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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리그에 불어올 '플랫 3 바람'이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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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 떼 수백 마리가 고속도로 바로 옆 그림 같은 초원에서 풀을 뜯고 있다. 이런 동화 같은 풍경에 시선을 빼앗겨 수십 km가 지나도록 감탄했다. 하지만 우리는 채 이십 분도 지나지 않아 이들을 외면하기 시작했다. 새로 나타난 소들도 아까 본 소들과 다를 바 없었기 때문. 만약 이 때 보랏빛 소가 갑자기 나타났다면 어땠을까. 세스 고딘의 책 <보랏빛 소가 온다>의 내용이다.

▶ 김학범 감독, "내가 떠났던 그때와 크게 다를 바 없다."

2012년 여름, K리그는 '학범슨' 김학범 감독의 귀환으로 뜨거웠다. 수석코치로 성남일화의 역사상 두 번째 3연패(01, 02, 03)를 보좌한 뒤 2006 시즌엔 수장으로서 직접 팀에 일곱 번째 별을 안긴 그였다. 당시 김두현을 꼭짓점으로 두고 김상식-손대호 라인으로 지탱한 정삼각형 미드필더 조합은 상대 팀들을 공포로 몰아넣었다. 이를 바탕으로 톱니바퀴처럼 맞아들어간 쓰리톱과 플랫 4의 탄탄한 균형은 2006 독일월드컵을 준비하던 딕 아드보카트의 레이더망에도 걸린 바 있었다. 당시에는 이를 두고 중원 조합을 역삼각형에서 정삼각형으로 뒤집은 '4-3-3(의 변형) 형태'로 표기하곤 했다.

성남을 전설로 만든 김 감독을 강원의 훈련장에서 만났다. 공부하는 지도자로 유명했던 그에게 "자리를 비운 3년 반 동안 K리그가 전술적으로 어떻게 변했다고 보는가"라며 넌지시 물었다. 그러자 돌아온 대답은 "지금도 2006년 즈음 내가 K리그에 도입했던 트렌드의 연장선에 있다. (김)두현이를 앞에 배치하고 두 명의 수비형 미드필더로 받친 형태, 4-2-3-1에 가까운 축구가 지금까지도 대세 아닌가"였다. 그가 떠난 2008년 이후 K리그의 강자로 군림한 전북과 서울 역시 이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여기에 투톱을 배치한 4-4-2, 역삼각형 중원 조합과 쓰리톱을 활용한 4-3-3이 간헐적으로 K리그에 나타나곤 했다.

▶ 박항서 감독, "수비 축구라고 해도 일단은 살고 볼 일이다."

그렇다고 플랫 3의 씨가 마른 건 아니었다. 이를 활용한 성적도 나쁘지 않았다. 전북이 '닥공'을 아시아 전역에 전파하는 동안, 부산은 '질식수비'로 K리그 전역을 휩쓸었다. 안익수가 감독과 함께한 부산의 2012시즌 전반기 성적은 6승 6무 2패. 14경기 동안 단 7골만 내준 수비는 최소실점 부분에서 독보적이었다(차순위 서울-수원이 각각 11실점). 비슷한 시기 플랫 3 형태를 가동했던 박항서 감독은 필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대로라면 우리도 강등권이다(2012년 5월로 상주의 강등이 확정되지 않은 상태). 일단 지지 않으면 승점 1점이라도 챙길 수 있지 않나. 우선 수비를 단단히 세우고 공격적인 부분을 보완하려 한다".

하지만 이들을 향한 시선이 그리 곱지만은 않았다. 말이 플랫 3이지, 사실상 좌우 윙백이 모두 내려앉은 플랫 5에 가까운 형태였기 때문. 전력의 열세에 놓인 팀들이 주로 이 시스템을 활용하다 보니 볼은 중앙선을 넘기 어려웠고, 자연스레 주도권을 내주며 수비적으로 밀려버렸다. 3-4-3이라고 말한 시스템은 5-4-1로 변형되기 일쑤였으며, 2011년 당시 울산, 인천, 대전 등이 불러온 '수비 축구 논란'이 또 한 번 수면 위로 고개를 빼 들었다. 강등의 불안함을 지우려는 감독들은 '모험'보다는 '안정'을 택했고, 생존과 엮인 이 수비 형태는 '플랫 3=수비적인 전술=재미없는 축구'라는 등호 관계를 낳았다.

▶ 최용수 감독, "공격형 스리백이다. 결코 수비 축구가 아니다."

김상호 前 강원 감독(현 U-19 대표팀 감독)과의 일이다. 새로운 시즌을 구상하던 그는 전술판 위에 자석을 붙여가며 열변을 토하던 중 대뜸 "플랫 3, 플랫 4 중 무엇이 더 수비적인 전술인지 아느냐."라고 물었다. 이어 "플랫 3는 수비가 세 명이고 플랫 4는 수비가 네 명인데, 어째서 전자가 더 수비적이라고만 보는가"라고 덧붙였다. 2012 시즌 당시 4-4-2를 메인시스템으로 내세웠던 김 감독은 3-6-1(조광래 감독이 제시했던 3-4-2-1과 유사한 형태)의 서브시스템도 함께 고려하고 있었다. 미드필더층을 두껍게 배치하고, 패스를 잘게 주고받으면 상당히 재밌는 축구가 나올 수 있다는 게 그의 설명. "플랫 3도 활용하기 나름"임을 역설했다.

하지만 강등제에 승강제까지 적용된 K리그는 무척이나 긴박했다. 지난해에도 우승권, AFC 챔피언스리그권, 강등권 싸움이 마지막 순간까지 지켜보는 이들의 심장을 쫄깃쫄깃하게 하지 않았던가. 그런 분위기 속, 우승권 경쟁에서 멀어진 서울은 의미 있는 시도를 한다. 2013시즌을 구상하는 과정에서 플랫 3 카드를 고이 접어뒀던 최용수 감독이 11월 중순 경인더비를 기점으로 이를 조심스레 펼친 것. 김치우, 최효진, 차두리 등을 보유한 이들은 양 윙백을 높은 선까지 끌어 올려 공격력 극대화의 가능성을 보았다. 여기에 시즌 종료 후 유럽으로 날아간 수원 서정원 감독 역시 플랫 3를 보고 돌아와 동계 전지훈련에서의 실험을 시사했다.

이미 예고한 플랫 3를 어떻게 꾸밀지도 무척이나 기대된다. 측면에 힘을 싣는 3-4-3, 윙포워드를 중앙으로 좁힌 3-4-2-1, 공격형 미드필더 한 명을 투톱 아래 배치한 3-4-1-2, 수비형 미드필더를 한 명을 아래에 두는 3-5-2(3-1-4-2) 형태가 가능하다. 또, 정통 수비수 세 명을 아래에 배치하느냐, 아니면 수비형 미드필더에게 두 명의 중앙 수비 사이를 오가게 하느냐에 따라서도 나뉠 수 있다. 최근 몇 년간 플랫 3가 발산한 것과는 전혀 다른 느낌의 그림이 나올 수 있지 않을까. 피치 위에서 벌어질 전술 싸움은 K리그의 빛깔을 더욱 다채롭게 만드는 '보랏빛 소'가 될 것이다. <홍의택 객원기자, 제대로 축구(http://blog.naver.com/russ1010)>

※객원기자는 이슈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위해 스포츠조선닷컴이 섭외한 파워블로거입니다. 객원기자의 기사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