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환(26)이 국제수영연맹(FINA)으로부터 18개월 선수 자격정지 징계를 받았다.
FINA는 23일(한국시각) 스위스 로잔 팰리스호텔에서 박태환의 도핑위원회 청문회를 개최한 직후 18개월 자격정지 징계를 확정해 홈페이지에 공지했다. 예상대로 반도핑에 대한 '무관용원칙'에 따라 징계를 피하지 못했지만, 통상 2년 자격정지가 일반적인 테스토스테론(남성호르몬) 계열의 징계기간보다는 6개월이 감경됐다.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출전의 길이 열리게 됐다. 박태환 청문회팀이 로잔에 결집한 21일 이후 청문회 과정과 18개월 징계의 의미를 살폈다.
▶박태환 '로잔 청문회' 2박3일
박태환은 FINA 청문회를 앞두고 기존의 안토니오 리고치 대신 미국인 하워드 제이콥스 변호사를 선임했다. 우사마 멜룰리(튀니지), 세자르 시엘로(브라질), 제시카 하디(미국) 등 세계적인 수영선수들의 도핑 케이스에서 선수 중심의 변론과 판결을 이끌어낸 경험 많고 명망 있는 변호사다.
19일 스위스 로잔에 도착한 박태환은 20일 도착한 소속사 및 제이콥스 변호사와 함께 이틀간 100여 개의 예상 질문을 숙지하고, 대비했다. 시차도 극복되지 않은 상황에서 자신의 운명을 결정지을 순간이 시시각각 다가왔다. 48시간 내내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기밀유지를 위한 FINA, 박태환측과 현지 취재진의 신경전, 첩보전도 이어졌다. 박태환은 직접 준비한 차량을 통해 청문회가 열리기 2시간 전 로잔 팰리스 호텔에 도착했다. 극도의 긴장감 속에 청문회장으로 들어섰다. 법조인 출신 로버트 팍스 위원장(스위스)과 청문위원 2명이 배석했다. 박태환은 제이콥스 변호사와 나란히 앉아 성실하게 질의에 응했다. 이기흥 대한수영연맹회장, 김지영 대한체육회 국제위원장 등은 참관인 자격으로 참석했다.
FINA는 이날 4시간여에 거친 청문회를 통해 박태환의 의견을 충분히 청취했다. 예상대로 왜 주사를 맞게 됐는지 경위와 과정에 대한 질문이 집중됐다. 지난 10년간 수많은 도핑에서 단 한번도 적발된 적 없었던 모범적인 선수가, 왜 아시안게임같은 중요한 경기를 앞두고 금지약물을 투여했는지에 대한 납득할 만한 설명이 필요했다. 대한민국 검찰의 수사자료를 첨부했다. '고의성 없음'과 함께 '의료상 과실'을 입증할 공신력 있는 증거였다. 박태환은 지난해 7월말 서울 중구 T병원에서 맞은 '네비도' 주사제로 인해 도핑 테스트에 적발된 것으로 판단하고 지난 1월 병원장 김모씨를 검찰에 고소했다. 2월 5일 검찰은 김 원장을 업무상 과실치상, 의료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박태환은 해당 병원장이 한국뿐 아니라 일본, 미국에서 일해온 유능한 의사인 만큼 전폭적으로 믿고 따랐다는 점, 의사가 해당 약물의 문제없음을 이야기했고, 본인은 물론 회사관계자, 매니저가 병원측에 수차례 도핑에 대한 주의를 당부했다는 점, FINA에서 특별관리 대상인 월드클래스 선수로서 지난 10년간 한달에 한두번씩 반복되는 도핑검사에 성실히 응해온 점 등을 적극 소명했던 것으로 보인다. 실수에 대한 겸허한 반성, 선수의 진정성은 가장 중요한 요소였다. 돌발 질문도 나왔지만 박태환은 담담하고 솔직하게 자신의 입장을 설명했다.
▶대한수영연맹의 '박태환 구하기'
청문회 말미에, 참관인으로 배석한 이기흥 대한수영연맹 회장이 이례적으로 발언권을 얻었다. 이 회장은 4분여에 달하는 영문 스피치를 준비했다. 박태환이 대한민국뿐 아니라 세계 수영계에 어떤 선수인지, 선수를 떠나 인간적으로 얼마나 좋은 사람인지를 청문위원들에게 설명하고, 해당국가 연맹의 수장으로서 진심을 다해 선처를 호소했다. 이 회장은 "21일 현지에 도착한 이후 며칠 밤을 새며 영문원고를 달달 외웠다"고 했다.
