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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지웅이 비판한 서북청년단 어떤 단체? 적극 활동 안두희 결국 '김구 암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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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지웅 서북청년단 비판

극우반공단체인 서북청년단이 세월호 추모 리본 철거를 시도한 가운데 영화평론가 겸 방송인 허지웅이 이 단체를 거세게 비난했다.

서북청년단은 월남한 이북 각 도별 청년단체가 지난 1946년 11월 30일 서울에서 결성한 극우반공단체로, 이들은 지난 28일 서울광장의 세월호 희생자 추모를 상징하는 노란 리본을 제거하려다 경찰과 서울시 관계자들에 의해 저지당한 바 있다.

이에 허지웅은 이날 자신의 트위터에 "광복 이후 결성됐던 서북청년단을 한국에서 재현된 독일 나치친위대라 할 정도로 부끄럽고 끔찍하며 창피한 역사다. 은하영웅전설의 우국기사단 같은 존재. 최근 '서북청년단 재건위'라는 이름의 단체가 모습을 드러냈다"고 운을 뗐다.

이어 그는 "선진국과 비교하길 좋아하는 한국이 국제사회 구성단위로서 여전히 지속가능한 사회임을 스스로 증명하려면 저 단체(서북청년단)는 심각한 혐오 범죄로 분류되고 관리돼야 마땅하다"고 서북청년단을 비난했다.

또한 허지웅은 "'서북청년단이 뭔데 재건을 하겠다는 거야'하고 그냥 대충 넘어가면 안 된다. 고작 수십 년 전의 끔찍하고 창피한 역사다"며 "저런 이름을 창피함 없이 쓸 수 있게 허용한 우리 사회의 현주소를 부끄러워하며 어른이 어른일 수 있는 마지노선을 사수합시다"라고 강조했다.

서북청년단는 1946년 11월 월남한 이북 각 도별 청년단체가 대공투쟁의 능률적인 수행을 위해 설립한 우익청년운동단체다.

1947년 전국적인 조직으로 확대된 서북청년단은 1948년 12월 대한청년단으로 흡수 통합되면서 해체될 때까지 좌우익 충돌 현장에 나타나 언제나 우익진영의 선봉역할을 했고 1947년 제주 4.3 항쟁 당시 3만5000명의 양민 학살에 가담하기도 했다.

특히 문봉제 중심의 재건파는 이승만의 친위대 역할을 톡톡히 하며 관제 데모에 앞장섰으며, 결국 재건파 출신 안두희가 1949년 6월 26일에 경교장에 들어가 이승만과 대립각을 세우던 김구를 살해했다.

허지웅 서북청년단 비판에 네티즌들은 "허지웅 서북청년단 비판, 완전 무서운 단체군요", "허지웅 서북청년단 비판, 이 사람들은 왜 노란 리본을 제거하려고 한 거죠?", "허지웅 서북청년단 비판, 진짜 옳은 말만 하네요"등의 반응을 보이고 있다. <스포츠조선닷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