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초 영화 '변호인'은 1100만 관객을 모으며 한국 극장가를 휩쓸었다. 또 올 여름은 '명량'이 1700만 관객을 동원했다. 이 두 작품의 공통점은 실존인물을 소재로 했다는 것이다. 이 가운데 또 다시 실존 인물을 소재로 한 작품이 등장해 눈길을 끌고 있다. 이달 개봉 예정인 '나의 독재자'. 설경구가 무명의 연극배우에서 김일성 대역을 맡아 점차 독재자로 변해가는 성근 캐릭터를 연기했다.
실존 인물을 다룬 작품들의 또 하나의 공통점 하나는 바로 대한민국 대표 연기파 배우들이 출연한다는 것이다. '변호인'의 송강호는 '부림사건'을 모티브로한 이 영화에서 송우석 변호사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모티브로 한 송우석 변호사는 연기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연기하기 쉬운 캐릭터는 아니다. 하지만 송강호는 이 작품에서 "국가는 곧 국민입니다"라는 명대사를 남기며 관객들의 뇌리에 깊은 인상을 남겼다.
최민식은 이보다 5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구국의 영웅' 이순신 장군을 연기해냈다. 이순신 장군 역도 송우석 변호사만큼 쉬운 역이 아니었다. 최민식은 인터뷰에서 "단순히 이순신 장군이니까 용맹한 모습을 보여주고 거북선 무너질 때 절망감에 소리 한 번 지르면 끝이겠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대중들은 단순히 그 정도의 이순신 장군을 원한 건 아닐 것이다. 그래서 더 고민이 많았다"고 말한 바 있다. 실화 영화가 힘들다는 것은 1700만 관객을 모은 현재도 마찬가지다. '명량'은 배설의 후손 들과 법정 공방까지 갈 가능성이 높아졌다. 그만큼 실존인물에 대한 연기는 조심스러운 부분이다.
그리고 '나의 독재자'에서 설경구는 자신을 김일성이라고 믿는 성근을 연기한다. 성근은 무대 위 주인공을 꿈꾸지만 현실은 잡일만 도맡아 하고 있는 무명배우다. 남의 집에 세를 살아도 아들 태식(박해일)이 있어 남부러울 것 없던 성근은 아들이 보는 앞에서 생애 첫 무대를 망치자 하늘이 무너져 내릴 듯한 좌절감에 빠지고 이를 눈여겨 본 허교수에 의해 난생 처음 주연으로 설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자신이 맡은 배역이 남북정상회담 리허설을 위한 김일성의 대역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지만 최고의 무대를 위해 모든 것을 쏟아붓던 그는 어느새 자신을 진짜 김일성이라고 믿게 된다.
설경구는 29일 서울 건대입구 롯데시네마에서 진행된 '나의 독재자' 제작보고회에 참석해 실존 인물을 연기하는 것에 대해 "나는 김일성을 연기하는 것이 아니라 대역이었다. 그래서 '나는 나다'라고 생각하고 연기했던 것 같다"면서도 "행동이나 손 제스쳐 등을 연구하긴 했다. 김일성의 목소리는 공개된 게 별로 없어서 굵게 내려고 노력 했다. 손동작이 많아 손동작 위주로 연기 준비를 했다"고 말했다. 이어 "독재자를 표현하기 어려워 마지막 부분에서는 감독에게 짜증을 내기도 했다"며 "그 정도로 나도 마지막에는 감이 잘 잡히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한 영화관계자는 "영화 속 실존 인물은 논란의 여지도 있고 표현력이나 연기력도 굉장히 중요하기 때문에 연기파 배우들에게 맡길 수 밖에 없다"며 "이런 배우들이 연기를 했기 때문에 작품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그의 말처럼 한국을 대표하는 남자 배우들이 연기한 것이 '변호인'과 '명량'의 성공의 주 요인이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설경구가 연기하는 김일성에 대해 관심이 커지고 있는 이유다.
고재완 기자 star77@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