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진면목은 위기앞에서 드러난다. 마찬가지로 팀의 진짜 힘 역시 어려운 상황에 빠졌을 때 나타난다. 그런 면에서 볼때 이런 결론을 내릴 수 있을 듯 하다. "한화 이글스는 아직 약체다."
매 경기 총력전을 펼친 덕분에 5월말에도 5할 승률을 유지하고 있지만, 본질적으로는 경쟁력이 떨어지는 면이 많다. 무엇보다 간판 선수들이 빠졌을 때 그 자리를 메워야 하는 백업 선수들의 기량이 완성되지 않았다. 26일 대전 한화생명 이글스파크에서 열린 KIA 타이거즈와의 홈경기 때 여실히 입증된 사실이다.
이날 한화는 3대10으로 완패했다. KIA 선발 임준혁의 호투에 막히기도 했고, 상대 벤치의 허를 찌른 작전에 휘말리기도 했다. 4회초 KIA 강한울의 스퀴즈 번트 성공과 한화 공격이던 4회말 1사 만루 때 나온 송주호의 1루 견제사는 이날 경기의 특징을 그대로 보여주는 장면. KIA 김기태 감독이 스승인 한화 김성근 감독의 수를 제대로 꿰뚫었다고 할 수 있다. 스승은 방심한 듯 했다.
하지만 이보다 더 큰 문제는 주전들이 빠졌을 때 나오는 백업들의 미숙함이다. 스프링캠프의 '지옥 훈련'을 통해 많이 성장했지만, 여전히 완성도가 떨어진다. 특히나 다양하게 벌어질 수 있는 상황에 대해 창의적으로 대응하지 못하는 모습마저 나온다. 이런 점이야말로 이날 경기에서 드러난 한화의 진짜 문제다.
이같은 미숙함은 팀의 간판 외야수이자 팀내 타율 1, 2위인 이용규와 김경언이 한꺼번에 빠지면서 드러났다. 이용규는 이날 허리 통증으로 인해 선발에서 제외됐다. 한화로서는 리드오프와 센터라인 수비의 꼭지점인 중견수를 잃은 셈. 김성근 감독은 1번 타자로는 2루수 정근우를 전진배치했고, 중견수로는 송주호를 투입했다. 송주호의 투입은 수비력 강화에 초점이 맞춰진 카드다.
그러나 정작 이 카드는 수비 보다 공격에서 문제점을 노출했다. 리드오프로 나선 정근우는 1회(3루수 땅볼)와 2회(유격수 땅볼)에 모두 부진한 타격을 했다. 공격이 제대로 풀리지 않고, 맥이 끊겼다. 송주호도 마찬가지다. 팀이 1-4로 뒤지던 4회말 무사 만루의 엄청난 찬스를 잡았는데, 이때 타석에 나와 1루수 땅볼을 치는 바람에 3루 주자를 홈에서 죽였다.
이 타격의 아쉬움이 머리속을 지배했을까. 1루에 나간 송주호는 어이없는 견제사까지 당했다. 팀의 추격 기세에 얼음물을 끼얹은 꼴이다. 특히 1번 타자 자리에 앞선 두 타석에서 부진했던 정근우를 빼고 대타 김태균을 넣었던 시점. 그러나 송주호의 견제사로 1사 만루가 2사 2, 3루가 되면서 KIA 배터리는 여유를 얻었다. 김태균을 1루에 내보낸 뒤 부담이 덜한 2번 타자 권용관을 상대하면 됐기 때문. 역시나 이런 승부가 나왔고, 권용관은 3구 삼진을 당했다.
김경언의 이탈도 한화가 지닌 본질적인 문제점을 보여준 계기다. 김경언은 이날 3번 우익수로 선발출전했다가 1회에 교체됐다. 2사 후 사구를 종아리에 맞았는데, 통증이 심해 대주자 황선일로 바뀌었다. 황선일은 외야수다. 적어도 타격에서는 뒤질 지라도 수비에서는 백업으로서 제 몫을 해야 한다. 그러나 황선일은 수비부터 부실했다. 2회초 KIA 선취점의 계기가 된 김원섭의 우전 2루타는 다분히 황선일의 수비 미숙함이 만들어준 면이 크다.
결과적으로 한화는 여전히 주전 위주의 경기력으로 버텨왔다는 뜻이다. 스프링캠프부터 이어진 주전 선수들의 부상 때문에 김성근 감독은 백업 선수 육성에 심혈을 기울여왔다. 일정부분 성과도 있었다. 현재 3루에서 안정적인 수비를 하고 있는 주현상도 김 감독이 만든 작품이다. 하지만 이 외의 다른 포지션 백업층은 만족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위기 속의 실전에서 드러난 한화의 민낯. 강팀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반드시 보완해야 할 점이다.
대전=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