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에서 내년 1월 방영되는 신작 드라마 '킬미 힐미' 캐스팅 문제와 관련해 배우 현빈과 제작사 팬엔터테인먼트(이하 팬엔터)가 갈등을 빚고 있다. 현빈의 출연이 무산된 과정에 대한 양측의 설명이 미묘하게 엇갈리면서 신경전으로 비화된 분위기다.
앞서 27일 팬엔터 측은 '킬미 힐미'에 현빈이 출연한다는 보도에 대해 "올해 초 대본 집필 전 기획 초기 단계에서 현빈 측에 활동 일정을 한 번 문의한 적은 있으나 대본을 건네는 등의 접촉은 없었다"고 부인하며 "본격적인 대본 집필 과정에서 남자 주인공의 연령대가 20대로 결정되면서 현빈 등을 포함한 30대 남자 배우들은 자연스럽게 후보군에서 제외됐다"고 설명했다.
이어서 "10월 방영을 목표로 대본을 준비하다가 겨울방학 시즌 공략을 위해 편성을 내년 1월로 연기하면서 시기적 소구력과 로맨틱코미디란 장르적 특성을 최대한으로 살리기 위해 남자 주인공의 연령대를 20대로 설정했고 자연스럽게 20대 배우 캐스팅을 진행해 왔다"면서 "사실과 다른 내용을 담은 기사는 막바지에 이른 캐스팅 작업에 심각한 악영향을 미칠 수도 있으므로 제작사 입장에서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자 현빈 측에서 발끈 하고 나섰다. 현빈의 소속사 오앤엔터테인먼트(이하 오앤)는 29일 보도자료를 통해 팬엔터의 설명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팬엔터가 '킬미 힐미'의 10월 방영을 목표로 현빈에게 스케줄을 문의했고 당시는 아직 대본이 나오기 전이었다는 사실은 인정했으나, "대본을 전달한 적도 없다"는 팬엔터의 주장에 대해선 "1차 대본과 이후 수정 대본을 받았다"면서 "최종 고사 시기가 약 2개월 전"이라고 주장했다.
또 "팬엔터가 어떤 의도에서 허위 사실을 공표했는지 모르겠지만 사실을 왜곡하면서까지 한 배우를 폄하하는 건 아니라고 판단한다"면서 "팬엔터 측에 사실 관계만 바로 잡아달라고 요청했으나 팬엔터가 당사의 제안을 거절해 오앤에서 사실 관계를 바로잡는다"고 설명했다.
양측의 설명을 종합하면, 주요 쟁점은 대본을 주고 받았는지 여부에 있다. 배우에게 스케줄을 문의하며 대본을 건넸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출연 의사를 타진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먼저 현빈 입장에서 이번 사안을 보면, 이미 고사한 작품에 자신의 이름이 오르내리는 상황이 불쾌할 수 있다. 또한 "대본을 건넨 적도 없다"거나 "현빈 등을 포함한 30대 남자 배우들이 후보군에서 제외됐다"는 제작사의 설명이 마치 현빈이 캐스팅 우선순위에서 밀린 것처럼 비춰질 수도 있다. 현빈의 소속사 오앤이 "제작사와 배우는 공생하는 관계다. 계약서 상에 명시된, 단순한 갑을 관계는 아닐 것이다. 공동의 목표를 향해 서로 협력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도 그런 이유로 읽힌다. 제작사가 현빈을 캐스팅하지 않은 게 아니라, 현빈이 제작사의 출연 제안을 거절했다는 사실을 분명히 하겠다는 의도다. 결국 명분 싸움이자 자존심 싸움이다. 오앤 측이 "사실을 왜곡하면서까지 한 배우를 폄하하는 건 아니라고 판단한다"고 말한 데서 그 속내를 짐작해 볼 수 있다.
반면, 제작사 팬엔터 입장에선 기본적인 스케줄 확인 작업이었는데 구체적인 출연 제안으로 비춰지는 상황이 부담스러울 수 있다. 더구나 현빈 캐스팅은 이미 한참 전에 무산된 상황이다. 나아가 현빈이 거절한 작품이라고 낙인 찍히는 것에 대해 우려했을 가능성이 있다. 향후 캐스팅 작업에 걸림돌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팬엔터가 "사실과 다른 내용을 담은 기사는 막바지에 이른 캐스팅 작업에 심각한 악영향을 미칠 수도 있으므로 제작사 입장에서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사실 드라마 캐스팅과 관련해 이 같은 문제는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방송사와 제작사가 서로 요구사항이 달라 충돌하기도 하고, 제작사와 배우가 갈등을 빚기도 한다. 먼저 캐스팅된 배우가 상대역 물망에 오른 배우를 거부해 캐스팅이 무산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캐스팅 문제가 밖으로 불거져나온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다.
현빈 측과 팬엔터 사이의 갈등은 결국 '힘 겨루기'에 지나지 않아 보인다. 당사자들에겐 중요한 문제일지 모르겠지만 수개월 전에 종료된 사안에 대해 뒤늦게 입장차를 보이며 논쟁하는 모습이 좋게만 보이진 않는다. 드라마 제작 현실의 '불편한 진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시시비비가 가려지는 것과는 별개로 이 싸움은 분명 양측 모두에 득보다 실이 될 공산이 크다. 김표향 기자 suza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