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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女학생체육]현장르포:여학생들이 체육을 싫어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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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죽이 벗겨진 축구공과 '짱구'가 된 농구공, 배구공, 흙먼지 날리는 운동장에 곰팡이 냄새나는 매트와 뜀틀, 굵은 땀방울을 흘리며 축구에 열중하는 남학생들과 달리 그늘진 운동장 한켠 스탠드에 앉아 작대기로 땅에 동그라미를 그리며 수다 삼매경에 빠진 여학생들. 1980년대 이후 '체육' 하면 가장 일상적으로 떠오르는 '흔한' 체육시간 풍경이다. 체육수업이 여전히 남학생들의 전유물일 거라는 선입견 속에 서울 동숭동 서울사대부여중학교 운동장에 들어섰다.

"와, 저 선수 다리 근육이 장난 아니에요, 튼실한 선수입니다." 서울사대부여중 2학년 '킥런볼(기존의 야구를 모태로 발야구와 럭비를 부분적으로 혼합해 창안한 뉴스포츠)' 체육 수업시간. 낯설고도 발랄한 중계 코멘트가 운동장에 울려 퍼졌다. 캐스터와 해설위원의 맛깔나는 '돌직구' 해설에 여학생들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 '선수'로 경기에 나서지 않는 여학생들이 마이크 앞에 앉았다. 24명이 8명씩 3개조로 나뉘어 두 팀은 대결을 펼치고, 나머지 8명은 경기 진행을 맡았다. 4명은 심판, 2명의 해설-캐스터, 2명이 기록관으로 모두 경기에 관여했다. 소외된 친구들은 없었다. 운동을 잘하든 못하든 모두에게 각자의 역할이 주어진 체육시간이었다. 열심히 기록을 적던 '경기기록관' A양이 말했다. "체육시간이 너무 좋아요. 이 시간이 기다려질 정도에요." '여학생들은 도대체, 왜 운동을 하지 않을까, 여학생들은 왜 체육을 싫어할까?' 기출문제의 정해진 답을 찾으러 나선 첫 발걸음이 보기좋게 빗나갔다.

스포츠조선이 4주간 서울시와 경기도의 초·중·고 10개교, 228명의 여학생을 상대로 설문 조사를 한 결과, 무려 89.5%가 '학교 체육 수업에 적극 참여를 한다'고 답했다. 반대 의견은 10.5% 밖에 되지 않았다.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는다'는 대답을 한 24명 중 75%가 '여건이 된다면 체육수업에 참가할 의지가 있다'고 답했다. 여학생들의 체육수업에 대한 참여 의지는 높았다. 2014년 교육부 산하 학교스포츠클럽 리그운영 지원센터가 발표한 '전국 여학생 체육활동 현황분석'에서도 체육 수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가에 대해 72.8%가 긍정적으로 답변했다.

#."남자애들이 축구 가르쳐줘요. 이것도 스포츠클럽에서 지급해준 축구화에요."

서울 제기동 성일중학교 3학년 여학생의 말이다. 점심시간 땡볕 아래서 15분간 전반전을 마친 3학년 여학생은 축구의 매력에 흠뻑 빠져 있었다. 수년 전부터 학생회가 주최해 만든 성일중학교 '교내 점심리그'는 남학생과 여학생이 함께 어우러지는 화합의 장이다. 2개 학급이 점심시간에 벌이는 축구 대결 중 전반은 여학생, 후반은 남학생이 책임진다. 승부는 주로 여학생의 대결에서 갈린다. '승부의 세계'에서 남녀 구분은 없다. 남학생들은 여학생들에게 축구의 '기술'을 전수했고, 여학생들은 축구화까지 갖춰 신는 열의를 보였다. 공 하나에 우르르 몰려 다니는 여학생들의 모습이 우스꽝스럽기도 했지만, 그녀들의 표정은 진지했고 열정적이었다. 밥 먹고 매점 가기도 바쁜 점심시간, 짧은 15분간 경험한 땀의 맛은 강렬했다. 0대0으로 마쳐 아쉬운 표정을 짓던 B양은 "점심리그를 위해 연습을 많이 해요. 이거 때문에 스포츠클럽 활동으로 축구를 선택했어요. 스트레스도 풀리고, 땀 흘리는 기분이 정말 좋아요"라고 했다.

