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 경기 뛴다는 것이 얼마나 큰 기쁨인지 모르겠어요."
수화기 너머 들리는 고차원(28·수원)의 목소리에는 진심이 담겨 있었다. "선수라면 경기 출전에 목을 메는 것이 당연하지요. 그래도 저의 경우에는 정말 특별합니다"고 했다. 그럴 수 밖에 없었다. 한 때 축구를 포기할까도 생각했었다. 벼랑 끝에서 돌아온 그이기에 한 경기 한 경기가 남다른 의미일 수 밖에 없다.
고차원은 그렇게 유망한 선수가 아니었다. 서울체고 재학시절인 2003년 17세 이하 대표팀 소속으로 5경기에 나선 것이 전부였다. 이후 대표팀과는 인연을 쌓지 못했다. 2009년 아주대를 졸업한 뒤 전남에 입단했다. 첫 시즌에는 20경기에 나서 1골-2도움을 넣으며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2010년부터 고난이 찾아왔다. 부상이었다. 2010년 여름 훈련 도중 오른발목을 다쳤다. 처음에는 큰 부상이 아니었다. 무리한 욕심이 부상을 키웠다. 완전히 회복이 되기 전 훈련을 했다. 다시 부상이 악화되면서 경기에 제대로 나서지 못했다. 2010년 내내 8경기 출전에 그쳤다. 자신감도 떨어졌다. 2011년 입대를 선택했다. 군 문제부터 해결해야만 했다. 상주에서 고차원은 다시 날아올랐다. 2011년과 2012년 두시즌동안 상주에서 51경기에 나서며 7골-2도움을 올렸다.
2012년 9월 제대 후 전남에 복귀했다. 하지만 또다시 부상 악령이 그를 덮쳤다. 오른 무릎 내측 인대를 다쳤다. 전남 복귀 후 4경기를 뛴 뒤 그대로 시즌아웃됐다.
2013년은 더 힘들었다. 그해 동계훈련은 그 누구보다도 열심히 했다. 몸상태를 최대한 끌어올렸다. 하지만 시즌 시작 직전 오른쪽 허벅지 뒷근육이 올라왔다. 절망이었다. 부상 회복에만 한달 반이 걸렸다. 경기 출전에 적합한 몸을 만드는데도 또 다시 한달 반이 걸렸다. 출전 준비를 마쳤을 때 트레이드 소식을 접했다. 수원 임경현과 팀을 맞바꾸었다. 갑작스러웠지만 새로운 팀에서 잘하겠다고 다짐했다.
2013년 7월 3일 대전과의 홈경기에서 첫 선을 보였다. 이후 연기처럼 사라졌다. 부상이 재발했다. 왼쪽 허벅지 뒷근육이 올라왔다. 팀 선수들과 코칭스태프를 볼 면목이 없었다. 축구를 포기하고 싶었다. 그 때 서정원 감독의 한 마디가 큰 힘이 됐다. 서 감독은 고차원을 볼러 "불안해 하지마라. 나는 너를 계속 지켜봤다. 성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회복에만 매진해라. 너만 준비되면 일어설 수 있는 기회를 줄테니까 몸부터 만들어라"고 했다.
서 감독의 믿음 속에 고차원은 재활에만 전념했다. 2013년 시즌을 날려버릴만큼 오래 걸렸다. 그래도 조바심을 내지 않았다. 서 감독의 말을 믿고 자기 몸에만 집중했다. 여기에 자신이 부활해야할 이유가 하나 더 있었다. 2012년 12월 결혼한 아내 박현수씨와의 사이에 사랑의 결실이 찾아왔다. 소중한 딸이었다. 이제까지 기다려준 아내 그리고 새로 태어날 딸에게 멋진 남편이자 아빠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2014년 터키 동계훈련에서 고차원은 달라져 있었다. 경기에 나서도 무리가 없을만큼 몸상태가 좋았다. 연습경기에서는 날렵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첫 출전은 3월 22일 포항과의 3라운드 원정경기였다. 선발이었다. 2012년 11월 이후 1년 4개월만의 선발 출전이었다. 골까지 넣었다. 1대2로 졌지만 자신감을 회복하기에 충분했다.
이후 고차원은 꾸준히 경기에 나섰다. 25경기에 출전했다. 22경기가 선발 출전이었다. 포항이나 전북, 울산, 서울같은 강팀을 상대할 때 중용됐다. 화려한 발재간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패싱 조율 능력이 뛰어나고 활동량이 넓다. 수비력도 일품이다. 수원의 2위 확정에 큰 힘이 됐다. 수원팬들은 고차원에 대해 '수원의 박지성'이라면서 엄지를 치켜세우곤 한다. 서 감독은 "언제나 제 몫을 해주는 선수다. 우리팀에서는 없어서는 안될 존재다"고 평가했다 .그런 찬사들을 들으면 기분이 좋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좋은 것은 경기에 뛰고 있다는 사실이다. 고차원은 경기 출전의 소중함을 기억하면서 앞으로도 더욱 잘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재활훈련을 하면서 언제나 동료들과 함께 그라운드를 누비는 상상을 했어요. 올 시즌 처음에는 같이 훈련하는 것만으로도 벅찼어요. 그러다보니 여기까지 왔네요. 정말 잊지 못할 한해입니다. 앞으로도 팀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심장이 터지도록 뛰어다닐 겁니다. 그래서 아내와 5개월된 딸 민지에게 멋진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요." 이 건 기자 bbadagu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