 묘책이 되는 것이다.
수비에서도 골밑 대인방어와 들어오는 슛에 대한 블록슛은 최고 수준이었지만, 백도어나 커트인 플레이에 대한 수비는 속수무책이었다. 4쿼터 첼시 리와 휴스턴이 상대 변연하와 나탈리 하워드의 백도어 플레이에 연속 두 번 당하며 역전 기회를 놓쳤다. 그렇게 KEB하나은행은 홈 개막전에서 77대79 역전패를 당했다.
가장 큰 문제는 체력이었다. 1쿼터 신이 나 뛰더니 쿼터 막판 가뿐 숨을 몰아쉬며 교체됐다. 3쿼터 이후에도 전반에는 성공시켰던 골밑슛을 계속 놓치고 박스아웃에서도 밀리는 등 집중력 부족을 드러냈다. 결국, 체력 문제였던 것. 그나마 다행인 건, 4쿼터 다시 집중력을 발휘하며 대추격을 이끌었다는 점이다. 향후 이 부분은 경기 체력으로 보완될 여지가 있다.
본인이 한국에서 성공하겠다는 의지가 넘친다. 이날 경기 패해서 아쉬웠지만 23득점 17리바운드를 기록했다. 특히 1, 4쿼터 활약은 엄청났다. 잘 쓰면 최고의 무기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꼬이면 독이 될 수도 있는 모양새다. 첼시 리의 향후 행보를 지켜보는 것도 여자프로농구를 즐기는 한 포인트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부천=김 용 기자 awesome@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