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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고아라 "순댓국 먹는 모습도 친근하게 봐주시니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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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근처에 진짜 맛있는 순댓국집이 있거든요. 이젠 사람들 눈치 안 보고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가서 맘껏 먹을 수 있게 됐죠. 친근하게 봐주시니까 정말 편하고 좋아요."

'SM 3대 미녀'로 불리던 시절엔 어려웠던 일들, 이젠 모두 다 봉인해제다. 지금 고아라는 주변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꽤나 짜릿한 경험을 하고 있다. "과 후배 같다는 말이 가장 듣기 좋았다"는 그녀. 신비롭지 않아서 더 사랑스럽고 예쁘다. tvN '응답하라 1994'가 거둔 수확 중에서도 '고아라의 재발견'은 첫 손에 꼽힌다.

신촌하숙의 정겨운 풍경은 1990년대의 추억을 현재로 소환했다. 그 안에는 우정과 사랑과 낭만이 넘실거렸다. 수많은 시청자가 응답한 그 시간을 함께하며 고아라도 한층 성숙해졌다. 아직 소녀티를 벗지 못한 스무살의 풋내나는 짝사랑부터 이별과 환희를 모두 겪은 여인의 성숙한 사랑까지 폭넓은 연기를 보여줬다. 무릎 나온 트레이닝복에 삐쭉 뻗친 단발머리로 걸죽한 사투리를 속사포처럼 쏟아내고, 술에 잔뜩 취해 게슴츠레한 눈으로 윙크를 날리던 모습도 잊을 수 없다. 시청자들을 허기지게 만든 '먹방'은 또 어떤가. 고아라는 '응답하라 1994'의 성나정을 연기하기 위해 일부러 몸무게 5kg을 늘렸고, 촬영 중 '먹방'으로 2kg을 더 찌웠다.

"원래 제가 복스럽게 잘 먹거든요. 실제로도 나정이처럼 먹어요. 그래서 자장면 '먹방'이나 '막춤' 장면은 많이 아쉬워요. 저 자신을 더 많이 내려놓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거든요. (웃음) 저도 나정이처럼 시골에서 자라서 털털하고 활발한 편인데, 도도한 서울 여자 이미지가 각인돼 있었나 봐요. 그 덕분에 나정의 모습을 연기변신으로 봐주시고 칭찬해 주신 것 같아요. 그동안 이미지 때문에 힘들었겠다며 응원해준 팬들의 얘기도 정말 고마웠습니다."

고아라도 '응답하라 1994'를 보면서 울고 웃었다. '가슴이 문드러지는 느낌'이라는 것이 고아라의 시청평. 감탄사를 연발하는 표정에는 아직 여운이 남아 있었다. 한번은 본방송을 놓쳐서 새벽 3시에 재방송을 봤는데, 감정을 주체할 길이 없어 단체메신저에 글을 남겼더니 곧바로 줄줄줄 메시지가 뜨더라고 했다. 모든 배우들이 잠을 안 자고 방송을 보며 푹 빠져 있었던 거다. 개그감 충만한 이야기꾼 김성균, 깨방정 바로, 엉뚱한 손호준, 육두문자 개그의 일인자 정우, 허당기 있지만 매너 좋은 유연석까지. 진짜 신촌하숙 못지않은 든든한 친구를 여럿 얻었다.

배우들의 우정은 돈독했지만, 극중 성나정은 '쓰레기파(정우)'와 '칠봉이파(유연석)'로 전국의 여심을 갈라놓았다. 정우와 유연석 두 남자의 사랑을 모두 받은 고아라는 "어장관리 했다고 욕먹어도 괜찮다"며 '푸핫' 웃음을 터뜨렸다. 마지막 대본이 나올 때까지 나정의 남편이 누구인지 몰랐던 건 고아라도 예외가 아니었다. 2002년 결혼식 장면이나 2013년 집들이 장면은 대본에 나올 때마다 새롭게 세팅해서 찍었다. 결혼식에서 대역 배우의 키 때문에 남편에 대한 추측이 나오자 제작진은 대역 배우까지 바꿨고, 2013년 현재 아랫집에 사는 성시원(정은지)이 성나정의 남편을 알아보는 장면에서는 쓰레기 버전과 칠봉이 버전을 따로 만들어 모두 촬영했다고 한다.

"감독님과 작가님이 정말 지독하시죠.(웃음) 다만 방송 시작 전에 약간의 힌트는 주셨어요. 나정은 끝날 때까지 무조건 쓰레기만 바라볼 거라고요. 오로지 '직진'. 원 웨이(One Way)죠. 그런데도 쓰레기와 칠봉이의 감정이 워낙 진지하니까 저도 조마조마해지더라고요. 진짜 첫사랑이 이뤄지긴 할런지 혼란스러웠죠."

무척이나 아쉬워할 칠봉이파 시청자들에 대한 고아라의 변명 아닌 변명도 들어보자. "우선 너무나 죄송해요. 하지만 칠봉이의 짝사랑을 나정이도 경험해봤으니까 미안함과 고마움을 갖고 있었을 거예요. 하숙집 식구들은 가족이나 다름없는데, 나정이가 먼저 칠봉이에게 선을 그으면 둘의 관계가 오래 갈 수 없잖아요. 그런 나정의 마음을 알기 때문에 칠봉이가 스스로 사랑을 끝낸 게 아닐까요."

실제 고아라라면 신촌하숙의 누구에게 마음이 끌릴까? 삼천포, 해태, 빙그레까지 선택지를 넓혔다. "딱히 누구라고 하기보다는 그게 누가 됐든 첫 사랑에게 꽂혀서 끝까지 갈 것 같아요. 저도 나정이처럼 한번 빠지면 확 몰입하는 '직진 스타일'이거든요. 하지만 실제로는 연애다운 연애를 못해봤어요. 그래서 지금도 저는 운명을 기다리고 있답니다. 언젠가는 꼭 만나겠죠."

고아라에게 사랑보다 먼저 찾아온 '운명'이 '응답하라 1994'인 것 같다. 10년 전 출연한 청소년드라마 '반올림'. 천성이 밝고 씩씩한 열네살 고아라는 방송국에서 만나는 사람들마다 일일이 인사를 했는데, 그 모습을 기억하고 있던 신원호 PD가 고아라를 불렀다. 성나정 캐릭터를 보며 10년 전 엘리베이터에서 만났던 여중생 연기자를 떠올린 것이다. 고아라라는 이름을 알렸지만 그만큼 그를 힘들게 했던 '반올림'. 트라우마 같았던 그 벽을 넘게 해준 디딤돌도 결국 '반올림'이었던 셈이다. "처음 감독님을 뵀을 때 시놉시스도 안 받아보고 무조건 하겠다고 했어요. 진한 멜로에다 지금까지와 달리 망가져야 하는데 괜찮겠냐고 하셨지만 개의치 않았어요. 어떤 캐릭터든 상관 없어요. 속편이 또 나온다면 무조건 출연할 거예요."

고아라는 연기인생의 새로운 출발점에 섰다. 그는 "사람들과 교감하면서 연기하는 재미를 알았다"고 했고 "점점 성장하는 모습으로 언젠가 진짜 배우라는 얘기를 듣고 싶다"고도 했다. 하지만 이미 고아라는 배우로서 한 단계 도약했고, 또 다시 달려갈 힘도 충만하다. 앞으로 해야 할 건 지금처럼 죽 '직진'하는 일뿐. '직진 스타일'이 가장 고아라다운 모습이니까. 김표향 기자 suza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