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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 박경수가 만드는 눈물의 반전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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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송합니다."

9월 5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LG 트윈스와 두산 베어스의 경기. LG에는 절체절명의 순간이었다. 치열한 4위 경쟁을 벌이는 두산 베어스와의 맞대결. 4일 2연전 첫 번째 경기에서 무승부를 거뒀기에 이날 경기는 무조건 이겨야 했다. 그리고 이겼다. 해결사 박용택이 3안타 3타점을 폭발시키며 이날의 영웅이 됐다. 하지만 이날 경기 구단 선정 수훈 선수는 박경수였다. 2번타자로 나서 2안타 1득점을 기록했다. 박용택 앞에서 박용택이 결정타를 날릴 수 있도록 밥상을 차렸다. 1할대 타자의 분전. 경기 후 양상문 감독도 "마음 고생이 심했던 박경수가 잘해줬다"라고 공개 칭찬을 했다. 수상 단상에 서 팬들과 마주한 박경수는 대뜸 "정말 죄송했습니다"라고 외쳤다. 팬들은 "괜찮아"를 외치며 박경수를 응원했다. 본인은 "정말 울지 않았다"라고 말하지만 눈물이 핑 도는 모습이었다. 박경수는 당시를 떠올리며 "울지는 않았지만 정말 가슴 속에서 무언가 끓어오르는 느낌이었다. 약한 모습을 보인다고 하실까봐 눈물을 꾹 참았다"라고 했다. 그동안의 아픔과 설움, 이 공개 사과 한 방으로 시원하게 날리는 순간이었다.

2003년 계약금 4억3000만원을 받고 화제 속에 LG에 입단한 성남고 천재 유격수 박경수. 유지현(현 LG 코치)의 대를 이을 선수가 나타났다며 기대가 하늘을 찔렀다. 하지만 그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10년이 넘게 '만년 유망주'라는 꼬리표를 달고 다녔다. 본인에게는 엄청난 고통. 공익근무를 마친 후 올시즌 절치부심 팀에 복귀했다. 하지만 올시즌 더 큰 비난이 박경수를 괴롭혔다. 양상문 감독 부임 후 2루수로 자리를 잡으며 수비에서는 좋은 활약을 펼쳤지만, 방망이가 신통치 않았기 때문이다. 타율 2할을 넘기기 힘들었다. 사람들은 "왜 자꾸 1할 타자를 주전으로 쓰느냐"라며 박경수와 함께 양 감독까지 비난하기에 이르렀다.

그런 박경수가 눈물의 반전 드라마를 써내려가고 있다. 박경수는 14일 삼성 라이온즈전에 2번-2루수로 선발출전해 2안타 2볼넷 1사구 1타점 3득점을 기록하며 테이블세터로서의 임무를 100% 완수했다. 박경수의 활약 속에 LG는 12대3 대승을 거두며 4위 달성의 꿈을 더욱 부풀렸다. 이날 경기 뿐 아니다. 최근 3경기 연속 안타 행진. 10일 KIA 타이거즈전은 3안타 5타점 3득점으로 대폭발했다.

반전의 계기는 별다른 것이 아니었다. 코칭스태프, 그리고 동료들의 믿음이었다. 양 감독은 지난달 29일 SK 와이번스전을 앞두고 "다른 선수가 안타 몇 개를 치는 것보다 박경수가 2루 수비 중심을 잡아주는게 더욱 중요하다"라고 말하며 박경수에게 힘을 실어줬다. 공교롭게도 그날 경기 안타를 때려내기 시작한 박경수는 계속해서 상승 페이스를 타고 있다. 안타를 치지 못하더라도 타석에서 끈질긴 모습을 보이고, 수비와 주루에서 발군의 기량을 과시하고 있다. 박경수는 "야구가 멘탈 스포츠라는 것을 느끼는 요즘이다. 감독님, 그리고 코치님들께서 격려해주시고 믿어주신다는 생각을 하면서부터 더욱 집중을 하게 된다"라고 말하며 "팀 베테랑 선배님들도 항상 등을 두드려주며 힘을 주신다. 결국 마음이 편해지자 플레이가 조금 좋아지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프로에서 주전과 백업, 그리고 1군과 2군을 가르는 요소는 실력이 아니다. 프로에 온 선수들이라면 실력은 정말 종이 한 장 차이다. 주어진 기회를 어떤 선수가 조금 더 편안한 마음으로 살려내느냐, 못살려내느냐의 싸움이다. 물론, 기술적으로도 엄청난 노력을 했다. 박경수는 "김무관 타격코치님과 타격 매커니즘에 대해 연구를 정말 많이 했다"라고 설명했다.

박경수는 타격 부진 동안 자신에게 비난이 쏟아지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박경수는 덕아웃에서 항상 파이팅 넘치고 활기찬 모습을 유지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대부분 선수들은 자신의 성적이 좋지 않고, 욕을 먹을 경우 풀이 죽어있다. 정말 인상적인 부분이었다. 박경수는 이에 대해 "내 성적이 안좋다고, 내가 힘들다고 축 처진 모습을 보이는 것은 팀에 방해가 되는 요인이라고 생각했다"며 "억지로라도 밝게 웃고, 파이팅 넘치는 모습을 보였다. 이런 모습 때문에 동료들도 나를 조금 더 챙겨주고 격려해줬던 것 같다. 너무 고맙게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요즘 너무 좋은데 아시안게임 휴식기라 아쉽다"고 말하며 웃은 박경수는 "솔직히, 말 못할 정도로 힘든 순간들이 많았다. 공개하기 어려울 정도로 힘든 일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부터 만회하면 된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하며 "내 역할은 타석에서 끈질긴 모습을 보이고 수비, 주루 등 기본 플레이를 잘하는 것이다. 휴식기 잘 준비해 남은 10경기 팀 4위를 위해 죽을 힘을 다해보겠다"라고 밝혔다.

물론,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하면 비난을 들을 수밖에 없는 것이 프로의 냉정한 현실이다. 하지만 박경수를 향한 비난은 기대치 때문인지 조금 지나친 측면도 있었다. 야구를 잘하니 비난이 쏙 들어갔다. 이제 비난이 아닌 칭찬의 수위를 그만큼 높여준다면 박경수는 그라운드에서 더욱 화려한 날갯짓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김 용 기자 awesome@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