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한국시각) 호주 시드니의 호주스타디움에서 열린 한국과 이라크의 2015년 호주아시안컵 4강전. 2-0으로 앞선 후반 48분 기성용(스완지시티)이 한국영(카타르SC)과 교체돼 그라운드를 빠져 나왔다. 울리 슈티릴케 A대표팀 감독은 기성용에게 악수를 건넸다. 이어 그의 손을 강하게 잡아당기며 '격하게' 끌어 안았다. '캡틴'으로 그라운드 안팎에서 대표팀을 이끈 기성용에 대한 고마움과 믿음의 표현이었다.
그러나 한국의 선전 소식을 듣게 된 게리 몽크 스완지시티 감독의 표정은 일그러졌을 것 같다. '한국의 탈락=기성용의 조기 복귀' 시나리오를 그렸을 몽크 감독이다. 한국의 결승행(31일 시드니)으로 기성용 없이 치러야 하는 경기가 한 경기 더 늘었다. 당초 복귀전으로 꼽았던 사우스햄턴전(2월 2일) 출전이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영국 웨일즈 스완지의 언론도 기성용의 부재에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웨일즈의 지역지인 사우스웨일즈 이브닝포스트는 27일 '기성용은 올 시즌 스완지시티에서 최고의 활약을 펼친 선수 중 한 명이다. 하지만 기성용이 없는 스완지시티가 고전하고 있다. 몽크 감독이 기성용의 복귀를 간절하게 바라고 있다'며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 기성용이 없는 스완지시티는 최근 2연패에 빠졌다. 첼시에 0대5로 대패했고, 블랙번과의 FA컵에서도 1대3으로 패했다. 기성용이 결장한 4경기에서 1승1무2패로 부진을 거듭하고 있다. 영국 BBC의 레이튼 제임스 해설위원은 칼럼을 통해 '기성용을 기용할 수 없는 몽크 감독이 어려움에 처했다'면서 '기성용의 결장이 첼시전 참패의 주된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기성용의 역할이 워낙 컸다. 기성용은 아시안컵 출전 이전까지 올시즌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의 전경기를 소화했다. 리그 20경기 중 19번 선발 출전했고 이중 풀타임을 18번 소화했다. 90%가 넘는 패스 성공률에 3골-1도움을 기록하며 스완지시티에서는 없어서는 안될 소금 같은 활약을 펼쳤다. 셸비, 캐롤 등이 기성용의 빈자리를 메웠지만 존재감까지 채우지 못했다. '대체 불가'였다. 기성용이 빈자리가 유독 눈에 띄었다.
그의 존재감은 슈틸리케호에서 더욱 빛나고 있다. 그는 55년만에 아시안컵 정상 탈환에 도전하는 슈틸리케호의 주역이고, 든든한 기둥이다. 그에게 아시아 무대는 좁았다. 조별리그를 포함해 4강전까지 5경기에 모두 선발 출전했다. 대회 공식 통계업체인 옵타 스포츠의 자료에 따르면 기성용의 5경기 패스 성공률은 92.8%였다. 그가 잡으면 동료들은 물론 팬들도 안심이 된다. 노련한 볼 컨트롤로 상대 수비진을 유린하고, 방향과 거리를 자유자재로 조절하며 날카로운 패스를 넣어준다. 슈틸리케 감독이 추구하는 '점유율' 축구는 기성용이 있기에 가능하다. '기성용 시프트'는 슈틸리케호의 또 다른 무기다. 우즈베키스탄과의 8강전에서 기성용은 수비형 미드필더→섀도 공격수→윙어로 '3단 변신'을 했다. 부상으로 중도 하차한 구자철(마인츠), 이청용(볼턴)의 빈 자리까지 메웠다. 이라크전(4강전)에서는 후반에 다시 윙어 역할을 소화했다. 사실상 전경기에서 풀타임(이라크전 후반 48분 교체)을 소화하며 체력이 바닥났지만, 경험으로 만회했다. 마지막 한 고비만 넘으면 된다. 학창시절을 보낸 '제2의 고향' 호주에서 우승컵에 입맞춤 할 순간을 떠 올리며 기성용은 이를 악물고 있다. 이번 아시안컵이 슈틸리케호와 스완지시티에서 '대체 불가'한 기성용의 존재감을 다시 확인할 수 있는 계기가 되고 있다.
한편, 스완지시티는 기성용의 복귀 시점을 조율하는 것으로 아쉬움을 대신하고 있다. 기성용 측은 "몽크 감독이 기성용에게 '결승전이 끝난 뒤 연락을 다시 하자'고 했다"고 밝혔다. 사우스웨일즈 이브닝포스트는 '2월 8일 열리는 선덜랜드전을 통해 기성용이 복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체력 회복이 변수다. 기성용 측은 "체력이 바닥이 났다. 경기 출전 여부 역시 체력 회복 상태를 보고 결정하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하성룡 기자 jackiech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