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 시즌이 저물어가고 있다. 여자 선수들의 결혼 소식이 많아지는 계절이다.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에서 활약중인 서희경은 이달 말 은행원인 국정훈씨와 결혼한다. 미국에서 돌아와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에서 뛰고 있는 배경은도 다음달 성형외과 의사인 이주홍씨와 화촉을 밝힌다.
여자 프로 골퍼의 경우 20대 초반부터 30대 중반까지 가장 활발하게 선수 생활을 한다. 결혼 적령기와 맞물리는 시기이다. 예전엔 결혼보다는 선수 생활에 더 집중했다. 프로는 결국 돈이다. 따라서 골프 실력이 절정에 이르는 이 시기에 결혼은 우선순위가 아니었다.
하지만 이 같은 생각이 많이 변했다. 안정된 결혼 생활이 오히려 투어 생활에 도움이 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가장 좋은 예가 바로 박인비다. 박인비는 올해 LPGA 무대를 평정했다. 지금까지 메이저대회 3승을 포함해 총 6승을 거두며 세계랭킹 1위, 상금랭킹 1위를 달리고 있다.
박인비는 약혼자인 남기협씨와 늘 투어를 다닌다. 골퍼 출신인 약혼자는 박인비의 코치이자 정신적인 안식처 역할을 하면서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도록 도움을 줬다. 박인비와 함께 투어 생활을 하는 다른 선수들은 부러움의 시선으로 바라본다. 한때 세계랭킹 1위였다가 박인비에게 자리를 내준 스테이시 루이스(미국)는 박인비가 올해 좋은 성적을 내는 가장 큰 원동력을 사랑의 힘으로 꼽았다. 그는 "박인비는 자신의 약혼자(남기협씨)와 함께 늘 손을 잡고 다니면서 행복한 모습을 보인다"며 "코스 밖에서의 일이 잘 풀리면 골프도 더 쉬워지기 마련"이라고 말했다. 박인비는 내년쯤 남기협씨와 결혼을 할 예정이다.
야구 선수 출신의 손 혁과 결혼한 한희원 역시 결혼과 출산 이후에도 왕성하게 투어 생활을 하는 선수로 유명하다. KLPGA 투어 프로인 최혜정은 '마미 골퍼'다. 결혼해서 아이까지 있지만 투어에서 꾸준한 성적을 내고 있다.
국내에선 결혼한 선수가 드물지만 LPGA 투어엔 예전부터 유부녀 골퍼들이 많았다. 물론 LPGA 투어의 경우 아이가 있는 엄마 골퍼들이 편안하게 투어에 전념할 수 있도록 다양한 시설을 갖추고 있다. 베이비시터(보모)와 놀이 시설, 교육 시설까지 마련돼 있다.
그러나 결혼으로 인해 선수 생활을 접는 경우도 있다. 특히 평탄하지 못한 결혼 생활로 마음 고생을 한 선수들이 있어 주위 사람들을 안타깝게 한다. LPGA 신인왕 출신의 안시현은 방송인 마르코와 결혼한 이후 잠시 골프채를 잡지 않았다. 안시현은 2003년 LPGA 투어 CJ 나인브릿지 클래식 우승 이후 LPGA 신인상 등 최고의 여성 골퍼로 성장했다. 한참 전성기를 구가하던 안시현은 지난 2009년 지인의 소개로 마르코를 만나 2년여의 열애 끝에 2011년 결혼하면서 잠시 그린을 떠났다. 안시현은 지난해 5월 딸을 출산하는 등 평범한 전업주부로 생활해 오다 올 6월 성격 차이를 이유로 합의 이혼했다. 결혼, 출산, 이혼 등 짧은 기간 동안 많은 것을 경험한 안시현은 좌절하지 않고 다시 훈련에 돌입했다. 안시현은 2011년 9월 KLPGA 투어 한화금융클래식 이후 21개월 동안 골프채를 잡지 않았다. 하지만 다시 골프를 시작하기로 마음먹은 안시현은 매일 새벽 6시에 일어나 연습에 임할 정도로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안시현은 12일 무안CC에서 시작되는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시드 예선전에 참가 신청서를 제출했다. 340명이 참가하는 이번 대회에서 안시현은 40위 이내에 들어 내년 KLPGA 풀시드를 받겠다는 각오다. 안시현 이외에도 결혼과 골프 사이에서 힘든 시간을 보낸 선수들이 꽤 많다.
어릴때부터 운동에만 전념했던 골프 선수가 투어와 결혼 생활을 동시에 잘하기엔 많은 어려움이 따르는 게 사실이다. 따라서 선수 자신의 노력과 주변의 도움이 뒷받침돼야 한다.
신창범 기자 tigger@sportschosun.com