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밖에 몰랐던 송희채(22·OK저축은행)는 고창 흥덕초 3학년 때 배구부 창단 멤버로 배구의 매력에 푹 빠졌다. "배구는 고급 기술이다. 공을 틀어 때려 상대 블로킹을 속이거나 상대 코트의 빈 곳으로 연타를 넣는 것이 재미있었다."
초중고 시절에는 공격수 랭킹 상위권이었다. 또래보다 기본기가 좋아 중학교에 올라가면서 센터에서 레프트로 포지션을 변경했다. 장점인 공격력이 폭발했다. 그는 "한 경기에서 20득점 또는 30득점을 할 때도 있었다. 고등학교 때는 한 대회에서 300~400개씩 공을 때리기도 했다"고 말했다. 송희채의 활약 덕분에 우승도 10차례 이상 맛봤다. 최우수선수(MVP)상도 5차례나 수상했다.
배구 인생의 기로는 남성중 3학년 때 찾아왔다. 송희채는 "소년체전 우승을 하고 MVP도 타고 기분이 좋았을 때였다. 그런데 부모님께서 야구를 해볼 생각이 없냐고 권유하시더라. 1주일간 휴가를 받아서 부모님과 진로에 대해 고민을 했었다. 그러나 좋아하던 배구를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고 말했다.
송희채의 배구 인생은 경기대에 입학하면서 달라졌다. 분업화된 환경에서 공격보다 수비의 역할이 주어졌다. 2m에 육박하는 선수들보다 상대적으로 작은 키(1m90)에 수비형 레프트가 되고 말았다. 그는 "처음 역할이 나눠졌을 때는 억울했다. 나도 공격을 잘 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빠르게 현실을 깨달았다. "프로에 가야될 시기가 다가오면서 현실을 직시했다. 월등한 점프가 아니면 나같이 공을 많이 때리는 스타일이 먹히지 않겠더라. 그래서 현실을 받아들이고 자신감을 가지고 있던 수비 부분에 더 초점을 맞췄다"고 설명했다.
지난시즌 밟은 프로 무대에서도 송희채의 역할은 수비형 레프트였다. 김세진 OK저축은행 감독도 송희채의 안정된 수비력을 눈여겨봤다. 김 감독이 송희채를 송명근 이민규와 함께 '경기대 신인 트리오'에 포함시킨 이유였다.
자신의 역할이 바뀌면서 롤모델도 변했다. 송희채는 "공격을 많이하던 초중고 시절에는 롤모델이 신진식 삼성화재 코치님이었다. 나와 키도 비슷한데 점프도 높고, 수비도 잘해 만능형 레프트로 인정받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외국인선수가 배구 코트에 등장한 뒤에는 닮고 싶은 선배가 석진욱 OK저축은행 코치님이다. 공격수가 안정된 공격을 할 수 있도록 전폭적인 도움을 줬던 석 코치님의 장점을 배우고 있다"고 전했다.
송희채의 플레이는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안정된 서브 리시브와 디그로 정확하게 세터에게 연결해주는 것이 임무다. 이렇다보니 포인트를 내는 공격수보다 주목을 덜 받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팀 내에서 송희채는 공격수 못지 않는 가치를 지닌다. '언성 히어로'다.
송희채는 17일 우리카드전에서 오랜 만에 공격에서 신바람을 냈다. 그는 "시몬의 컨디션이 안좋다보니 레프트 공격에 치중하는 면이 많아졌다. 나에게도 공격 기회가 자주 와 신나게 공격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100% 만족은 아니었다. 이날 김규민과 함께 3개의 블로킹으로 높이를 장악했던 송희채는 다른 경기보다 리시브 성공률이 떨어졌다. 이날 29개의 리시브 중 2개의 실수를 범했다. 그는 "공격 비중이 커지다보니 눈에 띄긴 했다. 그러나 내 주 역할을 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진회기자 manu35@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