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청난 영광이지만, 불가능하죠."
삼성 이승엽은 3일 한국 프로야구 전대미문의 기록인 400홈런 고지에 올랐다. 단순 계산으로도 20홈런을 20년 계속 쳐야 달성할 수 있다. 꾸준한 자기관리를 통해서만 오를 수 있는 위대한 기록임에는 틀림없다.
이승엽은 3일 롯데전에서 400홈런을 쳐낸 후 자신의 뒤를 이어 이 기록에 다가설 후계자 선수로 주저없이 넥센 박병호를 꼽았다. 박병호는 풀타임 타자가 된 지난 2012년부터 지난해까지 3년 연속 홈런왕을 차지했고 특히 지난해에는 2003년 이승엽과 심정수에 이어 11년만에 50홈런 고지를 넘은 자타공인 현존 최고의 홈런 타자다.
올해도 54경기에서 15홈런을 날리는 등 3일 현재 172홈런을 기록중이다. 지난해까지 3년간 한 시즌당 평균 40홈런을 친 것을 감안하면 올 시즌이 끝났을 때 200홈런을 넘어설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
그리고 5년간 꾸준히 40홈런 페이스를 유지한다면 충분히 도전해볼 수 있는 기록. 하지만 4일 목동 한화전에 앞서 만난 박병호는 손사래를 쳤다. 박병호는 "이승엽 선배가 후계자로 지목했다는 것 자체는 엄청난 영광이지만, 400홈런 기록 달성은 힘들다"고 잘라 말했다. 그러면서 "50홈런을 넘어섰을 때 이승엽 선배와 자꾸 비교가 됐는데, 그 자체로 실례다"라며 "다가설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 내게는 영원한 우상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또 박병호는 "박흥식 코치님이 이 선배를 가르치셨고 이어 나도 지도하셨기에, 그런 칭찬을 계속 해주시는 것 같다"며 "이 선배가 '홈런에 대한 스트레스와 압박을 차라리 즐겨라'고 조언을 해주시는데 이를 따라하기가 너무 어렵다"고 강조했다.
사실 본인에게는 부담스러운 비교이겠지만, 박병호는 이승엽에 비견될만큼의 꾸준함과 성실함을 가지고 있기에 기대감이 높을 수 밖에 없다. 또 3년 연속 홈런타자를 차지할만큼 이미 클래스가 다른 타자로 성장했기에 큰 부상만 없다면 400홈런이라는 기록은 타자로서 여전히 전성기라 할 수 있는 30대 중반에 충분히 달성 가능한 목표이기도 하다.
물론 변수는 있다. 박병호는 올 시즌이 끝난 후 구단 동의하에 해외로 진출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이미 팀 동료였던 강정호가 올 시즌 메이저리그 파이러츠에서 맹활약을 하고 있어 빅리그 스카우트들이 박병호의 경기를 면밀히 체크하고 있으며, 본인도 큰 무대에 진출하고 싶다는 뜻을 직간접적으로 밝히고 있다. 이승엽도 9시즌이 끝난 후 국내에서 324홈런을 친 상태에서 일본에 진출, 8년간 뛴 바 있다. 박병호가 해외에 진출한다면 국내 기록은 멈추기 때문에 기록 달성이 어려워지는 것은 사실이다.
이를 감안, 리그 구분없이 개인 통산 400홈런은 가능하지 않냐는 질문에도 박병호는 "그것조차도 힘들 것 같다. 아마 지금 현역으로 뛰고 있는 선수 가운데선 달성할 선수가 없을 것 같다"며 또 다시 강조했다.
본인은 계속 부정함에도 불구, 박병호는 대기록을 쏘아올릴 가능성이 가장 높은 타자임에는 분명하다. 게다가 이승엽과 계속 비교되는 이유는 겸손함 때문이다. 이승엽은 자신이 일궈낸 기록에 만족하지 않고 늘 도전하는 자세를 유지하는 선수로 유명하다. 야구를 대하는 자세만큼이나 야구 외적인 부분에서도 모범을 잃지 않는다.
그런 면에서 박병호도 늘 겸손함을 잃지 않고 있다. 어려운 시절을 겪으며 터득한 삶에 대한 진지함이 묻어난다. 넥센 염경엽 감독이 "병호가 자신감을 내비쳐도 될 충분한 선수이지만 때로는 겸손함이 지나칠 때가 있다"고 말할 정도다.
이승엽과 야구 스타일은 다르지만 여러가지 면에서 비슷한 박병호가 자신의 우상과 같은 길을 뚜벅뚜벅 걸어갈 수 있을지 기대감이 더욱 커진다.목동=남정석 기자 bluesky@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