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체가 되어서 왔다." 최강희 전북 감독은 2009년 이동국과의 첫 만남을 이렇게 기억했다. 이동국이 발끈(?)했다. "완전 나를 죽이는 말이다. 시체는 아니었다. 식물인간 정도였다."
2009년 성남에서 전북으로 이적한 이동국의 미래는 어두웠다. 2007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미들즈브러에 이적했으나 적응에 실패하고 1년 반 만에 K-리그로 돌아온 이동국은 성남에서도 13경기에 출전해 2골-2도움에 그쳐 '퇴물' 치급을 받았다. 그의 부활을 예상하는 이는 드물었다. 그로부터 6년이 지난 2014년, 그는 화려한 부활에 성공했고 35세에도 여전히 한국을 대표하는 최고의 공격수 자리를 지키고 있다. K-리그 개인 통산 최다골의 타이틀과 가슴에 새긴 세 개의 별은 '퇴물'에서 '우승 청부사'로 거듭난 이동국에게 주어진 값진 훈장이었다.
▶퇴물에서 우승청부사로
"환경만 만들어주고 믿음이 형성되면 부활할 수 있다고 믿었다. 일주일에 두 번씩 만나서 대화를 나눴다." 2009년, 성남에서 바닥까지 추락한 이동국을 영입한 최강희 감독은 부활 가능성을 믿었다. 이동국의 마음의 짐을 내려주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했다. 반면 이동국은 마음이 급했다. 이동국은 "2009년 동계훈련에서 연습경기 10경기를 뛰었는데 1골도 넣지 못하고 돌아왔다. 무엇이라도 보여줘야 한다는 압박감이 많았다"고 회상했다. 한 시즌만에 최 감독의 믿음은 현실이 됐다. '퇴물' 이동국의 포효를 다시 이끌어낸 건 최 감독의 믿음이었다. 이동국은 "'경기장에서 할 것만 하면 골은 터지니 믿고 기다려라'면서 감독님이 계속 믿어주셨다. 이런 감독님의 믿음에 시즌이 시작되고 골이 터졌고 예전에 내가 가지고 있던 모습들이 운동장에서 나타나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해 이동국은 축구 인생 최고의 한 시즌을 보냈다. K-리그에서 22골을 넣으며 생애 첫 득점왕을 수상했고 전북은 1994년 창단 후 K-리그 첫 우승의 환희를 맛봤다. 지금도 짜릿함은 여전하다. "아무래도 첫 해(2009년) 우승했던게 기억에 많이 남는다. 우승을 하기 위해 정말 많은 고생을 했는데 모든 것을 다 가진 느낌이었다. 당시의 짜릿함을 잊을 수 없다."
이동국과 전북의 역사도 이때부터 함께 시작됐다. 2011년 전북은 두 번째 우승컵을 들어올렸고 2014년 마침내 세 번째 우승컵에 입맞춤을 했다. 이동국의 '킬러 본능'은 전북에서 더욱 꿈틀댔다. 2009년 전북 입단 이후 6시즌 연속 두자릿수 득점에 성공하며 K-리그 역사상 가장 많은 득점(167골)을 기록한 선수로 올라섰다. 1998년 프로에 데뷔한 이후 2008년까지 10년 넘게 단 한개의 우승 트로피도 품지 못했던 이동국은 지난 6년간 전북의 세 차례 우승을 이끌어낸 '우승 청부사'로 다시 태어났다.
▶마음을 훔친 구단주의 특별 선물
이동국과 전북의 인연은 올해로 6년째다. "40세에도 축구장에 있고 싶다"던 이동국이 바람이 이뤄지면 전북과의 10년 동행도 가능한 시나리오다. 자본 논리가 지배하는 프로 스포츠의 세계지만 이동국과 전북의 관계는 '돈' 이상의 끈끈함이 있다. 이동국이 전북 잔류를 위해 수십억원의 연봉을 제의한 중동 클럽의 러브콜을 거절한 일화는 워낙 유명하다. 재기를 도운 최 감독과의 의리가 끈끈함의 밑바탕이다. 여기에 이동국은 올해 '전북'의 이름을 다시 한 번 가슴에 새겨 넣었다. 정의선 전북 구단주(현대자동차 부회장)의 특별 선물 덕분이다. 정 부회장은 최근 이동국을 서울 양재동 본사로 초청해 11인승 승합차(스타렉스 리무진)를 선물했다. 전북 유니폼을 입고 통산 100골을 넣은 이동국만을 위한 깜짝 선물이었다.
이동국은 자신의 아파트 주차장에 세워 놓은 승합차 앞에서 포즈를 취한 사진을 보여주며 "부회장님이 100골을 넣은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선물을 주고 싶어하셨는데 곧 다섯째가 태어난다는 얘기를 들으셨다면서 큰 차를 선물해주셨다"고 말했다. 2009년 K-리그 첫 우승 기념으로 전북에 클럽하우스를 선물했던 정 부회장의 또 한번의 배려에 이동국은 깜짝 놀랐단다. "세심한 것까지 신경써주시니 정말 부회장님께 감사했다. 솔직히 전북 경기 안지켜보실줄 알았는데 대화를 나눠보니 세세한 것까지 다 알고 계셔서 놀랐다."
정 부회장의 특별 선물은 아내와 네 딸, 곧 태어날 아들 등 7명 대가족의 '발'이 되었다. 이동국은 "애들 짐이 정말 많은데 이젠 여유가 있다. 차 안에 TV가 나오니 애들도 심심해하지 않는다. 이동하기 편안해졌다"며 웃음을 보였다. 구단주의 특별한 사랑, 이동국은 자신만의 방법으로 보답을 약속했다. 2015년 K-리그, 아시아챔피언스리그(ACL)가 주무대다. "전북이라는 팀에서 100호골까지 넣을 줄 몰랐다. 이제 이 팀을 위해 더 많은 골을 넣고 싶다는 생각이 더욱 강해졌다. ACL 우승을 노려보겠다."하성룡 기자 jackiech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