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엄마도 아니에요. 딸한테는 언제나 미안할 뿐이에요."
시작부터 딸 이야기였다. 두돌을 앞둔 아기를 억지로 떼어놓은 것에 대한 미안함에 눈물을 보였다. 네번째 동계올림픽 출전을 앞둔 이채원(33·경기도체육회, 크로스컨트리)은 '선수'이기 전에 한 아이를 둔 '엄마'였다.
2012년 낳은 딸 은서는 이채원에게 단 하나밖에 없는 보배다. 하지만 운동 때문에 제대로 챙겨주지 못했다. 은서가 세상에 나오기 한달전까지 스키를 탔다. 은서가 세상에 나온 뒤 단 3개월만 쉬었다. 산후 조리가 끝나자마자 엄마 이채원은 다시 선수로 돌아갔다.
이채원은 은서를 생후 100일때부터 같은 스키 선수인 지인에게 맡겼다. 주말에만 얼굴을 본다. 처음에는 은서가 엄마를 너무 낯설어했다. 이제는 알아본다. 매번 헤어질때마다 우는 은서를 달래느라 마음이 아프다. 그만큼 네번째 동계올림픽 출전에 대한 열망이 너무나 컸다.
이렇게까지 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처음 시작은 호기심이었다. 열네살 때였다. 운동이 좋았다. 다니는 학교에 스키부가 있어 들어갔다. 알고봤더니 크로스컨트리 선수만이 모인 곳이었다. 그때부터 20년. 단 넉달만 빼고는 20년간 설원을 누볐다. 그리고 네번째 올림픽에 나선다.
노력의 결실이었다. 1m53의 작은 체구를 극복하기 위해 부단히 땀을 흘렸다. 연습만이 답이었다. 남들보다 1시간이라도 더 훈련했다. 기술도 갈고 닦았다. 그 결과 국내 최강자로 자리매김했다. 2013년 동계체전까지 17차례 대회에 나가 51개의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동계체전 4관왕만 6번 기록했다.
시련도 있었다. 국제무대에서는 철저히 무명이었다.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부터 2006년 토리노, 2010년 밴쿠버대회까지 출전했다. 성적은 최하위권이었다. 3차례의 대회에서 10개 종목에 나갔지만 40위 내로 들어가본 적이 없었다. 대부분 50~60위권이었다. 정신적으로 힘들었다. 뼈를 깎는 노력을 했는데도 세계권과의 차이는 좀처럼 줄지 않았다. 매 올림픽 때마다 기량 발전을 거듭하는 다른 나라 선수들을 보면서 자괴감에 빠졌다. 그럴때마다 주변의 격려에 힘을 얻었다.
이채원은 다시 일어섰다. 2011년 2월이었다. 카자흐스탄에서 열린 2011년 아스타나-알마티 동계아시안 게임 크로스컨트리 여자 10㎞ 프리스타일에서 36분34초6의 기록으로 한국 크로스컨트리 사상 첫 국제대회 금메달을 획득했다. 환희의 순간이었다.
이번 소치동계올림픽을 앞두고 이채원은 딸 은서에게 개인 최고 성적을 내겠다고 약속했다. 은서를 낳느라 가졌던 4개월간의 휴식은 큰 힘이 됐다. 최근 몸상태도 좋다. 이채원은 30㎞프리스타일에 중점을 두고 있다. 30위권 이내 진입이 목표다. 약속을 하나 더 했다.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출전이다. 그때가 되면 은서도 엄마의 동계올림픽 출전을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 평창에 서려면 소치에서 가능성을 보여주어야만 한다. 이채원은 올림픽 출전을 앞두고 다짐했다. "엄마의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자란 은서에게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부끄럽지 않은 엄마가 되고 싶어요. 동계올림픽에서의 선전만이 답이에요." 이 건 기자 bbadagu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