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스포츠조선 김표향 기자] 유아인의 부산은 뜨거웠다. 어느 때보다 뜨거운 환호가 그를 반겼고, 유아인도 부산에서의 시간을 뜨겁게 즐기고 있었다. 영화 축제가 열리고 있는 부산 해운대 일대는 유아인으로 인해 펄펄 끓었다.
제20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 셋째 날인 3일 오후 해운대 비프빌리지 야외무대에서 진행된 '한국영화기자협회와 함께하는 오픈토크' 현장은 유아인의 등장 이후 순식간에 팬미팅으로 돌변했다. 행사장은 이른 아침부터 유아인을 기다린 팬들로 빽빽하게 들어찼고, 미처 입장하지 못한 팬과 시민들은 행사장을 겹겹이 둘러쌌다. 언뜻 눈으로 헤아린 인파만 해도 족히 1000명은 넘었다. 그야말로 '대세'였고, '유아인의 시대'였다.
팬들은 '유아인'이란 이름만 들어도 환호성을 내질렀다. 재치 있는 손팻말을 만들어온 팬들도 많았고, 질문 기회를 얻은 일부 팬은 발을 구르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오는 6일 생일을 맞이한 유아인을 축하하는 깜짝 이벤트도 마련됐다. 유아인은 팬들과 다정하게 눈을 맞추고 가볍게 포옹을 해주며 아낌없이 팬서비스를 했다.
영화 '베테랑'과 '사도'는 유아인의 이름을 영화팬들의 가슴에 깊이 새겼다. '베테랑'에서는 안하무인 재벌 3세 조태오 역으로 강렬한 악역을 선보였고, '사도'에선 뒤주에 갇혀 죽음을 맞이한 비극적 인물 사도를 연기해 크게 호평받았다. 1300만 관객을 돌파한 '베테랑'이 극장가에서 뒷심을 발휘하는 가운데, 개봉 3주차에 접어든 '사도'도 600만 관객을 향해 질주하고 있다.
유아인이 털어놓은 영화 이야기와 그가 꿈꾸는 배우의 삶에 대해 들어봤다.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은 소감은?
▶그동안 큰 사랑을 받았지만 실감하지는 못했다. 수치로만 봤다. 부산에서 많은 분들이 크게 환호해 주고 환대해 주셔서 이제야 실감이 난다.
-'베테랑'과 '사도'가 크게 흥행했는데 자기 자랑을 한다면?
▶황정민 선배, 송강호 선배와 함께 할 수 있었다는 게 내 자랑이다. 아무래도 내가 젊은 배우이다 보니 저에게 관심의 포커스를 맞춰주셨던 것 같다. 류승완 감독님과 황정민 선배, 이준익 감독님과 송강호 선배가 함께 해주셨기 때문에 만들어진 결과 아닌가 싶다. 물론 나도 조금은 일조하지 않았겠나.(웃음)
-SNS에서의 소신 발언 때문에 개념배우라 불린다. 하지만 '베테랑'에선 악역을 연기했는데, 실제 본인 캐릭터와는 어떤 차이가 있나?
▶이렇게 나를 향한 오해를 풀어줘서 고맙다. 조태오는 내가 생각하는 내 또래의 가장 못된 놈이다.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사람이 가장 나쁜 길로 가면 어떻게 될까 생각하며 연기했다. 누구나 선과 악이 공존하지만 악을 숨기고 살아가지 않나. 나에게도 그런 근성이 있을 거다. 영화를 찍는 순간에는 뚜껑을 열고 근성을 보였던 것 같다.
-옷을 고를 때도 본인 의견을 제시하는 걸로 알고 있다. 오늘의 의상 컨셉트는?
▶조태오의 일상?(웃음) 오늘 여러가지 일정이 있어서 다양한 모습을 보여드리려고 준비한 의상이다.
-베테랑의 이야기가 현실과 닮은 부분이 많은데 무엇을 보여주려 했나?
▶류승완 감독님이 웃자고만 만든 영화는 아닐 것이다. 웃자는 건 메시지와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식일 뿐이다. 무거운 메시지를 무겁게 전달할 수도 있겠지만, 요즘엔 극장에서 피곤한 영화를 안 보고 싶어하지 않나. 물론 저의 피곤한 영화(사도)가 하나 걸려 있긴 하지만.(웃음) 돈이 신분을 만들고 기꺼이 을이 되기도 하고, 돈이 생기면 갑질도 하는 못된 일들이 세상에서 벌어진다.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사람이 개념 없이 흘러가면 어떤 괴물이 만들어질까에 대해 감독님이 포착하고 고민하신 것 같다.
