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과 짝퉁. 얼핏 봐서는 구분이 영 쉽지 않다. 비슷한 모양과 틀이 끊임 없는 눈속임을 유발한다.
둘을 가르는 결정적 차이? 디테일에 있다. 미세한 부분들을 자세히 보라. 짝퉁이 흉내낼 수 없는 디테일이 군데군데 녹아 있다. 세심함 속에 장인의 '진심'이 있다. 마이스터의 영혼이 담긴 정성 어린 손길이 진정한 명품을 빚어내는 법.
22일 개봉을 앞둔 '남자가 사랑할 때'는 '장인' 황정민의 진심이 빚어낸 멜로 영화다. 거친 남자와 고운 여자의 힘겨운 사랑. 물과 기름 같던 남녀가 섞이는 과정은 이전에도 많이 본듯 느껴진다. 하지만 중요한 디테일이다. 포인트는 하나. 시선과 감정을 황정민에게 맡기고 2시간의 시간 여행을 하다보면 어느새 관객은 주인공 태일(황정민 분)이 돼 눈물을 흘린다.
영화에는 황정민의 '진심'이 녹아 있다.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 배우. 로맨스란 한정된 틀이 줄 수 있는 한계를 극복하는 방법을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결론은 진정성이었다. "조폭과 사랑 연기는 다르죠. 정청(신세계)같은 조폭 연기는 관객이 실제 모습을 잘 모를 수 있지만 사랑의 미묘함과 짜릿함, 전전긍긍의 마음, 누구나 겪어보고 다 해 보는 거잖아요. 그야말로 벌거벗고 들어가는 거랄까. 그래서 더 어렵지만 또 한편으론 그래서 더 제가 좋아하는 장르에요." 누구나 알기에 더 어렵지만, 그래서 더 공감받고 싶은 마음. 황정민의 연기에 담겨 관객의 마음을 거칠게 흔든다.
자칫 뻔하게 흘러갈 수 있는 사랑 이야기. 황정민은 그만의 방법으로 이야기에 색깔을 덧씌웠다. 장인의 심정으로 한땀한땀 진심을 담은 혼신의 연기를 펼쳤다. "사랑 감정이 쉽게 가려면 한없이 쉽게 갈 수 있지만 그 안에는 미묘함이 있거든요. 관객이 알잖아요. 남녀 둘이 마주보고 서있을 때 찌릿찌릿한 무언가가 분명히 있단 말이에요. 그걸 잡아서 표현해내는게 중요하니까…. 대사가 아닌 공기로 전달될 수 있는 그런거요. 그러니까 대사 하나 하나 바꾸기도 했어요."
단 하나의 디테일도 흘려보내지 않았다. 스스로 만족할 때까지 찍고 또 찍었다. 대표 장면이 바로 라면신. 몸이 아픈 아버지(남일우) 앞에서 독백하는 장면이 통과되기까지 며칠이 걸렸다. "힘들었어요. 신을 찍어야 하는데 그날 오케이가 안됐었어요. 보는 사람 입장에서 괜찮을지 제 감정이 만족스럽지 않더라고요. 제대로 된 감정인지 억지로 끄집어 낸건지를 잘 모르겠더라고요. 이삼일 동안 감정을 정리하고 다시 찍어 오케이 갔죠."
467만8966명의 관객과 큰 화제를 불러모았던 '신세계' 제작진의 2014년 첫번째 작품. 눈 감고도 마음이 통하는 사이. 팀워크는 문제 없었다. 자신의 진심이 팀 전체에 전달하는데도 앞장섰다. 동생들과의 자리에서 그는 이런 얘기를 했다. "우리 작품은 통속적인 이야기(로맨스)다. 하지만 진실로 들이대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 각자 맡은 일을 자기가 감독이란 생각으로 대해줬으면 좋겠다. 모두 파이팅 합시다." 곽도원 정만식 김혜은 등 명품 조연들의 눈부신 활약 속에 황정민의 진심이 녹아들었음은 물론이다.
영화는 남자가 사랑할 때 어떻게 바뀌는지를 아주 담백하게 풀어냈다. 거친남자 태일의 마음을 흔들며 울림처럼 찾아온 사랑. 사랑의 표현도 거칠고 맹목적이다. 호정(한혜진)도 서서히 마음을 열지만 두 사람의 사랑은 순탄하게만 흘러가지 않는다. 태일은 호정을 사랑하게 된 후 자신을, 그리고 주위를 둘러본다. 가까이에 가족이 있다. "거친 남자가 사랑을 느낄때 그 사람의 눈이 보고 싶었어요. 그 눈을 통해서 가족을 보게되는거죠. 이 영화를 하겠다고 한 이유 중 하나에 아버지하고의 관계가 있었어요. 확 와 닿았어요. '남자가 (아버지를? 혹은 가족을?) 사랑할 때'가 될 수도 있는 거니까요."
지방 건달 연기와 멜로. 황정민이 가장 잘 표현하는 두가지가 한 영화 속에 겹쳤다. 영화 속에서 포착되는 그의 텅빈 표정은 연기인지 실제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다. "저도 잘 모르겠어요. 사랑을 하니까 나오는 표정이 아닐까요. 그만큼 감정이 중요한거 같아요."
로맨스 영화의 틀은 크게 다르지 않다. 사실 거기서 거기다. 관객도 알고 입장한다. 중요한 사실은 배우와 연출이 그 미묘함을 어떤 방식으로 풀어내느냐에 있다. '건달+순애보' 전문가 황정민이 진심을 담아 한땀 한땀 숨결로 녹여낸 영화. 그를 믿고 볼만 하다. 황정민의 연기를 따라가는 것만으로 120분이란 짧지 않은 시간이 금방 지나가 버린다.
정현석 기자 hschung@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