이 회장은 청문회장에서 청문위원들을 향해 "박태환은 평소 마스터스대회 등을 통해 꿈나무 선수에게 희망을 심어줬고, 올림픽 포상금을 지급할 때마다 꿈나무 장학금으로 후배들을 위해 기부해온 훌륭한 선수"라고 소개했다. "이 좋은 선수를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만들어선 안된다. 한국 수영 발전뿐 아니라 세계 수영 발전에 기여해온 이 선수를 '약쟁이'로 머물게 해선 안되지 않나. 이 젊은이에게 오명을 벗을 수 있는 기회를 달라. 내년 리우올림픽에서 쑨양과 박태환이 경쟁하는 장면이 가져올 감동과 흥행도 고려해달라"고 호소했다.
박태환 개인의 문제가 아닌 대한민국 수영계의 사활이 걸린 일이라는 인식속에 최선을 다했다. 3월초 이 회장은 인천공항에서 상하이 출장중이던 마르쿠레스쿠 사무총장을 만났다. 레바논 동명부대를 격려하고 귀국하던 길, 깜짝 회동이 이뤄졌다. 2019년 광주세계선수권 유치 과정에서 쌓인 상호신뢰는가 돈독했다. 박태환 사건을 허심탄회하게 설명하고, '고의성 없음'을 주장한 후, 관심을 호소했다. 연맹은 스위스 로잔 현지에 도착한 직후 연맹은 본격적인 '박태환 구하기' 작전에 돌입했다. 마르쿠레스쿠 사무총장과의 재차 면담을 통해 '고의성 없음'을 강력하게 주장했다. 정일청 대한수영연맹 전무와 함께 선수의 가치와 패자부활의 기회, 리우올림픽 출전에 대한 간절함을 끊임없이 읍소했다.
▶18개월 징계, '속전속결' 신속한 발표
청문회가 끝난 직후 마르쿠레스쿠 사무총장이 이 회장과 정 전무를 불렀다. FINA로서도 박태환 케이스는 중대사안이었다. 점심도 굶은 채 호텔 레스토랑에서 꼬박 4시간동안 결과를 예의주시했다. 연맹은 사무총장으로부터 직접 '18개월 징계' 사실을 전해들었다. 24일 새벽 2시 박태환의 18개월 징계 사실이 FINA 홈페이지에 공지됐다. 반도핑법에 따르면 청문회의 결정내용은 청문회 후 20일 이내에 대중에게 공개하게 되어 있다. 2~3일 이내에 공개된 예는 많았지만, 청문회가 끝난지 불과 4시간만에 이뤄진 신속한 발표는 분명 이례적이었다. 대한수영연맹측은 "청문회 후 사무총장으로부터 구두로 18개월 징계 사실을 전해들었다. 결과를 기다리는 이들이 많으니, 확정된 내용이라면 시간 끌 것 없이 최대한 빨리 공지해달라고 부탁했다"고 했다. 해당 사실은 곧바로 박태환 측에도 통보됐다.
FINA는 '박태환의 첫 도핑 양성반응에 대해, 청문위원회는 박태환에 대해 지난해 9월 3일부터 2016년 3월 2일까지 18개월 자격정지를 결정했다'고 명시했다. 2016년 8월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의 명예회복을위한 국제적 걸림돌은 사라졌다. 남은 과제는 국내 규정이다. '체육회 및 경기단체에서 금지약물 복용, 약물사용 허용 또는 부추기는 행위로 징계처분을 받고 징계가 만료된 날로부터 3년이 경과하지 아니한 자는 국가대표가 될 수 없다'는 대한체육회 국가대표 선발 규정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한편 대한수영연맹은 25일 오전 귀국, 공항에서 청문회 준비 과정 및 결과를 브리핑할 예정이다. 박태환측과 의견조율을 거쳐 빠른 시일내에 기자회견도 개최할 것으로 보인다. FINA의 기밀유지 조항으로 인해 지난 2개월간 사과도, 해명도 할 수 없었던 박태환의 입장과 향후 계획을 직접 듣는 자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