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새로운 내딛음에 사람들은 '도전'이란 표현을 했다. 그러나 그는 전혀 큰 일이 아니라고 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2007년말 삼성의 투수였던 임창용은 갑자기 일본 야쿠르트와 계약을 했다. 국내에서도 하락세를 타는 듯했고 팔꿈치 수술까지 했기에 무모한 도전으로 보는 시각이 많았다. 그러나 임창용은 150㎞가 넘는 빠른 공으로 야쿠르트의 최강 마무리로 거듭났고, 3년간의 재계약까지 하는 등 5년간 일본 무대에서 활동했었다. 그리고 2012년말엔 한술 더 떠 미국행을 선택했다. 일본내에서 다른 팀을 찾거나 국내 복귀를 생각할 수 있는 나이였지만 그는 다시 새로운 곳을 찾았다.
괌에서 후배들과 함께 구슬땀을 흘리고 있는 임창용은 도전이란 말에 손사래를 쳤다. "기자분들이나 팬분들께서 도전이라고 하셔서 내가 마치 큰 일을 하는 것 같지만 이것은 도전이 아니다"라고 했다. "야구선수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라는 임창용은 "기회가 왔고 경험해보고 싶어서 한 것이다. 한국에서 즐거웠고, 일본에서의 5년도 나름 재밌었다. 미국야구도 즐기고 싶어서 오게 된 것"이라고 했다. 분명히 큰 결심을 해야될 것 같은 일이 그에겐 아무렇지 않고 자연스러웠다.
지난해 시카고 컵스에 입단한 임창용은 팔꿈치 재활이 끝난 뒤 차근차근 코스를 밟아 메이저리그 마운드까지 섰다. 갑작스럽게 논텐더로 풀리기도 했으나 2년 계약이 유효하고 이번엔 메이저리그 스프링캠프에 초청받아 2월 중순 시카고 컵스 스프링캠프에 합류할 예정이다. 그러나 논텐더는 분명 그에겐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놀랐다기 보다는 기분이 나빴다"라는 임창용은 "솔직히 (컵스에) 남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나중에 알아보니 풀린게 풀린게 아니더라. 시간이 지나니 괜찮아졌다"고 했다. 논텐더로 풀릴 당시엔 미국 잔류일지 아니면 일본이나 한국으로의 컴백일지가 팬들의 관심사가 됐지만 올해 컵스 선수로 다시 한번 메이저리그에 도전하게 됐다. "조만간 미국으로 넘어간다. 현지에서 어떻게 상황이 바뀔지는 모르지만 현재로선 한국에 올 가능성은 제로다"라고 했다.
미국에서의 1년은 어땠을까. 특히 영어로 대화가 되는지가 궁금했다. 의외의 대답이 나왔다. "1년간 있었지만 솔직히 한마미도 못알아 듣겠더라"라고 했다. "우연히 아는 단어가 나오기도 했지만 잘 안돼 항상 통역이 있어야 했다"는 임창용은 "일본어는 이제 혼자 있어도 어느정도 대화가 되는데…. 미국에 1년 더 있으면 들리지 않을까 싶다"며 웃었다.
일본과 미국 등 올해로 해외에서만 7년째 생활해야 하는데 혼자있는 것이 외롭거나 힘들지 않을까. 30대 후반에 솔로로 있는 그에게 용기를 내 "결혼을 통해 안정을 찾을 생각은 없나"라고 했다. 의외의 대답이 또 나왔다. "결혼을 조만간 할 것이다"라고 했다. 곧이어 "사귀는 사람이 있다. 꽤 오래됐다. 5년 정도…"라고 말했다. 여자친구는 국내에 있으니 장거리 연애를 한 셈이다. 그러면서도 "나 혼자 오래 생활해서인지 혼자 사는게 불편하지는 않다"며 웃었다.
한국과 일본, 미국에서 모두 뛴 선수인 임창용에겐 어떤 경기가 가장 기억에 남을까. 일본에서의 첫 등판을 꼽았다. 지난 2008년 3월 28일 메이지진구구장에서 요미우리를 상대로 8회초에 올랐다. 당시 요미우리의 중심타자였던 오가사와라와 이승엽을 삼진으로 잡아내고 라미레즈를 3루수 직선타로 잡아내며 데뷔 무대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팔꿈치 수술을 하는 등 안좋은 시기에 일본으로 넘어가서의 첫경기였다. 느낌이 정말 좋았다. 나에게 의미있는 경기였고 기억에 많이 남았다"라고 했다.
이 기억을 뛰어넘을 메이저리그 경기가 생길까. 몸을 착실히 만들고 있다. "한단계 한단계 잘 올라가고 있다. 메이저리그 캠프가 2월 15일에 시작하는데 거기에 맞춰 80%정도 끌어올릴 계획"이라고 했다. 임창용은 2월초까지 괌에서 훈련을 한 뒤 미국으로 건너가 두번째 메이저리그 시즌을 준비한다. 괌=송정헌 기자 song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