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려는 그냥 기우일 뿐이었다. 양현종(26)은 "태극마크 앞에 부끄러운 모습을 보이지 않겠다"는 자신의 다짐을 실력으로 지켜냈다.
2014 인천 아시안게임에 출전한 한국 야구대표팀에는 두 명의 에이스가 있다. 동갑내기 김광현과 양현종이다. 각각 소속팀 SK 와이번스와 KIA 타이거즈의 에이스로 리그를 대표하는 좌완 선발들. 이들은 류현진이 메이저리그로 떠난 뒤 공석이 된 '한국 최고 좌완'의 명예를 두고 선의의 경쟁을 펼치고 있다.
대표팀 류중일 감독은 일찌감치 이들을 선발한 뒤 활용법을 고민해왔다. 이번 대회 금메달을 위해서는 우선 예선전에서 대만을 이겨야 하고, 다음으로 결승전에서 이겨야 한다. 두 경기 모두 중요하다. 고심끝에 류 감독은 김광현을 1차전과 결승전에, 그리고 양현종을 예선 대만전에 넣기로 했다.
일단 김광현은 스타트를 잘 끊었다. 지난 22일 태국과의 예선 1차전 때 선발 등판해 2이닝 동안 퍼펙트 피칭을 했다. 약체 태국을 상대로 가볍게 몸을 풀며 결승전에 대비했다. 이제 양현종 차례였다. 한국의 금메달을 위해, 그리고 동갑내기 라이벌에 뒤지지 않기 위해 양현종은 24일 대만전에 각오를 단단히 다졌다.
그 결과는 빼어난 호투였다. 양현종은 24일 인천 문학구장에서 열린 대만과의 예선 2차전에 선발로 나와 4이닝 동안 60개의 공을 던지며 단 2개의 안타만 허용했다. 볼넷은 없었고, 삼진은 7개를 잡아낸 무실점 피칭이었다. 대표팀의 원투펀치에 걸맞는 위력이었다. 양현종의 호투 덕에 한국은 10대0으로 8회 콜드게임 승리를 따냈다.
사실 이날 선발 등판을 앞둔 양현종은 기대만큼이나 우려도 샀다. 일단 몸상태가 썩 좋지 않았다. 어깨 통증 때문에 이번 대표팀 훈련 때도 통증 완화 주사를 맞으며 대회를 준비했다. 또 고질적인 '초반 위기'에 대한 걱정도 있었다. 양현종은 '슬로스타터' 유형이다. 경기 초반에는 제구력이 썩 좋지 않다. 그래서 올해도 1회의 피안타율(0.297)이 상대적으로 매우 높다. 피홈런(4개)과 피볼넷(14개)도 1회에 가장 많았다. 가뜩이나 상대가 부담스러운 대만이라 양현종이 과연 경기 초반을 어떻게 풀어낼 것인지에 대한 궁금증이 컸다.
하지만 마운드에 선 양현종은 전혀 흔들림이 없었다. 위기가 없던 것은 아니지만, 이미 양현종의 단단한 심장은 그걸 이겨낼 정도로 커져 있었다. 대만전 1회초 선두타자 천핀지에게 2구째에 좌중간 외야에 떨어지는 안타를 얻어맞으며 불안하게 출발했는데, 오히려 이 안타 후 더 강한 집중력을 보였다.
2번 타자 린한이 희생번트를 성공해 1사 2루의 실점 위기가 찾아왔다. 그러나 양현종은 3번타자 궈옌원을 볼카운트 1B1S에서 1루수 뜬공으로 잡아내며 두 번째 아웃카운트를 만들었다. 이어 4번타자 천쥔시우를 상대하다 1B1S에서 폭투를 하며 2루 주자 천핀지에를 3루까지 내보냈다. 이쯤되면 '1회 징크스'에 무너질 법도 하다.
그러나 양현종은 오히려 이를 악물었다. 천쥔시우와 풀카운트까지 가는 팽팽한 승부를 펼치다 6구째에 회심의 직구를 스트라이크존 한복판에 꽂아넣었다. 어지간한 강심장이 아니고서는 이런 공을 던지기 힘들다. 양현종의 혼이 담긴 직구는 결국 힘차게 휘두를 천쥔시우의 배트에 걸리지 않고, 포수 강민호의 미트에 꽂혔다. 헛스윙 삼진. 양현종이 이겼다.
이후 양현종은 2회와 3회를 퍼펙트로 막아냈다. 스코어가 9-0으로 벌어진 4회초 선두타자 린한에게 좌전안타를 내줬지만, 후속 세 타자를 삼진 2개와 중견수 뜬공으로 돌려세우며 자신의 임무를 100% 완수해냈다. 결국 양현종의 호투가 한국의 10대0, 8회 콜드게임 승리를 부른 것이다.
인천=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