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단 모두 철저한 자기반성의 시간을 보냈다."
상위권에 있던 팀이 하위권으로 추락하는 것은 순식간이다. 그러나 그렇게 추락했던 팀이 다시 상위권으로 올라서기 위해서는 너무나 길고 험한 길을 거쳐야 한다. 뼈를 깎는 고통을 이겨내고 완전히 탈바꿈에 성공해야만 잃었던 명예도 다시 찾을 수 있다.
지금 KIA는 길고 험한 길에 서 있다. 올시즌 순위 경쟁에서 신생팀 NC에마저 뒤지면서 결국 8위에 머물고 만 KIA는 아득히 멀어진 상위권으로 다시 진입하기 위한 준비작업을 진행 중이다. 보통 까다로운 작업이 아니다. 순위 추락으로 인해 상처입은 전체 선수단의 마음을 추스러야 하기도 하고, 실질적인 전력을 만들어놓을 필요도 있다. 또 빠져나간 전력을 메우기 위한 토대도 마련해야 한다.
이런 작업들이 일본 오키나와에서 진행된 마무리 캠프 기간에 이뤄졌다. 마무리 캠프를 이끈 선동열 KIA 감독은 캠프 종료 첫 소감으로 "선수들에게 고맙다"고 했다. 지난달 22일부터 28일까지 오키나와 킨구장에서 치러진 KIA의 마무리캠프는 혹독했다. '5일 훈련-1일 휴식'의 빡빡한 일정이다. 느긋하게 훈련을 진행하는 팀들은 '3일 훈련-1일 휴식'의 일정까지도 보낸다.
하지만 올해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KIA는 마무리 캠프부터 느긋할 순 없었다. 그래서 상당히 강도높게 진행된 이번 마무리캠프였지만, 다행히도 특별히 다치거나 적응을 못해 훈련을 소화하지 못한 선수는 없었다. 선 감독도 첫 마디가 "고맙다"였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오키나와 마무리캠프의 목표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내년 시즌 명예회복을 위한 자기반성'이고, 다른 하나는 '백업 선수 양성'이었다. 어느 하나 소흘히 할 수 없는 주제들이다. 스스로의 문제점과 잘못을 인정해야만 발전을 기대할 수 있다. 그래서 KIA 선수단은 마무리 캠프 동안 철저한 자기반성을 하면서 훈련에 더욱 매진했다고 한다.
이런 분위기를 주도한 인물은 바로 올해 5월 SK에서 트레이드로 영입한 투수 송은범이었다. 송은범은 특유의 친화력으로 새 팀에서 금세 적응했다. 비록 훈련량 부족으로 올해 좋은 성적을 내지는 못했지만, 내년 시즌에 매우 큰 역할을 해줄 것으로 기대되는 인물이다.
그런 송은범이 보통 신인이나 1.5군 선수들 위주로 진행되는 마무리캠프에서부터 구슬땀을 흘렸다. 오죽하면 선 감독이 '마무리캠프 최고선수'로 뽑을 정도다. 선 감독은 "훈련과 생활 면에서 솔선수범하면서 열의를 보여줘 후배들에게 귀감이 됐다"면서 "또 캠프 분위기를 좋게 만들면서 후배들을 이끌어 나가는 모습이 매우 좋았다. 무엇보다 올해의 부진을 반성하며 내년 시즌을 준비해 나가는 진지한 자세가 돋보였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좌완 에이스 양현종과 주전 2루수 안치홍 역시 선 감독이 손꼽은 마무리캠프의 수훈 선수들이다.
선 감독은 또한 '백업 양성'이라는 목표에 대해서도 일정부분 성과가 있었다고 평가했다. 선 감독은 "포지션별 경쟁체재를 구축해 운영한 결과 기존 선수와 신인급 선수들 모두 경쟁심을 갖고 열심히 훈련에 임해줬다"며 결국 내부 경쟁이 자생력을 키워주는 원동력이었다고 밝혔다.
그런 경쟁을 통해 선 감독의 눈도장을 받은 인물이 여럿 있다. 우선 군에서 제대한 박성호와 신인 투수 차명진이다. 선 감독은 "박성호는 1군 불펜에서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봤다. 또 차명진 역시 팔스윙 교정과 하체 이용법에 대한 조련을 받아 좋아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더불어 김광연 강한울 박찬호 등 신진 야수진들에게도 후한 평가를 내렸다.
마무리캠프에서 만족스러운 성과를 낸 선 감독의 눈은 이제 내년 초부터 시작될 스프링캠프에 맞춰져 있다. 선 감독은 "내년 초 스프링캠프는 팀 전력 향상에 초점을 맞추고, 경기력과 체력 및 백업 강화에 목표를 두고 진행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과연 하위권으로 추락한 KIA가 길고 험한 길을 돌아 다시 상위권으로 부활할 수 있을 지 지켜볼 일이다.
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