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전지현 립스틱' 모르면 외계인 취급을 받을지도 모른다. 유행에 민감한 20대 사이에선 특히 말이다. SBS 인기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의 파급효과가 대단하다. 돌아온 그녀, 전지현이 코믹, 호러, 엽기에 멜로를 자유자재로 넘나들고 있다면, 김수현의 내공 100단 연기는 여심을 사정없이 후벼 파고 있다.
화제의 드라마들이 그러하듯 그들이 입고 마시는 모든 것들이 화제가 되고 있지만 이번엔 사뭇 그 양상이 다르다. 이전 인기 드라마에서 스타들의 극중 의상과 액세서리 등은 온라인에서 화제 몰이를 하는 수준이었다. 해당 브랜드가 인지도를 높이고, 스타 이름을 딴 소품들이 온라인 마켓이나 서울 남대문 등지 매대에 등장하는 식이었다. 매출로 따지면, 관련 산업에 미친 영향력이 즉각적으로 수치로 잡히진 않았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이번 전지현의 파워는 진폭이 다르다. 드라마에서 시작된 광풍이 엔터 비즈니스를 뛰어넘어 패션과 뷰티 산업까지 움직이고 있다. '엔터-패션-뷰티 등 쓰리 비즈니스를 들었다 놨다 하는 당신은 진정 요물'이라는 말을 들어도 과하지 않을 정도다. 이들의 메가톤급 영향력, 그 현주소를 살펴보자.
▶'럭셔리 끝판왕' 전지현, "쏴리~, 난 집에서도 명품만 상대해"
극 중 천송이의 18번 중 하나가, 어설픈 영어 발음으로 남발하는 '쏴리(sorry)'다. 외출복은 말할 것도 없고 잠옷까지 명품 퍼레이드를 펼치는 전지현을 보자면, 눈이 즐겁기도 하고 유감스럽기도 하다.닭다리 뜯을 때 전지현이 입은 상의는 400만원쯤은 가볍게 넘겨주는 고가 제품. 기름 묻은 손이 그 엄청난 럭셔리 의상에 닿을까 봐 조마조마 했다는 시청자들이 부지기수다. 그러나 어쩌랴, 천송이기에 그리고 전지현이기에 이 억소리 나오는 명품 잔치가 용서되니 말이다.
실제로 전지현은 극중 2014년 샤넬의 크루즈 컬렉션을 '미친듯' 입고 나온다. 1200만원대 샤넬 블라우스는 기본. 잠옷도 샤넬이다. 김수현을 간호할 때 입은 베이지색 홈웨어(?) 또한 300만원을 훅 넘는 샤넬 신상이다.
얼마나 협찬이 잘됐는지, 전지현이 심지어 샤넬 카디건 두벌을 겹쳐 있기 까지 했다. 이 캐시미어 카디건들은 각각 400만원대. 상의만 800만원 상당이니, '헉'소리가 절로 나올 만하다.
어디 이뿐이랴. 10회만 놓고봐도 다수의 명품들이 등장한다. 전화기를 붙잡고 침대에서 데굴데굴 구를 때 입은 홈웨어는 마크바이마크제이콥스, 에필로그서 의사상담을 받을 때 입은 빨간색 망토는 루이뷔통이다.
그리고 총각김치 담은 그릇을 찾으러 가면서 한껏 멋을 낸 전지현의 망토를 기억하는가. 바로 블루마린 신제품이다. 여기에 발망, 끌로에, 랑방 등 일일이 거론하기조차 힘들 정도다.
"1m73의 큰 키에 긴 다리를 자랑하는 전지현의 스타일이 워낙 좋고, 극중 톱스타로 설정된 점도 영향이 크다. 아무리 여주인공이라도 직업이나 캐릭터로 인해 지나치게 고가 제품을 연달아 입고 나오기 힘든데, 이번엔 협찬에 한계가 없다"고 분석한 한 패션 관계자는 "아마 전무후무, 최다 최고의 명품 협찬 기록을 세우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김수현도 만만치않은데, 최근 입은 회색 카디건은 톰브라운 제품으로 가격은 120만원대. 이외에도 겐조 옴므 등 다양한 럭셔리 콘셉트를 소화해내고 있다.
▶세상에 단 하나뿐인 옷도 기꺼이, 명품들이 납작 엎드린 3가지 이유
지난해 히트 드라마 주인공들을 보면 '비밀'의 황정음이나 '너의 목소리가 들려'의 이보영 모두 경제적으로 여유있는 편이 아니었다. '주군의 태양'의 공효진 또한 마찬가지. 상황이 이러하니 전지현에게 옷 한번 입히려고 난다긴다하는 럭셔리 브랜드들이 줄을 서는 것도 당연하다. 시청자들에게 눈도장 찍을, 몇 년에 한 번 올까말까한 기회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희소성과 더불어 메인 타깃 연령대 또한 아주 적절하다. 어느덧 30대에 접어든 전지현에게 20대 후반부터 30대, 그리고 40대 초반 여성 시청자들은 쉽게 감정이입을 할 수 있다. 상대적으로 경제적인 여유가 있는 30대는 바로 명품 브랜드들의 메인 타깃이라 할 수 있다.
