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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나거나' 무사 나혜진, "검술? 아버지(나한일)께 배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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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월화극 '빛나거나 미치거나'에는 적재적소에서 '빛'을 발하며 이야기의 입체감을 더하는 '미친' 존재감들이 여럿 있다. 그중 하나가 왕소(장혁)가 이끄는 비밀결사대 '조의선인'의 유일한 여자 호위무사 청옥이다. 호족들이 드나드는 기방 월향루에 기녀로 잠입한 청옥은 호족의 동태를 살펴 왕소에게 전달하는 첩자로 극에 긴장감을 불어넣는다. 신비로운 분위기와 빼어난 미모, 거기에 허스키한 목소리까지. 잠깐의 등장만으로도 선명한 인상을 남긴다. 매혹적인 청옥을 연기하는 신인배우의 이름? 나혜진이다.

"촬영장에 가면 저 혼자 여라라서 무척 사랑받고 있어요. 선배님들이 춥다고 손난로도 주시고 먹거리도 챙겨주세요. 장혁 선배님도 먼저 다가와서 다정하게 말 걸어주셔서 정말 고마웠어요." 매서운 겨울바람을 녹이는 훈훈한 촬영 분위기에 바짝 군기 든 신참 나혜진도 금세 마음을 녹였다.

'빛나거나 미치거나'는 드라마 데뷔작이다. 본 방송을 꼭꼭 챙겨보고 방송 다음날 아침 떨리는 마음으로 시청률도 확인한다. 아직까지 분량이 많지는 않지만 아쉬움보다는 설렘과 기대감이 더 크다. 사실 청옥은 시놉시스상에 4~5줄 정도로 간략하게 설명된 인물이다. 봄날의 노랑나비 같은 자태를 지닌 여인이고, 검을 잘 다루는 무사라는 특징 정도만 나와 있다. 나혜진은 자신의 상상을 더했다. "아마도 아버지의 대를 이어서 조의선인에 몸담게 됐을 거고,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난 아버지를 대신해 동생을 지켜오지 않았겠느냐"고 한다. 방송을 보면서도 "화면 속 왕소와 신율(오연서)이 이런 상황을 겪고 있을 때 월향루의 청옥은 처음 경험해보는 기녀의 삶을 몸에 익히느라 실수도 하고 당황도 하지 않았을까" 상상하면서 청옥과의 끈을 놓치지 않기 위해 부단히 애쓴다.

이제 막 데뷔한 배우라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나혜진에게 연기는 삶의 일부로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있다. 사실 알고 보면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보고 자란 환경이 연기자의 삶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드라마 '연개소문', '영웅시대', '야인시대' 등에 출연한 중견배우 나한일이다. 외동딸이다. 어린 시절엔 모델을 꿈꿨지만 아버지의 영향으로 나혜진도 어느 순간 배우의 꿈을 품게 됐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어머니에게 졸라서 모델스쿨에 들어갔어요. 당시엔 최연소 모델 지망생이었죠. 그러다 6학년 때 유학을 떠나 뉴질랜드에서 3년 반, 이후 캐나다에서 1년 동안 공부했어요. 그런데 점점 연기가 하고 싶어지는 거예요. 결국 고등학교 1학년 때 한국에 계신 부모님께 전화했어요. 연기하고 싶다고, 그래서 한국에 돌아가야겠다고요."

한국에 돌아와 일반 인문계 고등학생이 된 나혜진은 연기를 배우기 시작했고 중앙대 연극영화과 09학번으로 입학했다. "자꾸만 관심사가 연기 쪽으로 가더라고요. 어릴 때부터 너무나 익숙하게 봐왔기 때문인 것 같아요. 제가 연기를 하고 싶다는 말씀드렸을 때 아버지가 딱 한마디만 물어보셨어요. 진짜로 하고 싶은 일이냐고요. 그 말씀이 무엇을 뜻하는지 잘 알고 있어요. 너무 힘든 분야잖아요. 그래도 꼭 하고 싶다는 제 대답에 아버지는 아무 말씀 없이 지금까지도 저를 묵묵히 응원해주고 계세요."

한국해동검도협회 총재인 아버지 덕분에 어린 시절부터 익힌 검무와 검도는 나혜진이 '빛나거나 미치거나'에 캐스팅되는 데 결정적인 도움이 됐다. 그러고 보면 나혜진에게 배우의 길은 정해진 운명이었던 것 같다. 첫 데뷔작인 영화 '롤러코스터'도 우연 같은 운명으로 찾아왔다. 이전 소속사에서 중앙대 선배인 하정우에게 인사할 기회가 있었는데, 다음날 오디션을 보러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후덜덜 떨면서 '롤러코스터'의 감독 하정우를 만났고 대본리딩을 마친 뒤 스튜어디스 중 한명으로 캐스팅이 됐다. 이후 독립영화 '족구왕'에서 '자꾸 나오는 여학생2' 역을 맡아 관객들의 웃음보를 터뜨렸고, 여러 편의 단편영화에도 출연하며 차곡차곡 연기력을 쌓았다.

"급하게 먹으면 체하잖아요. 천천히 먹으면서 잘 소화하고 싶어요. 배우 생활 오래해야 하니까 길게 봐야죠. 앞으로도 역할에 국한되지 않고 많은 작품을 하고 싶어요. 작품마다 늘 배워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하지원 선배처럼 다양한 장르를 소화하고, 전도연 선배처럼 한 인물의 긴 호흡을 연기할 수 있는 배우로 성장하고 싶어요." 김표향 기자 suza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