-유아인이 이 시대의 '정의'를 정의한다면?
▶내가 뭐라고 정의를 말하겠나. 제가 누군가에겐 무개념하고 치기 어린 배우로 비춰졌을 것이다. 배우가 세상에 자신의 의견을 꺼내면서 산다는 게 위태로운 일이기도 하다. 나름대로는 정의를 생각하면서 살았던 것 같다. 생각하는 걸 조금이나마 행동하면서 사는 것이 중요하다. 별의별 이념과 개념이 넘치는 세상 아닌가. 타인의 말에 귀기울이고 함께 생각하는 게 정의가 아닐까 한다.
-'베테랑2'에 출연할 생각은 없나?
▶'베테랑3'쯤 되면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많은 관객들이 나를 조태오를 생각하고 있으니, 조태오가 출소한 이후에도 갑의 지위를 빼앗기지 않는 비정한 현실을 그린다면 조금 더 현실적인 조태오를 보여줄 수 있을 것 같다. 무조건 얼굴 들이대는 건 실례일 것 같다.
-사극과 인연이 남다른데 특별히 사극을 선호하는 이유가 있나?
▶사극을 굉장히 좋아한다. 어린 시절엔 방학 한달 동안 대하사극 몰아볼 정도였다. 제가 현대극을 연기할 때는 리얼리티를 추구하는데, 그렇게 연기하기 쉽지 않은 순간이 있다. 사극은 역사가 기반이기도 하지만 극성이 강하다. 연기하기가 쉽다는 게 아니라, 연기를 할 때 부대낌이 덜해서 사극 연기를 좋아한다.
-'육룡이 나르샤'에서는 어떤 이방원을 보여줄 생각인가?
▶드라마가 50부작이라 6개월 정도 오래 지켜볼 수 있을 것이다. 여러분들 긴 호흡으로 찾아뵐 수 있어서 긴장도 되고 설렌다. 이방원은 내가 연기한 인물 중 가장 입체적이다. 선과 악이 공존하면서 자기 나름의 정의와 신념을 갖고 있지만, 권력 구조 안에서 무엇이 선하고 악한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인물이다. 이방원에 대해 묵직하고 선 굵은 이미지를 생각할 텐데, 나는 어느 때보다 천진하고 장난꾸러기 같은 모습을 연기하는 중이다. 훗날 위기 상황에선 군주로서 칼날 같은 모습도 보여준다. 한 인물이 갈 수 있는 다양한 지점들을 가지고, 입체적인 인물을 만들어보려 한다.
-가장 자신 있는 신체 부위는?
▶내가 잘생긴 유형의 배우는 아니다. (팬들이 '아니다'라며 야유하자) 알았어, 잘생겼어, 그런 줄 알게.(웃음) 나는 어느 하나가 잘생긴 게 아니라, 크게 명확하게 생기지 않아서, 이 배역 저 배역 해도 거부감 없이 좋아해 주시는 것 같다.
-유아인의 냉장고엔 뭐가 들었나?
▶추석에 선배들이 선물 보내줘서 전복, 새우, 송이버섯 같은 게 많이 들어 있다. 실제로 요리를 굉장히 좋아한다. 최근에 전복죽 끓여서 친구들과 나눠 먹었다. 혼자 오래 살다 보니 요리해서 주변 친구들과 나눠 먹는 걸 좋아한다.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할 생각은 없나?
▶'무한도전'이 거의 유일무이하게 즐겨보는 예능이다. 식스맨이 광희씨니까, 나는 세븐맨?(웃음) 한번쯤 참여해보고 싶다. 내가 예능을 기피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그렇지 않다.
-함께 책 읽고 싶은 스타로 꼽힌다. 평소 시 쓰는 걸 좋아하고 SNS에 쓴 글도 훌륭하다. 혹시 책을 낸다면?
▶시집을 내면 어떨까. 글 쓰는 걸 좋아한다. SNS를 통해 많은 말들을 하면서 살지만, 감정표현을 굉장히 안 좋은 방향으로 몰아가면서 낯 뜨겁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 시가 말살되고 감정표현이 말살되면서 가벼운 농담조의 가치 없는 말들이 많아진 거 같다. 그럴수록 우리 마음에 말들이 쌓여간다. 거침없이 파워풀한 시를 쓰면서 살면 어떨까 생각한다.
