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은 역시 둥글었다. 모두의 예상이 빗나갔다. 120분간의 연장 혈투와 승부차기가 끝난뒤 김학범 성남 감독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더블(리그, FA컵 동시 우승)'을 노리던 최강희 전북 감독의 얼굴은 일그러졌다.
성남이 약자의 반란을 일으켰다. 성남이 22월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전북과의 FA컵 4강전에서 승부차기 끝에 승리를 거두고 FA컵 결승에 진출했다. 성남은 11월 23일 서울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FA컵 결승을 치른다.
K-리그 클래식 1위를 질주 중인 전북을 상대로 김 감독은 수비적인 전술을 들고 나왔다. 올시즌 리그에서 전북에 3전 전패를 당했다. 정면 대결에서 희망을 찾을 수 없었다. 이동국 이승기 한교원을 내세운 전북의 공격을 막기 위해 김 감독은 곽해성 임채민 장석원 박진포를 수비에 포진시켰고, 중앙 수비수인 이요한을 수비형 미드필더로 내세워 수비벽을 두텁게 쌓았다. 전북의 막강 화력을 막아서겠다는 전략이었다.
경기는 예상대로 흘러갔다. 이동국을 앞세운 전북은 경기 초반부터 공격에 집중했다. 반면 성남은 강한 수비를 앞세워 전북 공격의 날카로움을 상쇄시켰다. 전북은 답답한 공격 흐름이 이어졌다. 빠른 선제골을 위해 서두르다보니 집중력이 떨어졌다. 패스미스가 속출했고, 크로스의 정확도가 떨어져 슈팅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더블 볼란치까지 6명을 수비에 집중시킨 김 감독이 세운 전략의 승리였다. 이에 최 감독은 후반 10분 승부수를 띄었다. 이승현과 정 혁 대신 레오나르도와 카이오를 동시 투입해 공격수를 늘렸다. 전북은 이동국 카이오 투톱을 가동했다. 반짝 효과가 있었다. 이동국과 카이오는 후반 13분부터 30분까지 5~6차례 슈팅을 쏟아냈다. 전북 공격의 날이 날카로워지자 김 감독은 교체 카드로 분위기 반전에 나섰다. 후반 35분 공격수 김동희를 빼고 수비수 윤영선을 투입해 5백을 가동했다. 공격수 김동섭과 김태환을 제외한 8명을 페널티박스 부근에 배치시키는 질식수비였다. 성남은 원하던대로 90분 승부를 0-0으로 마치고 연장에 돌입했다. 연장 30분 승부도 똑같은 양상으로 진행됐다. 결국 승부는 '11m 룰렛'게임에서 결정이 났다. 경기 흐름과 정반대 결과가 나왔다. 성남의 키커 5명이 모두 침착하게 승부차기를 넣었다. 반면 전북은 마지막 키커 이승기가 실축해 고개를 숙였다. 승부차기에서 5-4로 승리를 낚은 성남이 극적인 결승진출 드라마를 썼다.
전주=하성룡 기자 jackiech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