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 값 비싼 한류스타들이 대거 출연하거나, 스타 작가와 거대한 스케일로 입혀진 드라마도 흥행을 보장하기 어렵다. 지상파 뿐 아니라, 케이블과 종편 채널까지 드라마 전쟁에 합류한 탓에 0.1% 시청률에도 연연하는 때다. 이런 가운데 1등 드라마의 성공 비결에 관심이 모아질 수밖에 없다. 여기에는 참신한 스토리와 탁월한 연출력 등 다양한 이유가 들겠지만, 주연 배우의 연기력과 매력이 큰 몫을 차지한다. 아무리 탄탄한 극본과 연출력이 동반된다 하더라도 연기력이 받쳐주지 않으면 시청자 입장에서 몰입이 되지 않는다. 또 연기력 외에도 주연 배우가 불미스러운 사적인 일에 휘말리거나, 평소 평판이 좋지 않아 이미지에 타격을 입었다면 그 역시도 시청자들의 반감을 사는 악재가 된다.
결국 분명한 사실은 주연 배우가 얼마나 매력적이고, 좋은 연기를 펼치느냐가 드라마의 성공 비결에 있어 매우 중요하다는 점. 그래서 조명했다. 1등 드라마를 만든 1등 주역들을 꼽아봤다.
▶ '야경꾼 일지' 정일우, 성장이 반갑다
'야경꾼 일지'는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귀신을 이용하려는 자와 부정하는 자, 물리치려는 자들을 둘러싼 판타지 액션 활극이다. 정일우는 귀신을 보는 왕자 이린 역을 맡아 열연 중이다. 이린은 권력을 탐하는 무리로 인해 부모를 잃고 왕권에서 밀려나 시덥지 않은 농담을 주고받는 한량으로 살아간다. 점차 자신이 귀신을 볼 줄 아는 능력을 가진 것을 받아들이고, 과거 부모의 억울한 죽음의 배후까지 파헤쳐간다.
기존 사극과는 다른 생소한 판타지 사극과 다소 민망한 CG도 있지만, 이린을 연기하는 정일우의 뚝심은 변함없다. 초반 코믹한 모습도 엿보이는 '허당' 대군에서 야경꾼을 이끄는 진정한 리더로 성장하는 과정을 잘 표현해냈다. 특히 악의술사 사담(김성오)이나 청수대비(서이숙), 박수종(이재용)과의 대립에서 팽팽한 긴장감을 유발하며 시선을 뗄 수 없게 만드는 카리스마를 선보인다.
지난 22일 방송에서 정일우는 귀합 연기까지 선보이며, 물오른 연기력을 과시했다. 귀합이란 귀신을 몸 안에 받아들이는 연기로 이린이 어머니인 중전 민씨(송이우)의 죽음과 관련한 진실을 파헤치기위해 목격자인 김상궁의 혼을 몸에 들인 것이다. 이린이 사건의 진실을 알게되며 '야경꾼 일지'의 2라운드가 펼쳐질 전망이다. 정일우가 있는 한 월화 드라마 경쟁에서 '야경꾼 일지'의 독주는 큰 문제가 없을듯 하다.
▶ '왔다. 장보리' 이유리, 악녀 연기의 지존
이쯤되면 막장 드라마로 비판하기 앞서 '국민'이란 수식어를 더 얹어줘도 될 판이다. 10%대도 진입하기 어려운 드라마 시청률을 40%를 목전에 두고 있으니 말이다. 눈 감고도 틀어놓는다는 KBS 주말 드라마의 시청률을 추월한 지 오래다.
사실 '아내의 유혹', '천사의 유혹', '다섯손가락'을 집필한 김순옥 작가의 작품이기에 어느 정도 시청률은 예상했다. 친어머니를 두고도 부잣집에 입양되기 위해 고아라고 거짓말하는 9살짜리 꼬마 연민정(이유리)은 성장 과정 내내 사고를 쳤다. 잘 사는 집 아들 문지상을 유혹해 가족을 파멸로 몰고가는가 하면, 그의 아이를 낳아 버린다. 자기가 입양된 부잣집 친딸(오연서)이 돌아올까 두려워 사진까지 불태우는 만행을 저지른다. 해도해도 끝이 없는 악행을 저지르는 천하의 악녀다.
어찌보면 말도 안되는 억지스런 전개임에도 이 드라마가 큰 인기를 끄는 배경에는 국민 악녀를 자처하는 이유리의 연기가 있다. 소리를 지르고, 협박하고, 무시무시한 눈빛을 쏘아대는 전통적 악녀 캐릭터에 조롱하는 헛 웃음과 가끔 귀여운 표정까지 지어보이며 다채로운 면모의 악녀를 완성해가고 있다. 이유리가 진짜 연민정인지 헷갈린 정도로 입체적인 악녀를 표현한 탓에 그녀의 안부가 걱정될 정도. 에너지를 다 쏟아붓는 이유리의 악녀 연기를 보는 맛에 시청자들은 '왔다, 장보리'에서 눈을 뗄 수 없다. 시청률이 쑥쑥 오를 수 밖에 없다.
▶ '내 생애 봄날' 감우성, 케미 왕으로 불러다오.
수목 드라마는 사랑으로 물들었다. KBS는 이동욱 이다해 주연의 '아이언맨', SBS는 비(주지훈)와 크리스탈(정수정) 주연의 '내겐 너무 사랑스러운 그녀', MBC는 감우성과 수영 주연의 '내 생애 봄날'이 경쟁 중이다. 이들 중 초반 기선을 제압한 드라마는 '내 생애 봄날'이다. '내 생애 봄날'은 첫 회부터 4회까지 매회 자체 최고시청률을 경신하며 오름세를 이어가고 있다.
'내 생애 봄날'은 시한부 인생을 살다가 장기 이식을 통해 새 심장을 얻은 여자 봄(수영)이 심장을 기증한 여인의 남편 동하(감우성)를 만나 특별한 사랑을 하게 되는 멜로 드라마. 극 초반 우연적인 상황이 지나치게 반복돼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감우성의 멋진 남자주인공 연기가 빛을 발하고 있다. 감우성은 무심한듯 은근 다정한 동하 역을 마치 제 몸에 딱 맞는 옷을 입은 듯 편하게 연기해 시청자들의 호평을 이끌어 내고 있다. 무려 스무살 어린 수영과의 케미에 대한 우려가 감우성의 노련한 연기 속에 자연스레 묻혀 버렸다.
김겨울기자 winter@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