-과거 출연작 중 기억에 남는 작품은?
▶(팬들이 '반올림'을 외치자) '반올림'에서 극중 이름이 유아인이었다. 극중에서 옥림이가 아인오빠라고 불러서 많은 분들이 저를 '아인오빠'라고 불러줬다. 당시엔 10대 후반에 뒤늦게 사춘기를 겪고 있는 소년이기도 했고 혼란스러운 시간을 보냈던 기억이 난다. 배우로서 직업적 정체성에 대해,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해 고민이 많았다. 작품 끝나고선 '에잇 안할래' 하고 생각했다. 많이 부대끼더라. 내가 거친 남자고, 야생적이어서 그런지 말쑥한 자리와 연예인이란 자리가 익숙치 않았다. 고향 대구에 내려가서 다시 내 길을 찾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그런데 10년 흘러서 이렇게 기름진 말을 하고 앉아 있다.(웃음)
-친구가 많기로 유명한데 지금이라도 당장 전화 걸면 달려올 친구가 있나?
▶배우 친구들은 많지 않다. 평소 친하게 지내는 친구들이 함께 부산에 내려와 있다. 매년 부산영화제가 내 생일과 겹치기도 하고. 같이 내려와서 축하도 해준다. 영화 '사도'에서 어머니로 나온 전혜진 선배가 지금 부산에 와 있다. 내가 전화로 술 한잔 하자고 연락했는데 기꺼이 와주셨다. 개인적으로 너무 좋아하는 선배다 . 기분 좋은 자리에 함께 할 수 있어 좋다.
-평소 운동은 하나? 몸관리는 어떻게 하나?
▶식스팩은커녕 원팩만 갖고 있다. 작품할 때만 운동하고 평소에는 살이 잘 빠지는 스타일이다.
-결혼 생각은?
▶항상 하고 싶다.
-출연작 중 좋아하던 캐릭터와 앞으로 연기하고 싶은 캐릭터는?
▶'밀회'의 선재를 굉장히 좋아한다. 자아도취 같지만 요즘에도 가끔 다시보기로 돌려본다. 배우가 다양한 얼굴을 보여드릴 수 있지만, 사랑하는 얼굴, 그 순간의 떨림을 보여준다는 게 굉장히 중대한 일이란 생각이 든다. 본격적인 멜로를 해본 적이 없다. 아주 치명적인 멜로영화를 한편 해보면 좋지 않을까. 기대해달라.
-곧 생일인데 어떻게 보낼 계획인가?
▶진탕 술 마실 거다.
-선역과 악역 중에 뭘 선호하나?
▶악역도 연기하는 재미가 있는데, 착한 역이 좋긴 하다. '밀회'의 선재 같은 인물을 연기하면 때묻은 내 영혼까지 정화되는 느낌이다.
-'성균관 스캔들'의 걸오도 인기가 많았다.
▶이 작품 이전에는 유약한 소년 이미지를 가진 배우였다. 그래서 걸오 역에 캐스팅 됐을 때 원작 팬들 사이에서 원성이 대단했다. 하지만 뜻밖에 큰 사랑을 보내주셔서 '걸오앓이'라는 말도 생겨났다. 대놓고 멋있는 척하는 연기도 언젠가 할 수 있지 않을까.
-이준익 감독이 앞으로 세계 최고의 배우가 될 거라고 극찬했는데 앞으로 어떤 배우로 기억되고 싶나?
▶재미있는 배우였으면 좋겠다. 훗날 돌아보면 '저 인간 웃기는 사람이다, 재미있는 사람이다'라는 얘기를 듣고 싶다.
-가장 받고 싶은 생일 선물은?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있는 게 가장 큰 선물이다.
-끝인사를 해달라.
▶고맙다는 말을 한 시간 내내 해도 모자르다. 큰 사랑을 주셔서 감사드린다. 무척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올해로 10년째 부산영화제를 찾았다. 영화 안에서 연기하고 있기에 가능한 일 같다. 여러분과 손잡고 호흡하면서 배우로 살아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대세라고 하지만, 영원한 건 아니다. 좋은 순간이다. 어떤 순간이 다가오든 진심으로 연기하는 게 중요하다. 그렇게 살아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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