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기훈(31·수원)은 '세트피스 마스터'다.
논산중 1학년 시절인 1996년 축구를 시작해 18년동안 팀의 세트피스를 도맡았다. K-리그에서도 마찬가지다. 2006년 전북에 입단한 이후 울산(2007~2009)과 수원(2010~2011, 2013~ )을 거치며 세트피스 키커로 나서 팀공격을 이끌었다. 2012년 내셔널리그 소속으로 경찰에서 뛰었을 때를 제외하고 지난해까지 9시즌동안 169경기에 출전해 39골-48도움을 올렸다. 이 가운데 직접 프리킥골은 3골이다. 프리킥으로 도움은 8개, 코너킥 도움은 12개를 기록했다. 23골을 자신의 발끝에서 만들어냈다. '세트피스 마스터' 염기훈을 7일 경기도 화성에 있는 수원 클럽하우스에서 만났다. 세트피스에 대한 그의 생각을 들었다.
다짜고짜 세트피스를 정의 내려달라고 부탁했다. '찰나의 미학'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는 "볼이 내 발을 떠나 골문 안으로 들어갈 때까지 정말 눈깜짝할 사이다. 그 사이에 보이는 볼의 궤적이나 동료 선수들의 움직임은 정말 아름답다"고 말했다. 염기훈은 "세트피스로 골을 만들어내면 그 어떤 골보다도 기분이 좋다"고도 했다. 그 이유는 '숨은 노력'이었다. 염기훈은 "하나의 세트피스 골 뒤에는 수많은 연습이 있다. 나 역시 훈련이 끝나고 혼자 남아 매일 1시간씩 프리킥이나 코너킥을 올려주는 연습을 한다"고 밝혔다.
자신만의 팁도 귀띔했다. 프리킥을 차건 코너킥을 올리건 항상 볼만 집중했다. 염기훈은 "수비 벽이나 골문 앞 상황보다는 내가 차고자하는 볼의 부분에만 집중한다. 거기에만 제대로 맞으면 어김없이 골로 연결된다"고 설명했다. 기억에 남는 세트피스 골은 2008년 2월 20일 중국 충칭에서 열린 북한과의 동아시안컵 경기에서 나왔다. 전반 21분 염기훈은 페널티지역 오른쪽 프리킥을 골로 연결했다. 리명국 골키퍼가 손도 못대는 완벽한 스핀킥이었다. 염기훈은 "지금 팀동료인 정대세와 그 때의 골에 대해 이야기한다. 지금 생각해도 짜릿한 골이었다"고 말했다.
아쉬운 세트피스도 있었다. 지난해 10월 9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서울과의 슈퍼매치였다. 염기훈 본인으로서는 경찰 전역 후 맞이하는 첫 슈퍼매치였다. 골을 넣으면 '거수경례 세리머니'로 전역 신고를 하겠다고 팬들에게 약속했다. 전반 21분 염기훈은 날카로운 왼발 프리킥을 날렸다. 서울 골키퍼 김용대의 손을 맞은 볼은 골포스트를 때리고 튕겨나왔다. 염기훈은 "그 골만 들어갔더도 구단과 팬들에게 큰 선물을 할 수 있었는데 너무 아쉬웠다"고 말했다.
이제 염기훈은 세트피스에 자신의 축구 인생을 걸었다. 13일 시작하는 홍명보호의 브라질-미국 전지훈련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나이를 생각했을 때 월드컵 출전의 마지막 기회다. 염기훈이 들고나설 무기는 역시 세트피스다. 염기훈은 "A대표팀에서는 내가 잘하는 것을 극대화해야 한다. 결국 세트피스와 슈팅이다"고 말했다. 이어 "마지막 기회다. 세트피스를 앞세워 꼭 브라질에 가도록 하겠다. 2010년 남아공월드컵 아르헨티나전에서 슈팅 미스로 국민들께 진 빚을 꼭 갚고 싶다. 죽기살기로 하겠다"고 다짐했다. 화성=이 건 기자 bbadagu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