땀 흘리는 즐거움, 비단 성일중학교 여학생만의 생각은 아니었다. 학교 체육을 좋아한다는 이유 중 무려 91.1%의 여학생들이 '체육을 하면 즐겁다'를 택했다. 두번째로는 '건강 및 체력증진'이 82.3%, 세번째로 '운동기능의 향상'이 81.8%, 네번째로 '스트레스 해소'가 66.3%였다. 흔히 생각하듯 여학생들이 체육시간에 다이어트 효과를 기대할 것이라는 생각은 편견이었다. '체중이 조절된다'(58%)'는 7개의 항목 가운데 6위에 그쳤다. 여학생들도 '달리고 땀 흘리는' 체육 수업 본연의 가치에서 더 큰 만족을 찾았다.

실제 여학생들이 가장 해보고 싶은 체육 수업도 땀을 흘리며 스트레스를 날리는 축구 농구 배구 등 구기 종목(27.2%)이었다. 댄스(댄스 스포츠, 방송 댄스 등 춤 관련 수업), 몸매 가꾸기(요가, 필라테스, 발레, 에어로빅 등) 수업에 대한 수요는 각각 18%, 17.1%로 구기 종목에 미치지 못했다. 임성철 원종고 체육교사는 "스포츠클럽에서 경기가 끝나면 여학생들은 끌어안고 운다. 이기면 승리의 황홀함에, 지면 억울함에 눈물을 흘린다. 한번 경험하면 여학생들이 남학생에 비해 땀과 체육의 쾌감을 2배 이상 느낀다. 체육의 큰 맛을 몸소 느낀 여학생들에게 화장이 지워지고 땀 흘리는 조그만 불편함은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했다.

하지만 일부 학교에서는 체육시간에 소외되는 여학생이 여전히 존재한다. '낙오자' 없는 여학생 체육 수업을 위한 노력과 관심은 향후 지속적으로 필요하다. 교육부는 여학생 체육활성화를 위한 실내체육실, 탈의실 등 인프라를 확충하는 노력과 함께, 문체부와 함께 요가, 치어리딩, 뉴스포츠 등 여성 특화 프로그램 운영도 확대해가고 있다. 여학생들은 체육을 싫어하지 않는다. 지난해 교육부의 체육수업 선호도 조사(학교스포츠클럽 리그운영 지원센터) 결과에서도 67.7%의 여학생들은 '체육을 좋아한다'고 답했다. 운동장 구석에서 만난 C양의 이야기를 곱씹을 필요가 있다. "저희도 하기 싫어서 안하는 게 아니에요. 우리를 이해해주는 선생님, 우리가 쉽게 뛰어놀 수 있는 프로그램 등이 더 많다면 더 재밌게 할 것 같아요." '수용자'인 여학생들의 '니즈'를 정확하게 파악해 이상과 현실의 간극을 좁히는 '맞춤형' 노력은 계속돼야 하고, 확대돼야 한다.

설문조사를 통해 여학생들이 원하는 체육 수업을 직접 디자인하도록 했다. 그 결과, '여학생을 잘 이해하는 여자 체육 선생님(68.4%)', '여학생 전용 탈의실, 샤워실(66.2%)', '몸매 가꾸기 등 여학생 특화 프로그램(65.4%)', '쉽게 배울 수 있는 뉴스포츠 종목(61.4%)' 등이 있다면 체육 수업 참여도가 더 높아질 것이라고 답했다. 하성룡, 박찬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