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는 걸출한 가드 두 명을 거느리고 있다.
주희정(37)과 김선형(26)이다. 주희정은 가드계의 '전설'이다. 고려대 2년을 마치고 지난 97년 TG삼보에 입단하며 프로 생활을 시작했다. 삼성과 KT&G를 거쳐 2009~2010시즌 SK로 둥지를 옮겼다. 2000~2001시즌에는 삼성을 챔피언결정전 우승으로 이끌며 MVP에 올랐다. 지난해 11월7일 KGC전에서는 통산 5000어시스트를 돌파했고, 12월25일 삼성전서는 통산 1400스틸을 달성했다. 둘 다 프로 첫 기록이다.
중앙대를 졸업한 김선형은 2011~2012시즌 데뷔해 올해로 3년차다. 그는 첫 시즌부터 빠른 돌파와 가공할 슈팅 능력을 선보이며 단번에 스타덤에 올랐다. 지난 시즌에는 모비스 양동근을 제치고 올스타 최다득표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 문경은 감독이 부임한 후로는 슈팅가드에서 포인트가드로 변신해 SK의 야전사령관 노릇을 하고 있다. 이제 막 프로 생활의 참맛을 보기 시작한 김선형이 주희정을 만난 것은 어찌보면 행운일 수 있다. 거꾸로 주희정도 김선형과 함께 뛰며 선수 생활을 마무리하는 것이 뜻깊은 일일 것이다.
이번 시즌 둘은 호흡을 맞추는데 있어 전기를 마련했다. 간단히 말해 주희정의 노련미, 김선형의 패기가 최고의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뜻이다. 보통 김선형이 주전 포인트가드로 나서는데, 주희정이 그 역할을 할 경우 김선형이 슈팅가드로 이동해 공격을 주도한다. 보통 승부처에서 주희정이 기용되는 경우가 많다.
1일 잠실실내체육관에서 벌어진 삼성전서 둘의 완벽한 호흡이 위력을 발휘했다. 4쿼터 리드를 당한 상황에서 주희정이 결정적인 순간 외곽슛으로 점수차를 좁히자, 동점과 역전이 이어지던 경기 막판에는 김선형이 전광석화같은 가로채기 후 속공을 성공시키며 승리에 쐐기를 박았다. 이번 시즌 들어 두 선수가 펼친 가장 완벽한 호흡이었다.
물론 서로에 대한 애정도 깊다. 주희정은 "선형이도 리딩을 하면서 힘들다는 생각을 할 것이다. 하지만 서로 1,2번으로서 호흡이 잘 맞고 있다"며 "지난 시즌에는 많이 뛰고 싶은 욕심 때문에 제대로 하지 못했다. 이제는 팀을 위해 선형이나 (변)기훈이가 힘들 때 식스맨 역할을 잘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문경은 감독이 바라는 바이기도 하다. 문 감독도 "주희정은 개인적으로 경기 준비를 잘하고, 경기흐름을 잘 본다. 심스를 비롯한 빅맨들의 활용 포인트를 잘 안다. 김선형의 리딩가드 부담을 잘 덜어주고 있다"며 고마움을 표시했다.
주희정을 바라보는 김선형의 마음도 푸근하기만 하다. 김선형은 "형이 있어 든든하다. 1가드-4포워드 시스템에서는 나혼자 가드를 봐야하는데, 희정이형처럼 리딩이 강하지 않다"면서 "형이 없으면 불안하고 안풀릴 때 위축되는 경우가 많다. 감독님께서 희정이형을 투입해 안정감있게 경기를 끌고가시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선형은 이어 "만약 희정이형이 마흔에 은퇴하면 난 마흔 한살에 은퇴를 하겠다"며 웃음을 보인 뒤 "몸관리 하시는 것을 보면 내가 과연 저렇게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형의 집념이 우리 SK 어린 선수들은 좋다"며 존경심을 표시했다.
문 감독도 마찬가지다. 문 감독은 "삼성 시절 동료로서 함께 뛰기도 했지만, 희정이는 한 획을 그은 스타플레이어다. 비시즌부터 선형이가 35분을 뛰고 희정이는 1~2분밖에 안 뛸 때가 있었는데, 그런거를 버텨주고 시즌 들어와서 팀을 위해 희생하는 모습이 고맙다. 나올 때마다 좋은 활약을 하니 칭찬을 안할 수가 없다"며 흐뭇해했다.
주희정-김선형, SK의 투 가드 시스템이 승부처에서 더욱 빛을 발하고 있다. 노재형 기자 jhno@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