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을 바라보기에는 이미 너무 멀어졌다.
한화 이글스의 5위 탈환 가능성은 이제 거의 사라졌다고 봐야한다. 20일 경기를 마친 뒤 5위 SK 와이번스와의 승차가 2.5경기나 벌어졌다. 이 시점에서 한화는 8경기, SK는 11경기를 각각 남겨뒀다. 잔여 경기수가 10경기 미만인 상태에서 2.5경기 차이는 뒤집기가 극히 어렵다. 게다가 SK가 오히려 3경기 더 많이 남겨뒀다. 현실적으로는 역전은 무리다. 대단히 극적인, 마치 드라마와 같은 대반전의 흐름이 일어나야만 한화가 5위로 다시 올라설 수 있다.
이런 꿈같은 이야기는 더 이상 할 필요가 없을 듯 하다. 현실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한화가 남은 8경기에서 모두 이긴다거나 SK가 잔여경기 전패를 하는 일은 말 그대로 '판타지'다. 현실에서는 높이 날아오르다 지금 8위로 추락한 독수리 군단의 처량함만이 남아있다. 장밋빛 꿈을 향해 모든 힘을 쏟아냈지만, 결국은 칙칙한 잿빛 현실을 마주하고 있다. 이제 한화는 무엇을 더 보여줄 수 있을까.
일단 '5위 싸움'에서 밀려났더라도 아직 시즌이 끝난 게 아니라는 점이 중요하다. 목표로 했던 곳까지 가지 못했다고 해도 계속 걸어가야 하는 현실이다. 최근 수 년간을 통틀어 가장 악착같이 순위 싸움에 달려들었다가 뒤로 밀려난 상황이라 분명 선수단이나 팬들이 느끼는 허탈감이 클 수 밖에 없다. 이 허탈감을 떠안고 남은 8경기를 치러내야만 한다.
그 과정에서 분명 보여줄 점이 있다. 내일을, 그리고 내년을. 나아가서는 한화 이글스의 미래를 만들고, 기대감을 키우는 야구를 보여줘야 한다. 그것이 바로 어떤 팀보다도 열성적이었던 한화 팬들에 대한 선수단의 마지막 예의다.
사실 올해 한화는 '내일'보다는 '오늘'에 초점을 맞춘 야구를 해왔다. 지난해말 팀에 부임한 김성근 감독은 "어떻게든 이겨서 패배의식을 떨쳐내야 한다. 다른 팀들이 너무 쉽게 보고 들어오는 것도 문제"라며 시즌 초반부터 거의 총력전 체제로 팀을 꾸려왔다. 그에 앞서서는 마무리&스프링캠프를 통해 특유의 강도높은 훈련으로 선수단을 개조하려고 했다. 이는 한화 선수단의 기량에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었다. 투지와 집중력이 수 년간 이어진 성적 부진 탓에 크게 떨어져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한화는 최근 3년연속 꼴찌를 포함해 2008년부터 7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다. 7년간 최하위를 5번이나 했다.
이런 김 감독의 의도는 초반에는 잘 통하는 듯 했다. 한화는 시즌 개막 후 한 달이 넘은 5월초에 3위까지 오르는 등 강한 모습을 보였다. 결국 전반기는 승률 5할 마진에서 +4승을 하고 마쳤다. 이때까지만 해도 포스트시즌 진출 가능성은 상당히 컸다. 그러나 후반기가 되자 한화 선수들의 체력은 일찍 방전됐다. 결국 현재의 초라한 모습이 되고 말았다. 전반기와 극명하게 대비되는 후반기 성적. 마치 2011년의 KIA 타이거즈를 연상케한다. 당시 조범현 감독이 이끄는 KIA는 시즌 전반기를 1위로 마쳤다가 후반기에 급격한 부진에 빠지며 간신히 4위로 포스트시즌에 턱걸이한 적이 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게 됐는지는 시즌 최종전을 마친 뒤에 다각적으로 분석하고 비판해도 늦지 않는다. 지금은 당장 남은 경기에서 한화가 무엇을 얻을 수 있는 지를 계산하고, 판단하는 게 현명하다. 5위 탈환 가능성이 멀어졌다고 해서 허술하게 경기를 치르는 것은 최악 중의 최악이다. 이건 그 동안 쌓아올린 것들을 스스로 차버리는 행위일 뿐이다. 그렇다고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극단적인 총력전을 하는 것도 사실 큰 의미가 없다. 후반기에 반복된 '총력전 패배'의 모습에 피로감을 호소하는 팬들이 적지 않다.
결국 무기력한 모습이나 의미없는 총력전이 아닌 진짜 한화의 '내일'과 '미래'를 생각하게 하는 야구를 보여줘야만 한다. 어쩌면 지금 시기야말로 올 시즌을 전부 통틀어 거의 유일하게 총력전이 아닌 형태의 야구를 할 수 있는 시기일 듯 하다. 신인이나 유망주들에게 보다 기회를 많이 주면서 오늘만 사는 것이 아닌 내일도, 모레도 사는 야구를 시도해볼 필요도 있다. 그러다 진다고 해도 잃는 것보다는 얻는 것이 더 많을 것이다.
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