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엔 '비활동기간'이 존재한다. 야구규약에 따르면, 참가활동보수의 대상 기간은 매년 2월 1일부터 11월 30일까지 10개월간으로 하고, 10회로 분할하여 지불한다고 돼있다. 1년에 걸쳐 연봉을 나눠 받는 직장인과 달리, 야구선수는 1년 중 10개월간 임금을 받는다. 12월과 1월은 보수가 없다.
비활동기간은 이에 따라 탄생했다. '무노동 무임금' 원칙에 따라 구단이 실시하는 훈련에 참가해선 안된다는 것이다. 야구규약 제136조 '합동훈련'에 다르면, 1월 15일 이전 단체훈련은 철저히 금지돼 있다.
▶프로야구 비활동기간, 선수와 코치는 눈치를 본다
결국 과거 12월까지 이어지던 팀 차원의 마무리훈련이나 재활훈련은 사라졌다. 공식 훈련은 11월 30일 이전에 모두 종료된다.
다만 예외조항은 있다. 12월 중에는 '재활선수, 당해 연도 군제대선수에 한해 국내 및 해외 재활이 가능하며 트레이너만 동행할 수 있다'고 명시돼있다. 재활선수들이 따뜻한 해외로 떠나 삼삼오오 훈련하는 건 괜찮다. 물론 코치는 곁에 있어선 안된다. 또다른 예외조항으로는 '입단 예정 신인선수는 코치 지도와 함께 국내훈련으로만 제한된다'가 있다.
결국 12월에 코치가 지도할 수 있는 선수는 입단 예정인 신인들 뿐이다. 이에 따라 비시즌에도 야구장에 출근하는 선수들과 코치들 사이엔 어색한 기류가 흐르게 된다. 자발적으로 출근한 선수들 중 일부는 코치의 도움을 받고 싶어하지만, 코치는 대놓고 선수를 가르칠 수 없다. 직접 찾아와 조언을 구할 때만 조금씩 가르쳐줄 뿐이다.
그렇다고 코치들에게 '비활동기간'이 보장된 건 아니다. 매년 재계약을 하는 입장이니, 구단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훈련하는 선수들이 있는데 마냥 쉴 수 없는 노릇이다. 여기에 수장인 감독의 눈도 있다. 코치들끼리 돌아가며 출근하는 게 일반적이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12월과 1월에 단체활동을 금지한 일본프로야구에서는 단장의 지도가 논란이 됐다. 지난 7일 스타플레이어 출신인 주니치의 오치아이 단장이 배트를 쥐고 일부 선수들에게 잠시 지도를 했는데, 규약 위반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지도자는 아니지만, 단장인 그의 지도가 구단에 의한 활동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성장하는 프로야구, 규약에 남아있는 아마추어적 단면
한국프로야구는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국내 프로스포츠 중 가장 먼저 출범해 성숙도 역시 높은 편이다. 하지만 여전히 선수층은 두텁지 못하고, 프로라고 부르기에 부끄러운 환경도 남아있다.
비활동기간은 제도가 앞서가는 형국이다. 주전급 선수들에 국한된 얘기라는 것이다. 여전히 1군을 꿈꾸는 수많은 2군 선수들에게는 지도가 필요하다. 그런데 규약상으로는 이를 원천 봉쇄시켜놨다.
규약에는 이런 내용도 있다. '선수가 구단의 명령에 의하지 않고 자유의사로 기초훈련을 행하는 것은 무방하다. 전지훈련 관계로 선수들이 요청할 경우 1월 중순 이후 합동훈련을 실시할 수 있지만, 해외 전지훈련은 1월 15일부터 시범경기 전까지로 한다.'
임금을 받지 않는 기간이지만, 1월 15일부터는 단체훈련이 가능하다. 하지만 이 역시도 '선수들이 요청할 경우'라는 전제조건이 있다. 사실상 구단 주도 아래 스프링캠프가 시작되지만, 명분상 이런 조항을 달았다.
게다가 선수의 자유의사까지 규약에 명시할 정도다. 지극히 아마추어적이다. 일반인도 아니고 프로선수라면, 몸상태를 유지하는 기초훈련을 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선수를 믿지 못하는 각종 테스트, 모두 '쇼'다?
전지훈련을 떠나기 전, 일부 구단은 체력 테스트 혹은 체성분 테스트 등으로 선수들을 시험대 위에 올린다. 이를 통해 선수들이 얼마나 자발적으로 몸을 만들었는지 확인한다.
진정한 프로라면 이러한 테스트가 필요할까. 사실 올해 이런 성격의 테스트에서 불합격한 선수는 없었다. 1~2년 전만 해도 테스트에서 탈락한 주축선수가 스프링캠프 명단에서 제외되는 등 화제거리가 있었지만, 이번엔 모두 '100% 통과'란 결과만 들렸다. 수년간 화제의 중심이었던 LG는 아예 테스트를 폐지했다.
사실 테스트 이전부터 결과는 정해져 있던 걸지도 모른다. 소속 선수들이 최소한의 운동만이라도 하길 바라는 코칭스태프의 마음이 반영된 것이다. 한 프로 지도자는 "어차피 보여주기 위한 테스트일 뿐이다. 누가 운동을 게을리 했는지는 금세 알 수 있다. 실효성이 없다"는 견해를 밝혔다.
최근 들어 고액 연봉자들은 자비를 들여 따뜻한 해외로 떠나 개인훈련을 하는 게 유행이 됐다. 자신의 몸에 대한 소중함을 잘 아는 것이다. 반대로 쉴 땐 쉬는 게 도움이 되는 선수도 있다. 테스트가 없는 팀의 한 선수는 "일부러 한동안 푹 쉬었다. 쉬다가 야구장에 다시 나갔는데 모두 각자 알아서 운동을 잘 하고 있더라"고 말했다.
메이저리그는 2월 중순부터 시작되는 스프링캠프 이전에 각자 알아서 몸상태를 만들어 온다. 누가 말하지 않아도 기본이라고 생각한다. 일부 메이저리거들은 캠프가 열리기 전부터 각자 와서 개인훈련을 진행한다. 추신수 역시 매년 애리조나 집에서 캠프로 출퇴근하며 2~3주 전부터 몸을 만들어왔다.
프로는 프로다워야 한다. 테스트는 프로를 믿지 못하는 아마추어의 잔재다. 만약 프로 선수가 게을리 했다면, 주전경쟁이나 연봉 협상 등에서 불이익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한국프로야구는 그만한 선수층이 형성되지 못했다. 주전들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구성원들의 태도도 바뀌어야 할 때다.
이명노 기자 nirvana@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