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dium App

Experience a richer experience on our mobile app!

[인터뷰]'철인'김병지"700경기 이끈건 긍정의 힘"

by

"1995년, 20대의 나와 함께 뛰던 선수가 2015년에도 20대 선수와 같이 뛰고 있다. 말도 안되는 일이다." 노상래 전남 감독은 '동갑내기 절친'이자 '팀 골키퍼'인 김병지의 700경기 의미를 묻자 이렇게 답했다.

"700경기 기록은 매년 30경기 이상 23년을 꾸준히 뛰어야 나올 수 있는 대기록이다. 그가 놀라운 것은 나이와 상관없이 판단력에 한치의 흐트러짐도 없다는 점이다." 이영표 KBS 해설위원은 지난 17일 역대 최다 16번째 K리그 올스타전에 나선 '레전드' 김병지를 이렇게 평가했다.

'아름다운 철인' 김병지(45·전남 드래곤즈)가 26일 오후 7시 광양전용구장에서 열리는 K리그 클래식 라운드, 제주와의 홈경기에서 리그 통산 700경기에 나선다. 대기록이 임박한 23일 전남 광양 클럽하우스에서 만난 김병지는 담담했다. 1970년 4월8일생인 그에게 '기록'은 '일상'이다. 김병지가 나서는 매경기는 현역 최고령 출전 기록이다. 153경기 역대 최다 무교체 출전, 역대 최초 골키퍼 득점, 역대 올스타전 최다 출전, 역대 FA컵 최다출전… 1992년부터 2015년까지 K리그 그라운드는 지켜온 '달인'이자 '철인'이 말했다. "700경기도 내겐 또 하나의 경기일 뿐이다. '일상'이자, 직업선수로 26년간 쭉 지켜온 '리듬'이다. '그래도 계속 가라'는 책 제목처럼 뚜벅뚜벅 계속 걸어가다보니 여기까지 왔다."

▶"700경기를 이끈 건 긍정의 힘"

2012년 10월 7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경남과 FC서울전, 김병지는 통산 600경기 대기록을 세운 직후 '700경기의 꿈'을 밝혔었다. 김병지는 "3년전 경남에서 600경기를 달성하고 700경기를 목표 삼았다. 어려운 목표였다. 실현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고 했다. "700경기는 하다보니 이뤄졌다. 어렵고, 힘들었다. 즐거움도 있었고, 고비도 있었다. 그렇게 계속 왔고, 어느새 종착지에 도달했다"며 웃었다.

겸손이다. 무심코 이뤄진 일은 아니다. 김병지는 스스로에게 혹독하다. 모든 시계는 훈련과 경기에 맞춰 돌아간다. 잘 알려진 대로 지난 24시즌간 78.5㎏의 체중을 유지해왔다. 술, 담배를 일절 하지 않는다. 흔한 핑계, 흔한 징크스도 없다. 기적같은 롱런의 비결을 김병지는 "긍정적인 마인드"라고 짧게 답했다. "바람이 불면 바람이 부는 대로, 비가 오면 비가 오는 대로 그냥 하면 된다. 걱정하지 않는다"고 했다. "춥지만 않으면 된다. 추우면 손바닥이 얼어서 공을 받을 때 아프다"며 웃었다. "무엇이든 좋게 생각하는 편이다. 긍정적이다. 스트레스를 받더라도 빨리 잊는다."

▶700+, 목표는 있지만 한계는 없다

'살아있는 전설' 김병지는 K리그 후배들의 멘토이자 롤모델이다. 김병지를 이끌어준 '멘토'를 물었다. "제가 가장 좋아한 골키퍼는 최인영 선배다. 축구에서는 그렇다. 저를 지금까지 이끌어주신 분은 이강조 감독님, 차범근 감독님, 하석주 감독님까지 많은 분들이 계시다. 특히 조광래 감독님은 38세 이후 축구의 길을 열어준 분이다. 2008년 허리디스크 수술 후 힘든 시간을 보낼 때 경남에 불러주셨다. 명분 있는 자리, 롱런할 수 있는 발판을 만들어주신 분이다. 전남 하석주 감독님도 큰 도움을 주셨다. 앞으로의 일들은 '동기'인 노상래 감독에게 맡긴다."

전남이 생애 마지막 클럽이냐는 '돌직구' 질문에 김병지는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네"라고 답했다. 그러나 은퇴 시점은 예정하지 않았다. "진행형이다. 리미트(limit)는 없다"면서도 "내일이라도 할 수 있다"고 여지를 남겼다. "목표는 있어도 한계는 없다. 올해가 될지, 내년이 될지 모르지만, 명분 있는 일이 있다면, 도전할 것"이라고 했다. FC서울 시절 골키퍼 출신 사령탑 귀네슈 감독을 언급하자 김병지는 "골키퍼 출신 감독은 골키퍼들의 로망이다. 후배들도 자주 이야기한다. 골키퍼 출신 감독이 나오면 동기부여가 될 것같다"고 말했다. 열린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 "지도자, 행정가, 에이전트 등 3가지 길을 생각하고, 준비해왔다. 무엇을 하든 축구현장에 기여하는 일을 할 것"이라고 했다.

