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심도 경기의 일부'란 말이 있다. 모든 스포츠에서 통용되는 말이다. 기계가 아닌, 인간이 심판자로 자리하고 있기 때문에 나온 말이다. 기록스포츠가 아닌 이상 사람의 눈과 귀, 순간적인 판단에 의존해 판정이 이뤄진다.
구기 종목은 심판의 존재가 필수적이다. 종목별로 특징이 있겠지만, 공을 두고 여러 사람이 뛰다 보니 각종 변수가 발생한다. 시시비비를 가릴 심판의 존재는 절대적이다.
심판이 기계의 힘을 빌리는데 대한 논란은 대부분의 스포츠에서 발생한다. 야구 역시 마찬가지다. 그런데 야구의 본고장이라 할 수 있는 미국에서 심판의 영역에 칼을 댔다. 메이저리그(MLB)가 비디오 판독을 대폭 확대하는데 합의한 것이다.
지난 17일(한국시각), MLB는 30개 팀 구단주들의 정례 회의에서 비디오 판독 확대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MLB 선수노조는 물론, 심판노조 역시 찬성의 뜻을 밝혔다.
오심을 줄이기 위한 역사적인 첫 발걸음이라 할 수 있다. 2008년 비디오 판독이 처음 도입됐지만, 홈런 여부 판정에만 국한돼 있었다. 이젠 이를 포함해 총 13개 판정으로 확대됐다.
베이스에서의 아웃-세이프 판정은 물론, 인정 2루타(그라운드 내에서 바운드된 타구가 펜스를 넘어가는 상황), 포스 아웃 플레이, 태그 플레이, 외야 타구의 페어-파울 판정, 타석에서 몸에 맞는 볼, 팬의 수비 방해 등 논란을 일으킬 만한 상황이 모두 포함됐다.
이제 실질적으로 심판이 온전히 자신의 눈으로 판정하는 것은 스트라이크-볼 판정 밖에 남지 않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심판의 권위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변화다.
하지만 MLB는 각종 보완 장치를 넣어뒀다. 시도 때도 없이 심판 판정에 불만을 제기하는 상황을 원천 봉쇄한 것이다. 양 팀 감독은 경기당 1회 비디오 판독을 요구할 수 있다. 비디오 판독은 경기장이 아닌, 뉴욕에 위치한 MLB 사무국 본부에서 이뤄진다.
이 부분 역시 재미있다. MLB 사무국은 정확한 판독을 위해 구장마다 총 12대의 카메라를 지정 위치에 설치해 영상 시스템을 구축할 예정이다. 본부에 대기중인 또다른 4명의 심판조가 판독 결과를 현장 심판진에 전달하는 방식이다.
비디오 판독 결과, 판정이 번복될 경우 해당팀엔 비디오 판독권이 1회 더 보장된다. 어필이 성공하면 또다시 기회를 얻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판정이 번복되지 않을 경우엔 더이상 비디오 판독을 요구할 수 없게 된다. 각 구단은 덕아웃에 관련 장비를 들여놓을 수는 없지만, 경기 도중 비디오 판독 전문가와 연락을 해 언제 비디오 판독을 요청할 지 상의할 수는 있다.
MLB 사무국은 또다른 장치도 마련했다. 7회 이후에는 비디오 판독을 무조건 실시하는 게 아니라, 해당 경기 심판조 조장에게 재판독 결정권을 주기로 한 것이다. 심판들의 권한 위축에 대비한 조치다. 경기 막판 잦은 어필로 흐름이 끊기는 걸 막을 수도 있다.
비디오 판독 확대로 현재 오심 중 89% 이상이 해결될 수 있다고. 그렇다면 한국프로야구는 어떨까. 한국과 일본 프로야구는 2008년 MLB의 홈런 판정 비디오 판독 도입 당시 1년 뒤 같은 제도를 도입한 바 있다.
한국야구위원회(KBO)는 비디오 판독 도입에 대해 긍정적이다. 규약이나 규칙 등에 있어 MLB를 따라 온 만큼, 언젠간 비디오 판독을 도입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미 심판위원회에 이를 검토하도록 지시가 내려간 상황이다. 도입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는 단계다.
하지만 문제는 인프라다. MLB는 모든 구장에 12대의 지정 카메라를 설치해 사각지대 없이 완벽한 기술적 판독이 가능한 시스템을 구축한다.
하지만 한국프로야구에선 여전히 중계화면에 의존해 비디오 판독을 하고 있다. 때론 중계카메라가 애매한 위치에서 홈런 타구를 잡아 비디오 판독이 큰 도움이 되지 않을 때도 있다. 매경기, 방송사에 따라 중계카메라 위치가 달라지기에 홈런 타구에 대해 100% 공정한 판독이 이뤄지지 못하는 것이다.
기술적인 문제가 있어 당장 MLB를 100% 따라가는 건 무리다. 하지만 환경적인 문제를 제외하면, 도입에 걸림돌은 없다. 매년 한국프로야구를 강타하는 오심 사건을 더는 두고 볼 수 없다는 생각이다. 의지는 충분하다.
인프라적인 문제는 차차 만들어가면 된다. 당장 시스템 구축이 어렵다면, 중계화면의 힘을 빌어 판독할 수 있는 부분만 우선 도입해도 된다. 당장 외야 타구의 페어-파울 판정 정도는 다각도의 중계화면으로도 판정이 가능하다.
이명노 기자 nirvana@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