20대부터 40대 중후반까지 폭넓은 연령대의 여심을 훔치고 있는 김수현의 공 또한 크다. 김수현을 보고 눈물 흘리던 여성 시청자들이 바로 옆, 전지현의 의상을 보고 반하게 되는 식이다.
더불어 '극강'의 스타성도 콧대 높은 명품들을 움직이고 있다. 전지현과 김수현이 갖고 있는 각각의 스타성도 엄청난데, 둘의 시너지 효과까지 더해지면서 협찬만 했다하면 화제가 되고 바로 판매로 이어지는 곡선을 정확히 그리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온갖 명품 브랜드들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옷들도 기꺼이 전지현을 위해서 내놓고 있다. 고가일수록 협찬용 의상이 그리 많지 않다. 때로는 단 한벌만 협찬용으로 주요 나라들을 돌게 마련이다. 매장에서 구매 가능한 물량 또한 그리 많지 않은데, 구매 기회를 놓친 소비자들은 온라인에서 해외직구(직접구매)까지 진행하고 있다.
▶'전지현 립스틱, 대기표 뽑아야 산다?' 기존 PPL의 한계를 뛰어넘은 인기 원인
'전지현 립스틱'이라 알려진 제품은 아모레퍼시픽의 롤리타 렘피카(LOLITA LEMPICA) 몽루즈 로즈 걸리 컬러 11번이다. 하루 열개 남짓 팔리던 이 립스틱을 요즘엔 없어서 못판다. 아모레퍼시픽에 따르면, 특히 20대와 30대 회사원들이 밀집해 있는 롯데백화점 서울 명동 본점의 경우 특히 반응이 뜨거워, PPL이후 6배 이상 판매가 급상승했다. 전달 대비 1월 매출 상승률은 무려 350%에 달한다. 급증한 수요에 맞추기 위해 생산라인을 풀가동하고 있지만 턱도 없이 부족한 상황. 일찌감치 12월 초도 물량이 모두 소진됐고, 일부 매장에선 일주일 넘게 기다려야 손에 넣을 수 있다.
드라마속 김수현의 스타일을 지원하고 있는 남성복 지오지아(ZIOZIA)도 마찬가지. 해외 명품들의 경우 국내에 소량으로 수입된 제품이 단기간에 팔려나가는데 그친다면, 이처럼 국내 브랜드들은 보다 큰 영향을 받는다. 전지현을 최근 모델로 내세운 디디에두보는 열손가락에 반지를 끼는 새로운 트렌드를 만들어내는데 성공, 론칭 초기부터 대박을 터뜨렸다. 최근 전지현을 모델로 발탁한 여성복 쉬즈미스 또한 블루코트를 '별에서 온 그대'에 등장시킨 뒤 순식간에 2500장을 다 팔았다.
이처럼 전지현 김수현이 패션과 뷰티 산업에 전무후무,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이유는 메가톤급 스타성과 더불어 극중 자연스러운 이야기 전개에서 그 원인을 찾아볼 수 있다.
브랜드 노출이 자유로와지면서 요 몇년 사이 과도한 PPL은 안 하느니만 못한 결과를 얻는 경우가 많았다. 갑자기 등장한 등산 장면이나 카페 신 등이 대표적인 예. 몇년 전, 한 도넛 브랜드는 뜬금없이 자사 제품을 등장시키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기까지 했다.
그러나 이번엔 이야기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간 설정이 소비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면서 지갑을 열게 했다. 롤리타 렘피카 립스틱은 극중 전지현이 병원에 가기 전 화장을 하는 장면에서 등장한다. 엄청난 고통 속에서도 민 얼굴 외출은 절대 할 수 없다는 여성 심리를 리얼하게 보여주면서 큰 공감대를 불러일으킨 것이다. 지오지아 또한 이번에 협찬한 블랙과 그레이 등의 무채색 슈트가 비밀에 싸인 김수현의 캐릭터와 맞아떨어지면서, 올 겨울 눈에 띄는 매출 성장세를 기록하고 있다.
스타 협찬 대행사의 한 관계자는 "세박자가 절묘하게 맞아 떨어진 경우는 앞으로도 흔하지 않을 듯하다"며 "업계에서도 이런 즉각적인 반응은 처음 본다며 놀라고 있다. 드라마 종영이 다가올 수록 노출을 원하는 브랜드들의 물밑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이정혁 기자 jjangga@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