▶존경받는 축구인의 길

김병지가 위대한 이유는 그라운드 안에서 가장 오래, 가장 뛰어난 골키퍼로 인정받아온 이 선수가 그라운드 밖에서 존경받는 '축구인'이라는 점이다. 축구를 통해 팬들과 소통하고, 리그와 사회에 봉사하고 공헌하는 삶을 실천해왔다. 24년간 K리거로 살면서 홍보대사 직함만도 수십 개에 이른다. 용접공으로 일하며 프로선수의 꿈을 키웠다. 가장 빛나는 순간, 가장 힘들던 순간을 잊지 않았다. 김병지는 "선수생활을 하면서 사회를 향해 마음을 열고, 공감하는 것이 좋았다. 축구로 받았던 혜택을 후배들과 어려운 이들을 위해, 함께 나누고 싶었다"고 했다. "가족들의 이해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사랑의 장기기증 운동', '방정환어린이재단' 홍보대사, '대통령 선거' 공익광고, '한국도로공사 교통안전 지키미' 등등, 기억에 남는 일들이 많다. 봉사는 삶과 같이 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병지는 K리그 타이틀 스폰서인 현대오일뱅크 '주유 운동'도 펼쳤었다. 주유 영수증을 보낸 팬들을 위해 골키퍼 장갑, 유니폼 등 자신의 소장품을 기꺼이 내놨다. 김병지는 "프로선수로서 K리그 후원 기업에 대한 감사를 표하고 싶었다. 많은 팬들이 동참해주시면서 소통의 창구가 됐고, K리그와 저를 좋아하는 계기도 됐다"며 미소 지었다.

▶가족은 나의 힘

'세 아들의 아버지' 김병지는 K리그 최고의 '패밀리맨'이기도 하다. 지난 16년간 아들 셋을 키우며 매 한번 든 적 없는, 인내심 강한 아빠다. "고등학생 큰아들과 요즘도 스스럼없이 스킨십하고 뽀뽀도 한다"며 웃었다. 인터뷰중 팔뚝의 문신이 눈에 들어왔다. 오른팔에는 큰아들 태백, 왼팔에는 둘째아들 산, 등에는 셋째아들 태산을 새겼다. "1999년 태어난 태백이의 영문이름은 '레오'다. '위대한 전사, 사자'를 담았다. 2002년생 산이는 '태양신'이다. 등에는 '불사조' 막내 태산이와 우리 가족을 상징하는 별 5개가 있다"며 일일이 설명하는 '아빠'의 얼굴이 환해졌다. "요즘 후배들은 그냥 멋 삼아 비단잉어도 새기고, 뱀도 새기고 하는데, 내겐 그냥 '멋'이 아닌 소중한 의미"라고 했다.

김병지의 통산 700경기에 맞춰 가족의 경사도 임박했다. 25일, 1년 넘게 공들여온 아내의 공방을 오픈한다. 미대 출신 아내 김수연씨의 솜씨는 남다르다. '애처가' 김병지가 손수 아내와 함께 인테리어를 다듬으며 공들인 2층짜리 작업 공간이다. "다들 내 700경기에 주목하고 있지만, 사실 내가 지금 가장 설레는 것은 아내의 공방 오픈"이라며 활짝 웃었다.

▶천생 선수, 700경기보다 승리 !

K리거 시즌24, '병지삼촌' 김병지의 올시즌 기록은 리그 20경기, 21실점이다. 20경기에서 7경기 클린시트(무실점), 매경기 슈퍼세이브를 이어가고 있다. 세월을 거스르는 '병지삼촌'의 파이팅은 올시즌 전남 상승세의 힘이다. 전남은 '병지삼촌'의 700경기에 승리를 선물하겠다는 각오로 똘똘 뭉쳐있다. '광양루니' 이종호는 "제주는 저희팀이 별르고 있는 팀 중 하나다. '병지삼촌'의 700경기 축포를 꼭 쏘고 싶다. 극비리에 세리머니도 생각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김병지는 "짜식들, 당연히 이겨야지"라며 싱긋 웃었다. "700경기도 중요하지만, 팀 승리와 함께 하는 것이 중요하다. 전남이 3위이긴 하지만 승점차가 크지 않다. 중요한 기로다. 마지막 3라운드의 첫출발이고, 제주전이다. 꼭 이겨야 한다"며 눈빛을 빛냈다.

'김병지, 내 뒤에 공은 없다.' 700경기 기념 한정판 노란 유니폼에 정성스럽게 사인을 하는 '레전드' 골키퍼의 손끝에 힘이 실렸다. 광양=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