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일들은 모두 멈췄다. 어려운 일인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가치있는 일이기에 도전한다고 했다.
정몽준 대한축구협회 명예회장 겸 국제축구연맹(FIFA) 명예 부회장(64)이 '지구촌 축구 대통령'을 향해 첫 걸음을 뗐다. 그는 23일 미국으로 출국했다. 골드컵 3~4위전과 결승전이 열리는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북중미카리브해축구연맹(CONCACAF) 관계자들과 만난다. 뉴욕에서는 미국 주요 언론들과의 인터뷰도 기다리고 있다.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 등과도 대화를 나눌 예정이다. CONCACAF의 회원국은 35개국이다. 정 회장은 FIFA 부회장 시절 CONCACAF와 우호적인 관계였다.
FIFA는 20일 집행위원회를 열고 차기 회장 선거를 내년 2월 26일 특별 총회에서 열기로 결정했다. 정 회장은 21일 출마를 가시화하며 본격적으로 선거전에 뛰어들었다. 그는 이날 출국에 앞서 취재진과 만났다. 당선 가능성에 대해서는 "기대 반, 우려 반"이라고 했다. 하지만 명분있는 도전이라고 강조했다. "FIFA 회장 도전은 가치가 있는 일이다. 쉽지 않지만 열심히 하면 좋은 결과가 있을 수도 있다. 4년간 FIFA를 떠나있었지만 바깥에서 객관적으로 FIFA를 볼 수 있었다. 다른 생각을 하지 않을 것이다. 이 일에 전념할 것이다."
정 회장은 FIFA 개혁을 주장하고 있다. 국제 축구계에서도 정 회장은 청렴한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그는 "열 사람이 지켜도 도둑 한 명을 못 막는다"며 "회장이 받는 경비나 보너스를 공개하지 않는 건 아주 나쁜 일이다. FIFA 안에 여러 독립된 기구가 있지만 그 책임자를 FIFA 회장이 총회에서 추천해 추인하다 보니 사실상 임명이다. 다 고쳐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FIFA 회장은 전용기를 타고 다닌다는데 FIFA 회원국 중에는 2018년 월드컵 예선전에 참가할 비용이 없는 곳도 있다. 그들이 비용 걱정을 하지 않도록 도와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블래터 회장에 대해서는 "사퇴하고 대행체제로 선거를 공평하게 관리하는 것이 꼭 필요하다"며 "내년 2월 회장 선거에 블래터 회장이 부당하게 관여한다면 FIFA는 모든 일에 정통성을 인정받기 어려울 것"이라고 공세를 취했다.
비유럽인 FIFA 회장의 가치도 강조했다. 초대 회장인 로버트 게랭부터 8대이자 현 회장인 블래터까지 사실상 유럽인이 FIFA의 수장을 맡았다. 7대 회장인 주앙 아발랑제는 브라질 국적이다. 하지만 벨기에 이민 2세로 사실상 유럽인이다. 정 회장은 "FIFA가 111살이 됐다. 월드컵도 이제 유럽 밖에서 한다. 이제 FIFA회장도 비유럽인이 해야 유럽을 위해서도 좋다"고 강조했다. 정 회장은 "8월 중순쯤 세계 축구의 중심인 유럽에서 출마 발표를 할 계획"이라고 했다.
미국에서 스타트를 끊는 정 회장의 행보는 앞으로 더 빨라질 것으로 보인다. 출마 발표 준비와 함께 최대 표밭인 아프리카축구연맹(CAF·54표)과 중동이 주도하고 있는 아시아축구연맹(AFC·46표)도 방문, '표밭갈이'를 이어갈 계획이다. 유럽축구연맹(UEFA·53표)도 '각개격파'식으로 접근해 지지를 요청할 계획이다. 인천공항=이 건 기자 bbadagu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