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반에 같이 레이스하다가 막판에 치고나가는 전략이었는데, 많이 지쳤다."
'도하-광저우아시안게임' 디펜딩챔피언 박태환이 인천아시안게임 자유형 400m에서 동메달을 따낸 후 진한 아쉬움을 표했다. '라이벌' 쑨양이 3분43초23의 기록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일본 신성' 하기노 고스케가 3분44초48로 2위, 박태환이 3분48초33, 3위로 터치패드를 찍었다. 안방 관중들이 꽉 들어찬 문학박태환수영장에서 잘하고자 하는 부담감, 중압감이 너무 컸다. 경기 직전 마이클 볼 감독이 우려한 대로였다. "물리치료 트레이너가 마사지할 때 긴장이 많이 돼 있다고 했다. 부담감을 떨치라고 이야기하고 있지만 쉬운 일은 아니다"라고 했었다. 박태환 역시 "한국에서 경기하는 것이 약이 될 수도 있는데, 한편으로는 부담이 많이 된다. 컨디션 조절을 잘해왔는데 첫날 경기 이후 몸이 좀 무거운 것이 사실"이라며 고충을 토로했다.
우려는 현실이 됐다. 자유형 400m에서도 안방의 무게를 끝내 떨쳐내지 못했다. 초반 페이스는 좋았다. 0.68초, 특유의 '용수철 스타트'로 물속에 뛰어든 박태환은 첫 50m를 25.90으로 통과했다. 한달전 팬퍼시픽대회에서 막판 역전을 노리다 2위에 머문 하기노는 초반부터 강공으로 나섰다. 25초29, 무서운 기세로 치고 나왔다. 150m를 넘어서며 쑨양이 다시 1위로 나섰다. 박태환은 250m 구간까지는 박빙의 3위를 유지하며, 전략대로 쑨양 하기노와 페이스를 맞췄다. 움추렸던 박태환이 250m 턴 직후 2위로 치고 나오자 박태환수영장은 박태환을 연호하는 팬들의 함성으로 뒤덮였다. 그러나 이후 박태환의 페이스가 급격히 떨어지기 시작했다. 400m는 50m, 8개 구간기록으로 끊어진다. 팬퍼시픽 대회에서 올시즌 세계최고기록(3분43초15)를 작성할 당시 매 50m 구간 28초대 이하를 유지해왔던 이날 150~200m 이후 후반 4구간에서 모두 29초대로 처졌다. 300~350m구간에서 2위 하기노와 2초 이상 거리가 벌어지자 오히려 다음 경기를 위해 힘을 빼는 모습이었다.마지막 350~400m 구간을 28초39로 끊었다. 쑨양은 26초44, 하기노는 26초51이었다. 박태환의 트레이드마크, 특유의 '뒷심'이 실종됐다.
불과 한달전인 지난달 23일 호주 팬퍼시픽수영선수권에서 3분43초15의 올시즌 세계최고기록을 작성했다. 인천아시안게임 쑨양의 금메달 기록보다 0.08초 빠르다. 첫 50m를 25초85로 주파했다. 마지막 구간을 제외한 전구간에서 흔들림없이 28초대를 끊었다. 특유의 장점인 막판 스퍼트가 빛났다. 쑨양에 비해 뒤진다고 생각했던 300~350m 구간에서 27초61로 기록을 앞당겼고, 350~400m 마지막 구간은 특유의 뒷심으로, 26초99에 끊어냈다. 모범적이 레이스였다. 박태환 역시 이런 레이스를 꿈꿨지만 굳어버린 근육은 말을 듣지 않았다. 박태환은 지난 8월 말 입국해 마지막 3주간 인천박태환수영장에서 적응훈련을 가졌다. 불과 일주일전 마지막 구간기록 테스트에서 '세계기록 페이스'가 나왔다는 얘기도 들렸다. 몸안에 시계가 내장됐다고 할 만큼 정확한 구간기록을 맞춰내는 박태환의 레이스라고는 납득하기 어려운 결과였다. 박태환은 "마지막 인천에서의 준비과정에 문제점이 있었다"고 에둘러 말했다. "제가 그동안 준비를 잘해왔지만, 이번 대회 준비에 불찰이 있었다"고 털어놨다. "한국에서 하다보니 이슈가 많이 됐다. 이곳에 와서 처음 2~3일은 좋았다. 연습한대로만 준비했다면 1위 기록도 나올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래도 얼굴이 알려진 국내에서 마지막 경기를 준비하며 좀 집중하지 못하는 상황들이 있었던 것같다"고 패인을 분석했다. 결국 안방 부담감이 독으로 작용했다.
자유형 200m 은메달 직후 엄지부상을 호소하며 계영 800m에 출전하지 않은 쑨양은 건재했다. "금메달을 따서 기쁘다. 박태환뿐 아니라 하기노가 함께해 의미 있었다. 첫 200m에서 어려웠다. 왼손 엄지 부상 때문에 힘들었는데 그걸 이기는 게 가장 힘들었다"며 활짝 웃었다. 인천=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