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살이. 장·단점이 있다. 언젠가 탈출을 꿈 꾸지만 안 살아서 불편한 점이 수두룩하다는 점이 발목을 잡는 요소. 당장 아쉬운 것 중 하나는 문화와 교육이다. 지방에서는 좀처럼 접하기 힘든 문화가 아무래도 많다.
문화적 불균형 해소. 지방 분권을 기치로 내 건 정부도 묘안을 찾고자 하는 과제다. 많은 문화단체들이 지방으로 이전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와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도 전남 나주 혁신도시 이전을 앞두고 있다. 문화예술 진흥의 대표적인 두 기관이 지역으로 이전한다는 것은 상징성이 크다. 인위적 노력을 들여서라도 해소하고자 하는 심각한 서울 지방 간 문화 불균형. 일찌감치 문화예술의 균형발전을 주장하며 문화의 지방화 시대를 실천과 노력으로 이끌어 온 산 증인이 있다. 한국소리문화의전당의 CEO 이인권 대표(57). 본격적 지방화 시대 이전부터 지역에 둥지를 틀고 예술경영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구축한 인물이다. 2003년부터 소리문화의전당의 경영을 10년 넘게 맡아오면서 기반을 뿌리부터 공고히 다졌다. 이렇게 오랫동안 단일 문화예술기관의 경영자로 재직한 것은 매우 이례적. 지난해 10월에는 한국기록원으로부터 최장수 경영자 기네스기록 인증까지 받았다. 선진국에서는 대수롭지 않을 수 있는 이 기록이 국내에서는 최초여서 더욱 주목을 받는다. 공공 분야에서 '정치적인 입김'이 영향을 주는 경우가 많은 우리나라 풍토에서는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그 동안 눈부신 발전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제6회 한국공연예술경영인 대상도 받았다. 10년 넘게 기울여온 이 대표의 노력이 지방화 시대를 맞아 본격 결실을 맺고 있는 셈. 그의 생각은 어떨까. "이제는 과거 수직에서 수평으로 사회문화체계가 균형을 이뤄 나가고 있습니다. 문화예술 분야에서도 명실상부하게 선진형 균형발전의 시대가 틀을 잡아가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기네스기록을 인증 받을 정도로 오랜 기간 성공적으로 예술경영을 이끌어 온 비결이 있을까. "성공의 비결을 굳이 꼽자면 '청지기 정신', '합리적 전문성', '포괄적 지식력'이라고 할 수 있죠. 이 세 가지 핵심요소가 모자이크로 연결되면 예술경영의 그림이 완성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21세기에 들어 국내 최대규모로 전라북도가 건립한 소리문화의전당은 규모의 차별성 못지않게 민간위탁방식을 택했다. 당시 한국의 문화풍토에서 민간위탁이 제대로 운영될 수 있을까 하는 우려도 있었지만 이 대표는 각고의 노력 끝에 실험을 성공시켰다. 정례 경영평가에서 늘 최고 평가를 받아 선진 스타일의 지속 안정 성장의 기반을 정착시켰다. 그동안 네 차례에 걸쳐 우수 문예회관으로 문화관광부장관상을 수상했고 전라북도가 산하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경영평가에서도 금년까지 5차례 연속 최우수 또는 우수 기관으로 선정됐다.
소리문화의전당은 국내에서 유일하게 민간 자율주도 아트센터 예술경영의 롤 모델로 정착되어 저예산 고효율의 성과를 내고 있는 기관. 이는 유사한 전국의 다른 공연장들이 매년 예산과 조직이 팽창되면서 공적재원의 비효율성이 지적되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공공 문화예술기관의 경영자로서 '섬기는 리더십'과 '창조경영', 그리고 '지식정보 공유'를 경영일선에서 솔선수범해 공공 기관에서 보기 힘든 효율적인 조직문화를 구축했다.
그는 천성이 부지런하다. 잠시도 몸을 편하게 눕히지 않고 자신과 조직 발전을 위해 끊임 없이 움직인다. 여가 시간에는 책을 읽고 쓴다. 늘 공부하는 경영자. 공연기획, 아트센터 경영, 영어경쟁력, 자기계발 등에도 통달했다. 그 주제로 지금까지 10권의 책을 내기도 했다. 젊을 시절부터 어학 공부도 꾸준히 해 와 또래에 드물게 유창한 영어를 구사한다. 지난해에는 '영어로 만드는 메이저리그 인생'이란 책을 출간해 글로벌 전문가다운 면모를 과시했다.
스스로를 '노블레스 노마드'(귀족적 유목민이란 뜻으로 명품 등 물건을 소유하기보다 여행, 레저, 공연 관람 등 무형의 경험을 중시하는 새로운 소비층)라 칭하는 이 대표는 서울, 수도권, 지역과 국내외를 아우르며 언론사 문화사업, 공공문화재단, 복합아트센터 등을 두루 섭렵하며 다양한 경험을 축적했다. 중앙일보, 국민일보, 문화일보 문화사업부장과 경기문화재단 수석전문위원과 문예진흥실장, 아시아문화예술진흥연맹 부회장을 역임했다. 현재 한국문화예술회관연합회 부회장, 한국공연예술경영인협회 부회장, 전주세계소리축제 조직위원회 상임위원, 국립중앙극장 운영심의위원과 예원예술대학교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정현석 기자 hschung@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