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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성간염 김원섭 "1000경기 출전하면 나에게 박수쳐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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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시절 박지성을 가장 명확하게 표현해준 말이 '언성 히어로(Unsung Hero·소리 없는 영웅)'다. 눈에 '확' 들어오는 화려한 플레이는 스타선수에 비해 덜하지만 견실한 활약, 꾸준한 팀 공헌에 대한 찬사다. 요즘 KIA 타이거즈 외야수 김원섭(37)을 보면 요란하지 않고 묵묵히 역할을 수행하는 수식어 '언성 히어로'가 떠오른다.

27일 현재 24경기에 출전해 타율 2할7푼(74타수 20안타), 11타점, 3도루. 20안타 중 장타가 8개(홈런 2개, 2루타 5개, 3루타 1개)나 된다. 4사구 17개를 얻어내 출루율 4할7리, 장타율 4할4푼6리다. 상하위 타순에서 제몫을 해주고, 벌어진 틈을 채워주면서, 빼어난 수비로 외야에 안정감을 심어준다.

프로 15년차 김원섭은 타이거즈 야수 최고참. 리빌딩을 추진하는 팀에서 30대 후반 베테랑은 위기감이 클 수밖에 없다. 최근 3년간 포스트 시즌 진출에 실패한 KIA의 올시즌 화두가 '리빌딩'이다. 그런데 KIA는 조금 다른 분위기다. 베테랑 선수의 경험을 중시하는 김기태 감독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27일 대전 한화생명이글스파크에서 만난 김원섭은 "우리 팀처럼 베테랑 선수를 배려해주는 팀은 없을 것이다. 안 그래도 되는데, 감독님은 경기에서 빠지거나 하위타순에 배치할 때도 미안하다고 말씀하신다. 보통 떠난 감독에 대해 불만이나 섭섭함을 나타낼 때가 있는데, (김기태 감독이 사령탑으로 재임했던)LG 선수들을 만나보면 예외없이 감독님을 좋게 얘기한다"고 했다. 베테랑 선수를 위해주면서 젊은 선수에게 기회를 주는 방식. 리빌딩의 가장 현명한 길인 것 같다.

김원섭은 "욕심이 없다"는 말을 자주했다. 냉철한 현실 인식, 또 지난 몇 년 간의 경험이 많은 걸 내려놓게 했다.

"팀 우승을 맛봤고, 3할 타율도 해봤고, FA(자유계약선수) 계약도 경험했다. 타순이나 출전 유무에 일희일비하지 않는다. 다만 출전 기회가 주어진다면 팀에 도움이 되는 역할을 하고 싶다."

2006년에 처음으로 3할 타율을 경험한 김원섭은 2008~2009년, 2012년까지 네 차례 3할을 때렸다. 2009년 팀 우승에 기여했고, 2012년 시즌이 끝난 뒤 KIA와 3년 간 총액 14억원에 FA 계약을 했다.

더이상 욕심이 없다는 김원섭이지만 한가지 목표가 있다. 통산 1000경기 출전이다.

27일 현재 통산 969경기에 출전해 31경기를 남겨놓고 있다. 김원섭은 "1000경기를 채우면 나 자신에게 박수를 쳐주고 싶다. 그동안 열심히 잘 해왔다고 칭찬해주고 싶다"고 했다. 27일 현재 통산 1000경기에 출전한 선수는 총 116명. 지난 5일 김경언이 1000번째 경기에 나섰다.

부상이 없었다면 좀더 일찍 달성할 수도 있었다. 김원섭은 FA 계약 첫해인 2013년 6월에 왼쪽 발목 인대를 다쳐 수술대에 올랐다. 그해 42경기 출전에 그쳤고, 지난해 44경기에 나섰다. 사실상 지난 두 시즌은 공백기나 마찬가지였다. 지난해 6~7월에는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됐다. 김주찬 신종길 이대형 나지완 등으로 채워진 타이거즈 외야. 그리고 젊은 선수들이 올라왔다. 입지가 줄었들었다.

"'그만둬야할 시기가 온 건가'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면서 2015년에 승부를 던져봐야겠다고 다짐했다. 안 되면 깨끗이 그만두고 싶었다."

지난 겨울에 김원섭은 오전에 최희섭 이범호 등 후배들과 배드민턴으로 민첩성을 키웠고, 오후에는 기아챔피언스필드에서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며 시즌을 준비했다.

오랫동안 선수생활을 한 선배들은 나이가 들면 근육이 올라와 러닝이 싫어진다는 애기를 했다. 실제로 100m를 10번 뛴다고 하면 7~8번은 전력질주가 가능하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쉽지 않다. 다리가 돼야 가능한 외야 수비. 이전과 다른 느낌이 들 때가 있지만 그래도 아직까지 주력에서 뒤진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김원섭은 지난 2월 오키나와 전지훈련 출발에 앞서 진행된 체력테스트에서 베테랑조 2위를 했다.

김원섭은 널리 알려진대로 만성간염과 싸우며 야구와 씨름해 왔다. 보통 선수들처럼 마음껏 훈련을 소화하기 어려운 몸이다. 피로가 쌓이고 체력적으로 무리를 하면 간수치가 올라가 몸이 신호를 보낸다.

누구보다 체력에 자신이 있었는데 단국대 1학년 때 덜컥 만성간염 진단이 나왔다. 한약을 먹어보고 온갖 식이요법을 찾아봤지만 완치가 어렵고 계속해서 관리를 해야한다고 했다. 일반인이라면 정상생활에 어려움이 없는데, 프로야구 선수에게는 커다란 핸디캡이다. 훈련을 마음껏 하지 못하고, 풀타임 출장이 불가능하다. 늘 몸 관리에 써가면서 운동을 해야 한다.

김원섭은 "남들처럼 술마시고 놀면서 야구하면 못 따라간다. 지금까지 모든 걸 자세하면서, 야구에 집중하는 생활을 해 왔다"고 했다. 그래서 젊은 선수들을 보면 해주고 싶은 말이 많다. 그는 "자질있는 젊은 선수들이 많은데 좀 더 야구를 파고들어야 한다. 술먹고 노는 걸 2~3년 자제하고 야구에 열중하면 실력이 금방 늘텐데 안타까울 때가 있다"고 했다.

그에게 지금 야구는 '인생의 거의 모든 것'이다. 경기장 안팎에서 온통 야구생각 뿐이다. 거실과 안방 등 집안 곳곳에 배트를 놓아뒀다고 한다. 지난 경기를 복기하고 경기 상황이 떠오를 때마다 배트를 들고 스윙연습을 한다. 집에서도 주로 배트를 들고 논다. 잘 치는 선수의 자료 화면을 꼼꼼하게 살펴보는 건 오랜 습관이다.

김원섭은 "나같은 고참 선수는 매시즌 최선을 다하지 못하면 끝이 될 수 있어. 지난 2년간 존재감이 없는 선수였다. 올해 못하면 내년 시즌에 그만둬야하는 게 프로다. 만약 40세까지 선수로 뛸 수 있다면 40세 시즌 개막에 앞서 은퇴를 미리 밝히고 깨끗이 그만두고 싶다"고 했다. 시즌 시작 전에 은퇴를 예고한 데릭 지터, 마리아노 리베라가 그랬다.

김원섭의 통산 1000번째 경기가 다가오고 있다.

대전=민창기 기자 huelva@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