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승팀에 대한 예를 갖추는 일, 필요하다고 본다."
지난 2012년 삼성 라이온즈 류중일 감독은 시즌 중간 갑자기 공약을 하나 했었다. 어떤 자리든 결승전에서 지더라도 선수단 전체가 나가 우승팀을 축하해주겠다는 것이었다.
류 감독은 2011년 한국시리즈에 이어 곧이어 열린 아시아시리즈에서 일본 우승팀 소프트뱅크마저 꺾고 첫 우승을 차지했었다. 당시 삼성이 우승 트로피를 받는 등 시상식에서 기뻐했는데 준우승팀인 소프트뱅크의 아키야마 감독을 비롯한 선수단 전원이 그라운드에서 삼성에게 박수를 보내며 축하를 하는 모습을 보고 류 감독은 감동을 받았고, 스스로도 우승팀에게 축하를 하겠다고 다짐했다.
3년 뒤인 2015년 진짜 그런 상황이 발생했다. 5년 연속 한국시리즈 제패를 앞두고 두산에 1승4패로 패한 것. 정규리그 우승을 하고서 한국시리즈에서 패해 속이 쓰리고 비참한 기분까지 들었지만 류 감독은 선수들을 그라운드로 나가게 했다. 그리고 시상식이 끝날 때까지 서서 두산의 우승을 박수로 축하해줬다. 시상식이 끝난 뒤 류 감독은 시상식장으로 가서 두산 김태형 감독에게 직접 축하의 악수를 건넨 뒤 야구장을 빠져나갔다.
이 장면은 야구팬들에게 큰 감동을 줬다. 주축 선수 3명이 갑작스런 이탈로 억울할법도 한 준우승이었지만 아름다운 패자가 된 삼성의 모습은 훈훈했고, 존경받을만 했다.
일부 팬들은 준우승팀이 도열해서 우승팀을 축하해주는 것을 정례화하거나 전통으로 만들자는 얘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예전 KBO리그에서는 준우승팀도 시상식에서 메달과 트로피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시상대에 오른 준우승팀 선수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어두웠다. 환하게 웃는 우승팀 선수들과 극명하게 대비가 됐다. 어느 틈엔가 한국시리즈 우승팀만 시상식에서 메달을 받게 됐다.
류 감독도 한국시리즈 5차전이 끝난뒤 가진 공식 인터뷰에서 "2등은 비참하다. 선수시절 준우승을 많이 해서 그 비참함을 잘 안다"고 했다. 실제로 삼성의 한 선수는 덕아웃에서 우승 세리머니를 하는 두산 선수들을 보면서 "정말 비참하다"고 말했지만 시상식이 시작되자 그라운드로 나가 두산 선수들에게 박수를 보냈다.
결코 모두가 우승팀을 환하게 축하해줄 수 없다는 것을 류 감독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웃으며 두산을 축하해줬다. 4년 연속 통합우승을 했던 감독이기에 할 수 있었던 후배 감독에 대한 배려였다. 삼성이기에, 류 감독이기에 가능했던 준우승팀의 축하 도열이었다. 다른 팀에겐 강요하지 않는게 좋겠다. 그 비참함은 겪어봐야 아는 것이다.권인하 기자 indy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